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치한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
거의 800m가량을 호리호리한 여성분의 뒤를 의도치 않게 뒤따라가게 된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뜬 환한 대낮인데도 여성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공포에 질려 나를 의식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전화하는 척하며 뒤를 쫓는 괴한으로 격상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떻게 그렇게 동선이 절묘하게 겹칠지 모를 일이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샛길로 지름길로 한참을 따라가다 목적지인 아파트 동에서야 서로 동선이 갈렸다.
나는 나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터였다.
'지이이잉'
자동문 소리가 들리며 그 여성분이 들어왔다.
"허어어엇"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 아이의 표정에 나 또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동선이 많이 겹치네요. 저 여기 xx층 살아요."
그제야 붉어진 얼굴로 "아이 짜증 나"를 연발하며 환하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아이를 초등학교 등교시간에 다시 마주친 일이었다.
나는 졸지에 초등학교 6학년을 미행한 치한으로 오해받은 사람으로 재조정되었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등교시키는 내내 그 아이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친구와 재잘대며 학교로 들어갔다.
오해가 풀려 정말 다행이다.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것들
나는 왜 계속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갔을까?
당연하다.
나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길이기에 무작정 최단거리, 효율적인 동선대로 찾아간 것이다.
중간에 분명 경로를 바꿀 기회가 여럿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벤치에 앉아 단 5분이라도 뒤늦게 다시 갈길을 가면 될 일이었다.
급할 것이 없었다.
일에 매몰된다는 것은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일이 듯하다.
매사에 이런 쳇바퀴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은 작은 것에 집중하느라 의외로 동선을 수정하지 못하고 등 떠밀리듯 흘러가는 행태가 습관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변화를 줄 때에는 간혹 그 자리에 멈춰서 나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고 유연하게 사고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단 한 가지의 선택만이 존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