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여행을 갈 때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옷에 관한 고민이 아닐까 한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 중에는 대체로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옷으로 고르게 된다. 물론 그것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가장 편안하거나 제일 멋스러운 옷, 혹은 여행지의 특성과 기분을 살려 새로 산 옷 등과 같이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왜 이렇게 나이가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전 여행지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지금 보다 젊고 옷맵시가 날만큼 보기 좋았다는 것, 그런데 그때 역시 전 여행지의 사진들을 보며 세월의 흐름에 시무룩했었다는 것에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젊음을 간직한 과거를 돌아보며 씁쓸해하지만, 의기소침해 있는 현재를 또다시 미래의 어느 순간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마흔을 넘으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나이듦이 스며들고 있음을 절감한다. 하나둘씩 늘어가는 흰머리와, 세월을 따라 패이고 늘어지는 피부에 마음이 상한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는데 눈이 침침하고 전과 다르게 영민함이 줄어드는 등 조금씩 이전과 같지 않은 몸의 기능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하루하루 사그라져가는 육체와 지인들의 죽음이 반드시 쓸쓸함과 두려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역시 일상에서 조금씩 체험하게 되는 나이듦에 대해 피해 갈 수 없었지만, ‘노년’에 대한 에세이와 시를 모아 놓은 『어쩌면 괜찮은 나이』를 통해 보다 내밀한 사유와 통찰을 보여준다.
열네 살과 마흔여섯 살, 두 번의 자살 기도를 했을 만큼 내적 갈등과 외부적 요인으로 우울증을 겪어야 했던 작가는 이후 여든이 넘어서까지 방대한 집필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그가 건네는 ‘오십 이후의 삶, 죽음, 그리고 사랑’은 “젊은 시절 노인처럼 느꼈고, 늙어서는 젊었다.”라고 그를 회상하는 휴고 발의 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책이다.
나이 오십이 되면 사람들은 유아기적인 버릇이 차츰 없어진다. 명성과 존경을 받으려는 생각을 차츰 떨쳐내고, 아무런 열정 없이 자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것을 배우게 되고, 침묵하는 것도 익히며,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배운다. 허약해지고 나약해지는 대신에 그런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커다란 이득이다.
그는 마흔 살과 쉰 살 사이의 십 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 있어 힘겨운 세월이지만 그러한 불안 뒤에는 편안함이 다가온다고 말한다. 나이듦은 단순히 망가지고 시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의 단계처럼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그의 말은 살아감에 위안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것에 만족해하며 겸손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만을 완고하게 고집하며 젊었을 때 보다 더 큰 욕심을 가지고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기나긴 굴곡의 시간을 견뎌낸 노년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빛을 잃지 않도록 닫힌 마음속 고루함을 덜어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흐르는 세월 속에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