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시작, 그 때의 기록

일본에서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던 때

by 박종호

이 글은 2020년 2월 일본에서 막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던 때의 기록입니다.


i.


나는 1학년 아이들에게 ‘짱깽노 히토(가위바위보 아저씨)’로 통한다. 나는 출장이 없어 후쿠오카에 있을 때면 하교 시간이 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 앞으로 수연이를 데리러 갔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 얼굴이 낯이 익은 남자 아이들이 나에게 가위바위보를 걸어오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지나가는 모든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걸어 온다. 가끔 우르르 따라 오며 끊임없이 가위바위보를 걸어 오는 아이들이 귀찮아 모자에 썬글라스도 써 보지만 매의 눈을 가진 시골 아이들이 ‘짱깽노 히토’와의 짱깽(가위바위보) 한판이라는 재미를 놓칠 리 없다. 멀리 하늘을 보며 딴 청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승부를 건다. 하지만 교문 앞 쇼부(승부)도 4월까지는 어림도 없다. 전국에 코로나로 인한 휴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ii.


그제 오후 역대 최장 수상이라는 아베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대규모 행사를 자재해 달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 달 10일 치바(동경 옆 동네)에서 열리는 식품전시 (Foodex Japan)가 취소되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일본 전역에 걸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터라 당연히 취소될 줄 알았던 행사였지만 끝까지 강행을 하겠다고 버티다가 아베의 말 한마디에 저녁 즈음에 취소 통보를 해 왔다. 은퇴한 공무원들이 모여 있다는 일본 생산성 협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니 보스(정부)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으리라.


일본 정부는 자국에 입항한 크루즈 내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자 승객 전원의 하선을 금지하고 승객들을 객실에 격리하였다. 승객들이 배에서 내리게 하여 코로나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느니 비(非)인도적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배 안에서 코로나를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크루즈 안의 상황은 이러한 바램과는 반대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감염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결국 코로나로 인한 선내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국제적인 여론은 혹독한 비판을 쏟아 냈다. 그제서야 일본은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단을 받은 승객들의 하선을 허락했다.


문제는 연이어 발생했다. 선내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국내로 혹은 해외로 돌아온 승객들 중 다수가 재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욕을 먹으면서까지 막으려했던 크루즈발 확산이 확인되고 동시에 일본 의료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 버렸다. 일본 정부는 영해에 들어 왔지만 영토에 발을 딛지 않았으니 국내의 감염자로 카운트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논리로 지금까지도 크루즈 내의 코로나 발병자 및 사망자수를 일본 내 발생건수와 별도로 집계하여 발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일은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이 가시화되어 금년 동경 올림픽 개최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다. 최근 몇 주 동안 일본 내에서 전국적으로 감염자가 발견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중국을 다녀오거나 다녀온 이들과 접촉한 일이 없었고 이는 이미 전국에 지역적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충분한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코로나 확진 검사를 보건소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고 감염의 의심이 가는 환자에게도 중국에 다녀온 일이 없다면 검사를 해 주지 않았다. 검사를 통하여 확진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규모 행사를 자제해달라는 아베의 성명이 있고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일본 정부는 전국 초중고교의 휴교를 권유했다. 도서관, 미술관 등 공공기관이 임시 휴무에 들어갔다. 수 일 내에 코로나 검사를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하였고 국민들에게 외출을 자재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사를 제한하고 하선을 막으며 쉬쉬하던 코로나의 확산을 정부가 애둘러 인정하였고 설마 설마하며 눌러오던 사람들의 공포는 일시에 폭발하였다. 중국의 코로나 발생 초기 부터 중국인이 싹쓸이 해 간 마스크는 이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손소독제는 물론 소독용 알코올도 동이 났다. 중국의 원료로 생산하는 화장지가 곧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 말이 루머에 불과하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불안과 불신에 휩싸인 사람들 탓에 마트 화장지 매대에는 이미 ‘1인 1개 구입 가능’이라는 표지가 붙었다. 이 추세라면 매대의 라면도 금새 동이날 것이다.



iii.


일본인은 위생관념이 강하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평균적으로 일본인의 위생관념은 여느 국가에 비하여도 월등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섬나라이니 습하여 균이 퍼지기 쉬운데다 지진이나 태풍이 잦아 재해에 따르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의 위생관념을 유독 강하게 만들었으리라. 이들의 위생관념은 개인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자기의 영역에 누군가 들어 오는 것도 남의 영역에 자기가 들어가는 것도 지극히 피한다. 그러니 타인과의 접촉에 지극히 신중하다. 정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사람들은 악수를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을 걸으면 사계절 어느 때이건 마스크를 끼고 표정을 가린 사람을 수 없이 마주친다. 감기가 유행이라 꽃가루가 날리는 철이라 마스크를 낀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핑계로 혹은 그저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쓴다. 나는 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에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 못하여 마스크가 필요치 않지만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일본 사람들이 마스크가 떨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어떤 여자가 화장을 안하고 집 밖을 나서면 마치 속옷을 안입고 밖에 나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매일 쓰고 다니던 마스크를 안하고 나서면 화장을 안하고 나서는 느낌과 비슷하리라. 이래저래 여럿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시절이다.


*이 글은 2020년 2월 말에 작성되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