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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Dec 04. 2024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대한민국 여섯 번째 계엄령을 지켜보며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 쿠데타를 긴장감 있게 그린 영화이다. 주인 없는 집에 담을 넘어 정권을 차지한 황정민(전두환 역)이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 강도가 주인인 세상이니 자신의 강도질을 자세히 적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야 광주와 12.12, 제주의 진실을 영화로, 책으로 알아간다.


영화는 공권력이 얼마나 쉽게 민주와 민의를 저버릴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결론을 알지만 그리도 간절하게 쿠데타를 저지하려는 정우성(장태완 소장 역)을 응원한다. 관객의 열띤 응원과 기도에도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아는 결론에 새로이 분노할 뿐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 안에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지 모를, 혹은 나의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사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계엄령이란 이름으로 견제 없는 공권력에 짓밟히고 희생당한 이 나라 국민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시대의 비극 속에 아픔으로 사라져 간 사람들, 아픔으로 살다 간 이들, 그리고 그들을 보내고 여전히 아픔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잊지 말자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그녀의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들과 작별하지 말자, 그들을 잊지 말자'라고 우리에게 외치는 구호이다.


한국의 계엄령이란 이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권력의 무자비함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고삐 풀린 공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를 우리는 안다. 외부로 향하던 총부리가 내부로 향하고 군홧발이 민간의 영역을 거침없이 걸어 들어오면 적에게도 못할 짓을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더욱 민주적 절차를 원하고 공권력의 남용을 경계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은 1979년 마지막 계엄령까지 건국 이래 다섯 번의 계엄령을 겪었다. 그때마다 군홧발은 민간인을 짓밟았다. 군인의 행위는 명령에 의한 기계적인 복종이지만 명령이 비인륜적이니 행위의 결과는 잔인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엄혹한 시절들을 이겨내고 지금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 냈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시민의 정신과 행동으로 저항하여 이제 우리는 이만큼 와 있다. 우리의 모습에 안도와 뿌듯함을 느끼는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에 여섯 번째 계엄령이 발포되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보았고 이를 온몸으로 막는 시민들을 보았다. 다시 한번 시민이 나라를 지켰다. 국회의사당에 모인 190명의 국회의원이 계엄령 해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도 한참을 잠 못 들었다. 이 사건은 한마디로, 미친놈 하나가 어떻게 초가삼간을 한번에 태워먹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나는 반성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의 역할은, 아주 작은 역할은 없었을까?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란 시가 떠올랐다. 나는 이 사회의 정의에 눈 감고, 나의 작은 불만과 작은 이익에만 신경 쓰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이런 나의 삶의 태도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우스꽝스럽고 참담한 역사적 사태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 밤의 짧은 사건으로 진화되었지만 어쩌면 수년을 수십 년을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을 이 날의 기억을 우리는 잊지 말자. 이 사건과 절대 작별하지 말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김수영,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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