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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Apr 15. 2023

오래된 사진을 꺼내어 보며

1994년 백양로. 봄에는 꽃이 피었고 여름이 되니 새들이 날고 가을에는 낙엽이 날리고 겨울에는 눈이 내렸다. 그렇게 여느 해처럼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사철 내내 새내기로 지냈던 그 해.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었나 보다. 불로초를 먹은 피터팬처럼. 30년이 지났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투르고 또 모든 것이 즐겁고 슬펐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살짝 꺼내어 본다. 사진 속의 나는 다른 새내기들과 함께 참 활짝도 웃고 있구나. 그래 그때 우리는 그저 매냥 좋았었나 보다. 거울 앞에 서서 몰래 사진 속의 얼굴처럼 웃어본다. 풋. 나에게 이런 표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네. 떠나보낸 줄 알았던 그 해의 새내기가 긴 세월 내 안에서 숨어 나와 함께 살고 있었나 보다.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 기억이 떠오르는 대로 그 해 어느 날 밤 오바이트를 참던 나의 얼굴을 불러내어 보았다. 큭큭큭 그날 밤 11시 23분 창천교회 담벼락을 집고 잔뜩 웅크린 나의 얼굴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화장실 거울을 째리며 한참을 큭큭대고 하하대다가 문 밖의 인기척에 서둘러 화장실을 나서는 데, 거울 속 얼굴이 나를 붙든다. 한참 재미있어지는 데 어딜 갈라고? 나는 이제 가봐야 해 하며 어른스럽게, 여전히 철없는 그를 타이르듯 흠흠 했다. 거울 속 새파란 새내기는 어쭈? 하는 얼굴로 잠시동안 나를 빤히 보더니 이내 그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헷헷 재미없게 어른인 척 하기는. 흠흠, 헷헷, 우리는 그렇게 한 동안 실랑이를 하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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