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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마 Dec 20. 2022

사람은 누구나 우울한 거 아닌가?

근데 제가 우울해도 되나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한 에너지만을 쏟은 내 일상에서 자연스레 나를 위한 우선순위는 늘 쉽게 뒤로 밀려났다. 내가 원하는 것들도, 내게 편안한 기준도 말을 하지 않으니 늘 내건 멀어져 갔고 그게 익숙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이해해주려 했던 가족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나를 기다려주는 듯했지만 역시나 한참 멀어진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고 맞추며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중한 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던 것이다. 가족들도, 집도 더 이상 편안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기운이 없었고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도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집에서 울기는 싫었다. 그래서 집 가는 시간은 내가 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날이면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을 울다 들어가야 했다. 집을 참 좋아했는데 집에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눈물이 왜 그렇게 났을까? 사실 큰 사건은 없어도 늘 상처받는 일상이었다. 어디서나 내가 배려한 만큼 나는 배려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날 배려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실망하다가도 그런 실망감을 품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더 잘하면 좋아질 거야, 하며 또다시 막연한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 불편한 사람은 거리를 두면 되는데 내가 맞추려고만 했다. 더욱더 쉽게 상처받고 쉽게 서글퍼졌다. 참았다가 집에 갈 때 울어야 하는데 눈물을 참기 힘들어졌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눈물을 잠깐씩 화장실에 숨어서 내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눈물을 흘리는 습관과 동시에 완벽히 남몰래 우는 능력이 생겼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몸 여기저기가 많이 아파졌다. 병원을 이곳저곳 많이 다녔는데 딱히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시 검사해 달라고 울먹이며 말하기도 했지만 모든 의사 선생님들은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고 일을 쉬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당시 내 직업은 스스로 좋아서 택한 일이었을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기엔 큰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창피했다. 내가 좋은 일 하면서 뭐 그리 대단하다고 스트레스를 받았냐고 자책했다.


 난 카페에서 일했다. 커피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카페에서 나름 오래 일했다. 일은 시작하는 처음부터 하루하루 늘 즐거웠다. 노동의 강도가 셌다면 그런대로 더욱 뿌듯했고 바쁘게 일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 일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일을 사랑했다. 그런데 점점 사람이 어려워졌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어렵고, 손님들도 어렵고… 전에 있던 즐거움은 점차 사라졌지만 사람 대하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구나 포기했다. 일에 대한 뿌듯함이라도 느끼려 여전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아파지고서는 일 자체가, 그곳에 있는 시간들이 정말 힘들게 느껴졌다. 버거웠다. 익숙하던 일들이 낯설게 느껴졌고 하루하루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괜찮다 하면서도 쉽게 예민해졌고, 내가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몰래 나름 크고 작은 자해를 했다. 기분 좋게 하려 했던 일들에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고 피해의식이 생겼다. 마음엔 텃세가 생겼고 내 고생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생색내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별 일 없이도 힘들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웃고 나면 뒤돌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만 어느 날부터였는지 혼자 한숨 쉬는 것도 못하게 되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숨이 막히고 긴장됐다.


 좋아하던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그리고는 일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해 온 모든 것들(그림 그리기, 카페 가기, 영화 보기, 책 읽기, 글 쓰기, 걷기 등등)이 하나씩 다 낯설게만 느껴졌다. 좋아하는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서 고민이던 내게 선택지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젠 뭘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긴 했었는지 너무 헷갈렸다. 좋아하던 노래도 낯설었다. 내가 어떤걸 좋아했다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는걸까? 뭐든 나에게 확신이 없었다. 뭘 해야 내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게 되었다. 우울하다는 생각은 언제부턴가 가득해졌다. 힘겹게 잠들었고, 잠은 수시로 깼다. 눈을 뜨면 우울했다. 원래 사람들은 남몰래 우울한걸까? 그래, 사람은 모두 우울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란 생각에 계절을 탄다던가, 일을 좀 오래 해서 익숙함에 지루함을 느끼다가 결국 좀 많이 가라앉는 시기가 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난 원래 잘 울었으니까! 내 눈물은 즐거워도, 누군가 진심으로 반가울 때도, 하늘이 예뻐도, (슬플 때는 당연하게도!) 너무 행복한 순간에도 매일매일 났으니까. 난 그냥 감정이 풍부한, 잘 우는 사람인거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사실은 대단히 해낸 것도 없는 나까짓게 감히 우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게 컸다.


 하지만 내게 잠깐 찾아온 줄 알았던 그 시기는 좀처럼 지나가주지 않았다.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원인을 모르면 해결할 수도 없다는 불안감에 머리를 쥐어뜯고 울기도 했다. 이유를 찾으려는 생각에 머릿속은 복잡했고 이유를 찾다보면 어떤 상황이나 남 탓이구나 하다가도 결론은 ‘나 때문’에 도달했다. 내가 싫었다.


 

+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기라도 할 때..

“갑자기 또 편안하다니? 내가 정말 이상하구나, 하지만 불안은 분명 느닷없이 찾아올 거야!”…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내 몸과 맘은 더더욱 위축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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