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쿠쿠!
우에노 집에 머물렀던 비둘기 쿠쿠의 이야기
어머 이게 뭐야! 어린 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벌어진 손가락들 사이로 아빠의 손 위에 들린 종이 상자 안을 들여다본다. 자, 비둘기 친구를 데리고 왔다. 현관에 들어 선 아빠는 아이가 상자 안에 담긴 비둘기를 잘 볼 수 있게 상자를 낮게 기울인다. 과연 비둘기이다. 그런데 웬 비둘기이람? 비둘기는 갑자기 기울어진 상자 안에서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상자의 바닥에는 어느 회사의 야유회 때 나누어 주었는지 한 건설회사의 이름이 밑단에 두껍게 새겨진 수건이 두 겹으로 접히어 깔려 있다. 수건의 색깔은 원래 흰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자 바닥에 깔릴 때부터 꼬질꼬질했을 이 수건은 비둘기가 싼 똥과 뽑힌 얇은 깃털들, 역시 비둘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핏자국이 범벅이 되어 마치 화려한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보인다.
아빠는 구두를 벗으려 손에 든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비둘기는 다시 한번 몸을 틀며 균형을 잡으려 날개를 펼쳤다. 퍼덕거리는 날개는 한쪽뿐이다. 다른 한쪽 날개는 반쯤 잘려나간 듯 앙상하니 몸통에 꼭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비둘기는 한쪽 날개만 펼친 체, 시계 추가 움직이 듯 천천히 좌우로 뒤뚱거렸다. 비둘기는 균형을 다 잡고도 한 동안 날개를 펼친 채로 있다가, 자신의 몸이 완전히 균형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는 이제 되었다는 듯 펼친 날개를 접었다.
쪼그려 앉아 비둘기의 균형 잡기를 보고 있던 아이의 뒤에서 엄마가 나타났다. 저녁 상에 오를 생선을 굽다 현관으로 나온 엄마의 손에는 기다란 나무젓가락이 들려있다. 그게 뭐야? 어, 이 놈은 있쟈나. 에이시로는 구두꾼을 풀며 슬쩍 사치코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사치코는 남편이 이번에는 또 무엇을 집에 들고 들어왔나 궁금하지만 그가 집에 오는 길에 하도 여러 번 불쌍한 동물들을 집에 데리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는다. 그중에는 같이 술을 마시다 막차가 끊겼다고 집까지 데려온 이들도 여럿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의 연속극에 나올 법한 수려한 외모보다는 그의 선량한 마음에 끌려 그와 결혼하였다. 그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매일 회사일을 핑계로 만취하여 집에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그는 그의 속에 넘치는 선량함을 해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유쾌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려운 이를 보면 먼저 나서서 도왔다.
이 놈이 그 비둘기야, 왜 지난주에 우리 회사 앞에 다친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고 했잖아, 아마 까마귀한테 당한 모양이지. 한쪽 날개가 뜯겨서 퍼득거리며 쓰러져 있는 놈을 회사 사람이 발견하고는 사무실 안에 들여놓았지. 그대로 두면 들고양이의 밥이 될 테니. 어차피 죽겠지만 마지막까지 조금 편하게 지켜주자는 생각이었어. 그런데 금방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 놈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거야. 엊그제부터는 똑바로 서서 걷기도 하고 한쪽 날개만으로 날아오르려 퍼득 거리기도 하고... 그런데 주말에는 사무실에 사람이 없쟈나. 돌볼 사람이 없으면 사무실에 고양이가 들어올 수도 있고 밥도 주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데려왔어.
사치코는 에이시로가 한참을 떠드는 동안 딸의 뒤통수 너머로 상자 안의 비둘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불쌍하네.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이 놈을 발견한 그날 시내에 있는 병원에 데리고 갔었어. 병원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데, 다행히 다친 날개의 뼈는 상하지 않았다는 데 워낙 살이 많이 뜯겨 놓아서... 그냥 그대로 두면 얼마 있어 죽을 것 같다는 거야 그런데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치료는 없다네. 인간이라면 깁스라도 하겠는 데... 어떻게 길에서 다친 비둘기를 병원까지 데리고 올 생각을 했냐며 웃던데.
남편이 다른 쪽 구두끈을 푸는 동안 사치코는 아이의 머리 위로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려 거실로 들고 들어갔다. 아이는 상자를 든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에이시로는 벗겨진 구두를 나란히 정리하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거실에는 가요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에이시로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가 좋아하는 기린의 이치방시보리이다.
그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학교를 다닐 때 하숙집 냉장고에는 항상 이치방시보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원래는 하숙집 주인아저씨인 곤도상을 위하여 아주머니가 채워 놓은 것이지만 자식이 없는 곤도상 부부는 밝고 명랑한 에이시로를 아들처럼 여겼고 에이시로에게만은 냉장고의 맥주를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곤도상은 당시 잘 나가는 대기업의 부장이었으니 냉장고의 맥주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골에서 외동아들로 귀하게 자란 에이시로는 여느 시골 부잣집 아들들이 그러하듯이 가난한 친구들을 하숙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곤도상의 맥주를 나누어 마셨다. 곤도상도 아들의 선량함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정말 착한 아이를 아들처럼 곁에 두게 되었음에 기뻐했다.
치익, 소리를 내며 맥주 캔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중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주는 소리이다. 꿀꺽. 캔 입구로 넘치는 거품을 조금 마신다는 것이 차가운 맥주가 입술에 닿자 참지 못하고 크게 한 모금을 넘겼다. 캬-.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목구멍에 남은 짜릿함이 사라지며 그제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 가락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하 또 사랑 타령이구먼. 싫다고 떠난 사람을 왜 그렇게들 불러 대는 거야? 혼자 던지는 실없는 농담이다. 에이시로가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이 사치코는 어디선가 누렇고 두꺼운 박스 종이를 가지고 와 거실 한 켠에 깔고 그 위에 아주 푹신한 수건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수건 위 한 켠에는 큰 수건을 작은 동굴처럼 가운데를 비워 둘둘 말아 놓아두었다.
아이는 거실 한편에 놓인 상자 옆에 아까 현관에서와 같은 모양으로 쭈그리고 앉아 상자 속 비둘기와 대화 중이다. 너는 이름이 뭐야? 비둘기는 대답이 없다. 그러다 비둘기가 무슨 소리를 내었는지, 아니면 아이는 어디서 들은 비둘기 소리를 떠올렸는지, 이제부터 쿠쿠라고 부를게, 좋지?라고 말한다. 비둘기는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지만 그 집에서 비둘기를 이때부터 쿠쿠라 부르기로 하였다.
쿠쿠와의 함께 했던 시간은 단 두 주에 불과했다. 비둘기를 집에 데려온 에이시로는 비둘기를 두고 아침 일찍부터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비둘기가 집에 있던 기간 동안 그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와도 꼭 쿠쿠와 놀아주었고 잠시라도 안부를 묻고 잠이 들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쿠쿠는 오늘 어땠어? 였다.
집안에서 비둘기와 함께 사는 일은 절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쿠쿠는 한쪽 날개가 다쳐 날 수는 없었지만 사치코가 매 끼의 식사를 영양가 있게 챙겨준 덕에 매우 빠르게 집안을 뛰어다녔다. 비둘기가 걷는 것은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빠르게 걷는 것을 본 사람은 많이 없을 게다. 쿠쿠는 날지 못하는 한을 달리기로 풀려는 듯 매우 빠르게 걸어 다녔고 그가 다니는 곳마다 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새는 입에서 항문까지의 직선으로 연결된 장을 가졌다. 먹으면 바로 싼다. 그러니 배변 훈련이란 불가능하고 변을 한 곳에 서만 누게 하려면 새장에 가두어 두는 수밖에 없다. 온 집안이 쿠쿠의 똥으로 얼룩지는 상황에도 이 집안 식구들은 쿠쿠를 한 곳에 가두어 놓는 일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쿠쿠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여기저기 묻은 그의 변을 닦아내는 것이다.
초등학생 딸아이는 쿠쿠와 24시간 붙어 지냈다. 사치코가 아끼던 고급 타올로 쿠쿠의 집을 만들어 주었지만 쿠쿠는 항상 아이의 옆에서 먹고 자고 쌌다. 아이가 손을 내밀면 쿠쿠는 그 손을 걸어 올라와 아이의 어깨 위에 앉았다. 아이의 어깨에 서서 주변을 보면 그나만 조금 날아다닐 수 있었던 때 느꼈던, 공중에서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밥을 먹으면 어깨에 앉은 쿠쿠는 그녀의 볼에 얼굴을 부딪히며 자기도 같이 먹자고 시위를 했다. 새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를 먹는 것을 떠올리면 새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당연한 모양이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 밥풀을 떼어 쿠쿠에게 먹이고 라멘을 먹으면 긴 국수를 손가락으로 집어 쿠쿠가 다 먹을 때까지 쿠쿠의 머리 앞에 들고 있어 주었다.
쿠쿠가 아이의 어깨 위에서 함께 식사를 하니 아이의 오른 어깨는 항상 쿠쿠의 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처음에는 바로바로 옷을 갈아입고 옷에 묻은 묽은 쿠쿠의 똥을 비벼 씯겨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옷을 갈아입으면 잠들기 전에 옷을 다시 갈아입을 때까지 아이의 어깨 죽지에는 쿠쿠의 똥이 겹겹이 칠해졌다. 사치코는 쿠쿠의 밥을 챙기고 똥을 치우고 아이의 옷을 빨았다. 에이시로는 쿠쿠와 이야기하고 가끔 자신의 안주를 부리 앞에 흔들며 장난치기도 하고... 자신이 마시던 맥주를 좀 나누어 주기도 하지 않았을까 강한 의심이 든다. 그리고 아이는... 쿠쿠와 함께 살았다.
아이는 방학이지만 쿠쿠와 함께 있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쿠쿠는 어느새 무릎에 올라와 있었다. 새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는 것을 그때 그녀는 알게 되었다. 사치코의 밥과 에이시로의 관심과 아이의 사랑으로 쿠쿠는 나날이 건강해져 갔다.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은 결국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놀라운 것은 반이나 날라가 버린 날개가 다시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날개가 어느 정도 돋아 나고 양 날개가 거의 비슷한 모양이 되었을 어느 날부터 쿠쿠는 다친 날개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 날개를 펼치면 여전히 다친 날개만 짧고 움푹 패여있었지만 쿠쿠는 자주 날아오르는 시늉을 했다. 드디어 어느 날 쿠쿠는 낮은 높이의 텔레비전 받침에 올라갔다. 그다음은 식탁, 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가장 높은 옷장의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 이 집 사람들은 이제 점차 쿠쿠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쿠쿠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날아가지 않았다. 종종 답답한 듯 창틀에 앉아 멘션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둘러보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쿠쿠는 창 밖으로 한 발 더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 대신 휘 날아 아이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단 두 주의 시간이었다. 아이의 여름 방학은 끝나가고 있었고 사치코도 아이의 방학이 끝나면 멈추었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나서야 했다. 어느 날 저녁 에이시로는 커다란 새장 하나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이른 저녁이었다. 동료들과 맥주 한 잔 마시지도 않고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온 모양이다. 그날 밤 식탁에 둘러앉아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했다. 에이시로는 시원한 맥주를 마셨지만 꽤나 천천히 한 모금 한 모금을 넘겼다. 사치코는 여느 때처럼 그다지 말이 없었다.
아이는 어깨에 앉은 쿠쿠에게 밥풀을 손으로 먹이며 새 학기가 시작하면 누구누구와 만나 놀거라 말했다. 집에서 대부분을 보낸 여름 방학 동안 잊었던 친구들이 생각난 것일까,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꼽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데 굳이 하지 않아도 함께 느끼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어색하게 침묵이 흘렀다. 에이시로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있잖아, 쿠쿠를 회사에 데리고 갈 거야. 왜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회사에서 길러? 아니. 쿠쿠도 가족이 있을 테니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주어야지. 쿠쿠가 발견되었던 그곳에 가면 쿠쿠가 가족을 찾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내일 회사로 데리고 갈 거야... 아무도 말이 없다.
몇 초가 흘렀을까 갑자기 아이의 눈에서 밥 알 같은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니 그 눈물을 따라 수돗물을 틀 듯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의 어깨 위 쿠쿠는 영문을 모른 채 작은 머리로 그녀의 볼을 자꾸 문질렀다. 아이는 흐느끼며 울고 에이시로와 사치코는 우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참는다. 그런 거야 아이, 헤어져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우리 쿠쿠를 즐겁게 보내주자. 쿠쿠의 가족들에게로. 잘 가 쿠쿠,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럼 그때 내 어깨에 다시 와서 앉아 줘. 작은 부리로 내 볼에 뽀뽀를 해줘. 꼭, 꼭이야. 그때까지, 안녕- 쿠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