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친구들

by 유재은


컴퓨터와 휴대폰이 없던 내 어린 시절은 동화 속 작은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어린 나의 마음을 흔들며 가치관의 뿌리가 되어준 그들은 <소공자>, <소공녀>, <작은아씨들>, <빨강머리 앤>, <톰 소여의 모험> 속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공자>는 수없이 읽고 또 읽었는데 그만큼 나는 이야기 속 세드릭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톰이 허클베리 핀과 함께 인디언 조의 무서운 비밀을 풀어가는 스릴보다 내게 있어 세드릭과 할아버지의 관계는 기적 같은 모험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지만 언제나 예의 바르고 어른스러운 세드릭은 밝고 순수한 8살 소년이다. 따스한 영혼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이 작은 소년은 어느 날 자신이 영국 도린코트 가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발그레한 볼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8살 소년 세드릭.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결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향해 진심 어린 순수한 사랑을 건네고, 그것은 결국 그 누구도 넘을 수 없었던 차갑고 이기적인 마음의 벽을 녹아내리게 한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찬 노인의 변화를 보며 어린 나는 전율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나만의 비밀을 알게 된 듯 충만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꼭 다시 읽고 싶었던 ‘소공자’를 <세드릭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났다. 사실 어릴 때 나는 ‘소공자’와 ‘소공녀’라는 제목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고 이야기를 통해 느낌으로 그것을 담아냈다. 그런데 그것은 일본식 표기를 그대로 옮겨 와서 만들어진 제목이라고 한다. 원제인 『Little Lord Fauntleroy』를 새로운 옷을 입은 책으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사람을 향한 순수한 믿음은 기적을 불러온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 믿음 앞에서만큼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이후 나는 뾰족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늘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세드릭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의 진심 덕분인지 살면서 그리 날을 세우며 내 곁에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인생의 수많은 파도를 겪으며 ‘호의가 호구가 되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세드릭의 이야기가 동화 속 순진한 환상이라고 여기는 마음도 이해된다. 하지만 조그마한 물결이 모여 거대한 파도를 이루듯 이 작은 가치의 실현이 가져올 작지 않은 힘을 아직 믿는다. 나는 여전히 내 작은 친구들 덕분에 삶을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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