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나.
이건 비밀인데,
나는 짝사랑꾼이다.
돌아보면 늘 마음 속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주위 사람들 중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겉으로는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 척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확신 없이는 절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
라고 말이다.
사실 이 말도 어느 정도 맞긴 하다.
다만, 다소 쉽게 확신을 갖는다는 게 문제다.
사소한 눈빛과 말 한마디에 덜컹, 하고 마음이 내려앉으면서 나의 짝사랑은 시작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다.
지금도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랑이 잘 될 확률은 매우 낮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왜냐하면 여행 중에 알게 된 사람이라서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눈 앞에 알짱거릴 기회조차 없고,
무엇보다 그곳에 있을 때 몇 번이나 만났지만, 그리고 그 중에 한번은 단둘이서 만난 적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어떠한 진전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만나던 날, 일행과 다함께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잠시 졸다가 눈을 떴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빛이 몹시 다정해 보였다.
술이 덜 깨서 혹은 잠이 덜 깨서 내가 착각을 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다정하게 날 바라봤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마음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두어 번 더 다같이 만나 밥을 먹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 둘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날의 일정은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 카톡을 받은 순간부터 너무 설레서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단둘이 만난 날, 함께 저녁을 먹고 가볍게 술을 한잔 마시고 집에 데려다 주며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다음에 만날 땐-"
'아, 우리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만 완전히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바꿔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는 눈이 조금 나빠서 평소 안경을 쓰지만, 그날은 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탁자에 안경을 벗어 놓았다가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 사람이 나 대신 안경을 챙겼는데, 내가 이틀 후 새벽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도저히 그 사이에 만날 틈을 낼 수가 없었다.
일행을 통해 안경을 돌려 받아보니 지저분했던 안경이 반짝거리도록 닦여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이 닦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번 더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 다음은 없었다.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
내가 일주일 후 다시 그 사람이 있는 도시로 돌아올 계획이라는 것도, 그리고 돌아왔다는 사실도 그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더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행이 다같이 모이는 자리에도 그 사람은 안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 동안 즐겁고 고마웠다는 짧은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닿고자 하면 닿을 수 있음에도 손을 뻗지 않는 관계는 끝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먼저 연락해 볼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짝사랑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
익숙한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처음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다정한 눈빛,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궁금해하던 말투.
나중에 우연히라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왜 그랬는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내가 실수를 한 건지, 뭔가 어긋났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완벽한 오해였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