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미하엘 엔데 : #소통 #판타지
판타지와 현실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동화를 좋아합니다. 빨강머리 앤처럼 힘들 때면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도닥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톰 소여처럼 모험을 즐길 만큼의 용기도 없거든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INFJ라서일 까요. 나만의 안식처인 책 속 판타지 세계는 제게 숨을 쉬어 갈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좋아하는 이야기 속 인물 중에 베스트 3위 안에 드는 아이는 '모모'에요.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의 제목이자 주인공이지요. 그럴싸한 화술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생명을 유지해 가는 회색신사를 상상하면 무더운 여름에도 오싹해질 정도였지만, 어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서는 게 힘센 영웅이 아닌 작은 소녀라는 것만으로도 짜릿했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깨달음을 주는 모모를 보며 진심 어린 경청의 힘을 깊이 느끼게 되었고, 모모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졌어요.
'모모'는 제법 두꺼운 분량이지만 한 번 손에 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책이기에 같은 작가가 썼다는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역시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마법의 설탕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인가요? 저는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두 조각의 설탕만으로도 마음껏 공간 이동을 하며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놀랍게도 렝켄이 요정에게서 받아 온 설탕은 매사에 딸의 의견을 무시하던 엄마, 아빠를 작게 만들어요. 그런데 렝켄의 말에 반대할 때마다 자신의 키에 절반씩 줄어드는 부모님을 보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통쾌해하기보다는 긴장한 낯빛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괜찮지 않은 부모라고 할지라도 아이들 세상에서는 더없이 큰 하늘일 테니까요. 렝켄 역시 처음에는 엄마 아빠를 인형 침대에서 자게 하고 밤늦도록 간식을 먹으며 TV를 보는 등 즐거운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고양이의 공격을 받을 만큼 작아진 엄마 아빠를 되돌리기 위해 자신이 작아 없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게 됩니다. 이로 인해 렝켄의 가족은 비로소 원활한 소통을 하는 관계가 되고요.
여섯 손가락의 요정이 나오는 삽화가 무섭게 느껴진다는 아이도 있는데, 대가가 따르는 요정과의 두 번의 거래와 렝켄이 겪어가는 신비한 모험이 몰입감을 주는 고전 동화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교훈만을 준다기보다는 부모를 작아지게 해도 좋을 만큼 속상한 아이의 마음을 어른들에게도 헤아려 볼 수 있게 하네요.
이런 설탕이 있다면 아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주어서 혼내주고 싶다고 입을 모아요. 이건 상상만으로도 신나는지 얼마나 재잘대는지 모르고요. 물론 무서워서 받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마 제가 어렸을 때라면 후자와 같이 말했을 것 같네요. 부모 때문에 뾰로통해졌다가도 렝켄과의 책 속 여행을 떠나본다면 다시금 동그래진 마음이 되지 않을까요. 자식 때문에 뾰족해진 마음의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