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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Apr 17. 2018

중동 여행 위험한가요?

모두가 염려하는 중동 3개국 여행을 시작하며


위험은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중동 3개국을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동? 설마 경기도 부천 중동은 아니겠지?”처럼 썰렁한 유머는 애교에 속했다. “레바논? 내전 중인 곳 아니야? 넌 왜 매번 이상한 나라만 골라 다니냐?” 또는 “요르단이라고? 위험한 나라 아니야? 그런 델 왜 가?” 내지는 “이스라엘에 간다고? 매일 테러 일어난다던데”라며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레바논 내전이 현재 진행 중인지, 요르단은 왜 위험한 나라인지, 이스라엘에서 언제 테러가 있었는지 되물으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어렴풋이 들은 내용으로 중동은 위험하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중동을 뭉뚱그려서 테러와 연결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물론 오랜 분쟁으로 예루살렘이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것은 맞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아직 적대 관계에 있으며 지난 몇 년간 내전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한 시리아가 내가 여행하려는 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므로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도 : 구글맵 참고) 중동의 화약고인 나라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


밖에서 보이는 위험이라는 관점을 되짚어보기 위해 나는 물었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어떨까?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금방이라도 전쟁 날 것처럼 생각하거든. 파주나 문산은 휴전선에서 가까우니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지인들은 한풀 누그러졌지만 걱정이 크게 줄어든 건 아니었다. 가더라도 위험지구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출발 전까지 들었으니까. 물론 다녀와서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위험한 곳을 어떻게 다녀왔냐고.


몇 년 전부터 미얀마, 조지아, 쿠바, 파타고니아, 호주 울루루, 부탄 등지를 다니다 보니 나는 이상하고 위험하고 힘든 곳만 여행하는 사람으로 찍혔다. 안 이상하고 안 위험하고 안 힘든 곳은 과연 어딜까. 유럽이나 미국은 안전한가? 가까운 동남아는? 테러의 위험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도 위험에서 안전한 나라는 아니다. 누구나 느껴보았으리라.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가 있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차에 깔려 죽을 위험, 공중화장실을 다녀오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칼에 찔려 죽을 위험, 트럼프와 김정은의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 전쟁에 휩쓸려 죽을 위험.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위험 때문에 죽을 운명이라면 우리 모두는 어디에서든 죽게 될 것이다.


지인들의 끈질긴 염려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세 나라를 여행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1년간 작업해 온 원고가 첫 책으로 나올 무렵, 나는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고 울렁증과 어지럼증까지 겹쳐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였다. 병원까지 다녀온 어느 날, 여행 파트너인 친구가 한 줄기 빛 같은 말을 내게 했다. 

“나 레바논 결혼식에 초대받았어. 지인 아들이 결혼을 한대.” 


사막을 헤매다 타는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감로수 한 그릇을 건네받은 듯했다. 누가 듣지도 않는데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래? 날짜가 언젠데?” 기대와 달리 결혼식 날짜는 8월 12일이었다. 성수기라 비행기표는 비쌀 것이고 중동지역의 날씨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더울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서는 지금 컨디션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간 말은 달랐다. “레바논 여행을 할 거면 요르단도 가봐야지. 페트라를 지척에 두고 그냥 올 순 없잖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친구는 미소를 짓더니 한 술 더 떴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이왕이면 세 나라를 다 돌면 어때?” 


아라비아 반도에 서로 붙어있는 세 나라지만 동선을 제대로 짜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외교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두 나라를 직항으로 운항하는 비행기가 없다. 우리는 결혼식 참석 일정상 레바논 베이루트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출국을 해야 편했다. 베이루트와 텔아비브를 운항하는 항공기가 있는 거점도시를 찾아야 했다. 애용하는 티켓 예매사이트 스카이스캐너를 검색하니 몇 가지 괜찮은 루트가 나왔다. 가격은 조금 더 비쌌지만 운항 시간이 유리한 이스탄불을 경유하기로 했다. 한국발 레바논 베이루트행 직항은 아직 없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사비하 괵첸 공항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인천 -> 이스탄불 -> 베이루트 -> 암만 => 예루살렘 => 텔아비브-> 이스탄불 -> 인천


대략적으로 짜인 우리의 여행 동선이다. 베이루트와 암만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별 세부 이동 경로에 관한 내용은 차차 말하기로 하겠다. 이스탄불에서 경유하는 시간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성수기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을 겨우 빠져나와 저가항공이 출발하는 사비하 괵첸 공항으로 이동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겨우 탈 정도로 빠듯했다. 기내 좌석에 무사히 앉았을 때 우리는 절여놓은 배추처럼 처져서 바로 잠이 들었다. 착륙 직전 기내 안내방송에 눈을 뜨니 베이루트 공항 주변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레바논 유일의 국제공항인 라픽 하리리 공항(Beirut Rafic Hariri Int'l Airport).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시설이 파괴되어 수차례 보수를 해야 했던 공항이다. 창밖으로 내다본 베이루트의 야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감귤빛 조명이 아늑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바논의 첫인상은 따스했다. 


아버지 이름을 쓰는 칸이 있는 레바논 입국 카드 양식. 


입국카드를 작성하고 수속을 위해 줄을 섰다. 입국카드에 아버지 이름을 쓰는 칸이 있어서 신기했다. 돌아가신 아빠 이름을 써본 지 오래되어 낯설었지만 잊고 있던 아빠 생각을 하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대기줄은 길지 않았다. 


한국인은 도착비자(VOA=Visa On Arrival) 발급이 가능하다고 해서 출국 전 주한 레바논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지 않고 왔다. 여러 번 확인한 사실인데도 혹시나 싶어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여권을 심사하는 직원은 의례적인 질문 하나 없이 입국도장을 찍은 후 친절하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비자 비용도 없었다. 비자 비용이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정확한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았나 보다. 레바논 입국 도착비자는 무료다. (2017년 8월 5일 기준)


베이루트 공항 도착 터미널에 있는 면세점.


이스탄불 출발 PC862편 23:25 베이루트 도착 아랍어 안내판.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옆 기둥에 보이는 삼성 광고.


중동지역 여행은 처음이다. 베이루트 공항의 도착 터미널은 놀라우리만치 깔끔하고 조용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택시 잡는 일이 번거로울 것 같아 숙소에 픽업 요청을 해두었다. 아저씨 이름은 후앗(Fouad)이며 숙소와 연결된 프리랜서 투어가이드라고 했다. 영어도 잘 하고 믿음이 가는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물담배를 피우는 레바논 여성들.


숙소에 도착하니 1층 가든 카페에서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가슴이 다 드러나는 드레스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도 보였다. 베이루트 사람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요일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향긋한 물담배의 연기가 없었다면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쌉싸름한 향이 좋은 레바논 맥주 알마자.


짐을 풀 힘도 없이 피곤했는데 흥겨운 장면을 마주하니 갑자기 잠은 달아나고 생기가 돌았다. 짐만 방에 올려두고 우린 바로 1층으로 내려와 음식 몇 가지와 맥주를 주문했다. 중동지역은 알코올음료도 없이 삭막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여긴 레바논이다. 시원한 레바논 맥주는 긴 비행에서 쌓인 피로를 그대로 녹여주었다. 내일부터 펼쳐질 레바논 여행이 너무 기대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꿈나라부터 들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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