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백양로. 봄에는 꽃이 피었고 여름이 되니 새들이 날고 가을에는 낙엽이 날리고 겨울에는 눈이 내렸다. 그렇게 여느 해처럼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사철 내내 새내기로 지냈던 그 해.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었나 보다. 불로초를 먹은 피터팬처럼. 30년이 지났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투르고 또 모든 것이 즐겁고 슬펐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살짝 꺼내어 본다. 사진 속의 나는 다른 새내기들과 함께 참 활짝도 웃고 있구나. 그래 그때 우리는 그저 매냥 좋았었나 보다. 거울 앞에 서서 몰래 사진 속의 얼굴처럼 웃어본다. 풋. 나에게 이런 표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네. 떠나보낸 줄 알았던 그 해의 새내기가 긴 세월 내 안에서 숨어 나와 함께 살고 있었나 보다.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 기억이 떠오르는 대로 그 해 어느 날 밤 오바이트를 참던 나의 얼굴을 불러내어 보았다. 큭큭큭 그날 밤 11시 23분 창천교회 담벼락을 집고 잔뜩 웅크린 나의 얼굴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화장실 거울을 째리며 한참을 큭큭대고 하하대다가 문 밖의 인기척에 서둘러 화장실을 나서는 데, 거울 속 얼굴이 나를 붙든다. 한참 재미있어지는 데 어딜 갈라고? 나는 이제 가봐야 해 하며 어른스럽게, 여전히 철없는 그를 타이르듯 흠흠 했다. 거울 속 새파란 새내기는 어쭈? 하는 얼굴로 잠시동안 나를 빤히 보더니 이내 그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헷헷 재미없게 어른인 척 하기는. 흠흠, 헷헷, 우리는 그렇게 한 동안 실랑이를 하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