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호텔 체육관 러닝 머신 위에서 잠시 걸었다. 어제 새벽에 보았던 이들이 비슷한 시간에 들어와 트랙을 달렸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데 옆 트랙에서 전력질주를 하면 나는 상대적으로 너무 설렁설렁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옆 사람의 속도로 뛰었다가는 금세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을 것이다. 나는 나의 운동에 집중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옆사람을 따라서 뛰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침부터 복잡한 심산이 싫어져 트랙을 내려왔다.
근처에 맛집으로 소개받은 쌀국숫집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고 손님들이 모이는 가게를 보니 아침에 손님이 북적이는 설렁탕집이 떠올랐다. 어릴 적 주말 아침이면 아버지를 따라 신사역 뒤에 있는 영동설렁탕에 설렁탕을 먹으러 가고는 했다.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영동설렁탕집을 찾았는 데 주차장에 붙은 가게가 여전히 그대로인 것에 놀랐다. 이십 년 전에도 그러했을 국수가 담긴 설렁탕을 깍두기와 함께 해치우고 계산을 하려 카운터로 가니 카운터 위에 예전처럼 백 원짜리 동전이 쌓여 있다. 손님들이 옆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 커피를 뽑아 먹도록 동전을 놓아둔 것이다.
어차피 커피를 서비스할 것 같으면 그냥 공짜로 주면 될 것을 왜 번거롭게 100원짜리 동전을 넣게 하였을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한 사람이 눈치 없이 여러 잔을 뽑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 수 도 있지만, 그보다는 손님들에게 커피라는 서비스의 값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버튼만 누르면 주르르 나오는 공짜 커피라면 마시는 사람에게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지만 가게 돈 100원을 받고 이것을 넣어 뽑은 커피는 왠지 그 값만큼 이득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100원짜리 커피 서비스도 예전과 그대로이지만 예전의 믹스 커피가 나오던 자판기가 원두가 갈아져 나오는 자판기로 바뀌었다. 가게를 한눈에 휘 둘러볼 수 있는 카운터에서 앉아 노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이실 테다.
쌀국숫집 포 쟌(Pho Tran)은 1936년부터 영업을 하였다고 하니 이미 88년이 된 가게이다. 프랜차이즈로 분점이 7개 있다고 한다. 88년 만에 분점이 7개라면 빠른 것인가 느린 것인가.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베트남에서는 무엇을 하나 하려 해도 일처리가 너무나 느리다고 한다. 평균 연령이 32세로 젊디 젊은 이 나라는 높은 교육열과 개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은 반면 여전히 매우 구시대적인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법이 명료하지 않고 위에 계신 나리들의 령이 중구난방이니 될 일도 안된다.
나는 2000년 대 초반의 중국이 떠올랐다. 나는 중국어를 배우러 동북지방의 장춘으로 갔다. 비행기를 내려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가는 데 널따란 차도에 망아지가 끄는 수레가 지나다녔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의 수도였던 장춘은 외자로 세워진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막 자본주의의 물결을 올라타던 때였다. 상해로 내려와서 장춘과는 완전히 다른 선진의 도시를 보았지만 상해 역시도 서울에 비하면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의 베트남을 보면 물가가 싸서 한국 사람들이 대접받던 그 시절의 중국과 꼭 닮았다. 그로부터 단 십여 년 사이 상해가 급성장하여 부자들이 넘치는 선진도시가 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베트남도 곧 그렇게 되리라고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중국에서도 지금의 베트남에서도 대담하게 뛰어드는 배포 있는 자들만이 돈을 번다. 물론 그중에 태반은 꿈도 돈도 탈탈 털리고 고국행 비행기를 타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참 베트남식 포를 먹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종업원에게 손발짓으로 국수 위에 고수를 넣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어느 식당에 가나 테이블 위에는 각종 허브 잎들을 수북이 쌓여있다. 일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허브를 많이 먹는 이유가 덥고 습하여 모기가 많은 데 허브를 먹어 땀냄새가 덜 나면 모기에게 덜 물린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지금은 좋은 계절이라 모기가 없으니 허브는 다음 기회에 먹어야겠다.
일찌감치 전시장에 들어와 부스를 정돈했다. 전시장의 부스는 마치 작은 가게와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나의 상품을 팔아야 한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닌다. 다닥다닥 붙어서 이어진 부스에서는 서로 자기의 상품을 팔기 위하여 진열하여 놓는다. 수많은 상품들 속에 바이어들에게 내 상품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바이어들의 눈길을 끄는 호객 행위가 필요하다. 전시의 디스플레이를 하고 상품을 진열하는 것은 기본이요, 전단지를 뿌리고 샘플을 나누어 주어야 하고, 어떤 업체들은 사은품이 걸린 행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시는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를 이어주는 커플 매칭이라기보다는 떡밥을 뿌려 유인하고 미끼를 놓아 물고기를 잡는 낚시와 같은 일에 가깝다.
이틀 째인 전시장에는 어제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꽤나 노련한 낚시꾼이기에 우리 부스 앞에는 항시 사람들로 붐빈다. 물론 물고기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여 항상 대어를 잡는 것은 아니다. 종종 미끼만 털리고 빈 낚시 바늘을 끄집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또 하루의 전시를 마쳤다. 일반적인 전시가 사흘간 열리는 데 이 전시는 나흘이나 한다. 베트남은 여전히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한다. 그래서인지 나흘 째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다. 절반을 지났으니 거의 다 왔다. 조금 더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