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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Oct 26. 2024

47일에 통잠이라니

일일육아 9 / 출산 44일-48일

44일


부부 침실에 두었던 캐리콧을 아기방으로 옮겼다. 아직 제대로 된 아기 침대는 오지 않았지만 일단은 분리 수면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은 습도 문제가 가장 컸다. 남향으로 창이 나있는 거실과 부부 침실 습도는 30%까지도 떨어지는데 북향으로 창이 나있는 아기방의 습도는 4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가습기를 두 대 돌리면 15%씩 올라 딱 좋은 습도가 되었다. 늦은 밤까지 부산스러운 부부의 생활 습관 때문에 아기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면도 고려했다. 다행히 부부 침실 바로 건너편이 아기방이라 아기의 작은 소리도 잘 들렸다. 거실에 있었던 카메라도 아기방으로 옮겨두고 블라인드도 끝까지 내려주었다. 베개나 이불은 영유아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고 하여 처음부터 두지 않았고 방 온도를 23도로 맞춰주었다. 덮을 것 하나 없이 덩그러니 아기를 두니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기가 낮잠도 밤잠도 더 잘 자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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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아기의 50일 촬영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셀프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50일 촬영 세트 대여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가장 심플한 것으로 주문했다. 하얀색 양털아기의자와 바닥용 레이스, 조화꽃, 귀여운 나무 블럭들과 50일 팻말이 한 묶음으로 들어있는 세트였다. 그리고 먼지 쌓인 카메라를 꺼내어 닦았다. 과연 결과물이 어떨지. 아기의 50일은 돌아오지 않는데,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46일


고양이가 아기 물건들을 갖고 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그건 고양이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고양이는 자신의 장난감과 아기의 장난감이 비슷하게 생겼어도 무엇이 자기 것이고 무엇이 아기 것인지를 확연히 구분했다. 생각보다 아기 물건(은 물론 아기 자체)에 관심을 주지 않아 걱정이 무색하다 싶었는데, 딱 하나 예외가 생겼다. 바로 바스락바스락하는 아기체육관 매트. 아기가 누워노는 공간이라 아기 냄새를 좋아하는 건지 비닐과 천의 중간 즈음되는 재질이 마음에 드는 건지 모르겠으나 매트 위에 배를 뒤집고 노는 걸 보면 나름의 귀여움이 상당하다. 물론 끝나지 않는 돌돌이 청소에 식은땀이 나기도 하지만 아기 물건 '딱 하나'만 탐내는 고양이 자체가 기특해서 그냥 줘버릴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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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아기의 힝얼힝얼 소리를 들으며 남편과 어리둥절 눈을 떴다. 옅게 어두운 창 밖. 가벼운 몸과 개운한 머리. 아기의 수유 시간을 체크하는 어플을 켰다.


아침 6시. 수유텀 10시간. 어플에 찍힌 숫자에 파바박 눈을 비볐다. 통잠이다..! 아기가 처음으로 통잠을 잤다. 50일도 되지 않았는데 통잠이라니, 내 아기 유니콘이구나! 남편과 두 손을 부여잡고 감격의 몸무림을 쳤다. 새벽 3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기적 같은 삶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꼬박 한 달, 제대로 잠을 못 자 눈코입에 가득 끼어있던 희뿌연 안개가 사라지며 제대로 된 인간의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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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일


아기의 이른 통잠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50일에 10시간 통잠을 잔 비결'같은 영상의 썸네일들을 유튜브에서 자주 보았다. 아무래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온습도가 잘 갖춰진 곳에서의 분리수면, 자연광으로만 아기를 키워 밤낮을 알게 해 준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그만두었다. 똑같은 조건을 만들어도 모든 아기에게 똑같은 결과값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똑같이 키운 형제자매도 똑같이 키워지지 않는 것을. 내가 대단하게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타고나게 잠 잘 자는 아기를 낳은 것.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듯싶다. 우리 효녀에게 절이라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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