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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Dec 10. 2024

100일의 글쓰기

100일간 술 대신 글을 썼습니다.

100일간 술을 끊었다. 끊었다는 매정한 표현 대신에 멈추었다고 말하자. 어제 100일 만에 술을 마셨다. 마오타이. 아침에 일어나 머리도 아프지 않고 속도 멀쩡하니 명주는 그 값을 하는구나.


나는 그저 나의 해금주에 맞추어 술을 한 잔 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12월에 있는 내 생일잔치를 당겨서 하는 줄 알고 선물을 가지고 온 이들이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서점에 가니 날짜별로 생일 책을 파는 데 나의 생일 책이 <오만과 편견>이었단다. 나에게 딱 어울리는 제목이어서 지체 없이 집어 왔다고? 이 책은 모임 맞형님의 영문과 졸업 논문 주제였던 책이기도 하다. 술을 끊는, 아니 멈추는 동안 매일 글을 썼는 데, 이제부터는 100일의 글을 쓰는 대신 100권의 팩을 읽어보자고 생각했던 차에 책 선물을 받으니 반갑다.


형님에게서는 영양제를 선물 받았다. 최근에 효과가 남다르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종합비타민제이다. 30년 지기 격의 없는 사이인데 한지로 정성스럽게 포장하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포장지를 뜯으며 한지로 선물 박스를 포장고 있는 형을 떠올렸다. 철학과 동기인 형은 보헤미안 같은 사람이다. 예술가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고 멋진 사업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음이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책과 영양제를 선물 받으며,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이니 몸도 마음도 더 잘 챙기라는 의미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100일 동안 매일 한 편씩 글을 썼다.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지루함을 달래고 싶은 의도였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생활의 패턴을 깨지 않기 위해 당일의 글은 12시 이전에 반드시 마무리하여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자정이 다가와도 글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창작의 고통을 느꼈다, 편집자에게 쫓기는 신문 연재소설 작가의 마음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사람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둔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니 글 쓰는 것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쓴 글들도 이전보다 조금 더 읽기에 편해졌다는 말을 듣는다. 힘을 빼라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무슨 일이든 애를 써서 해내면 그 인위적인 노력의 흔적이 어디에든 남는다. 나도 알지만 남도 안다. 반면에 애쓰지 않고 무엇을 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수 없는 반복으로 그 일이 스스로 편해져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술술 풀리는 글을 쓰기에는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100일간 글을 쓰며 좋은 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00일이 지났다. 지금 나는 곰인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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