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로 부는 바람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꽃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정호승
문장 사이로 바람이 분다. 문장의 향기를 헤아리니 마음이 일렁인다.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환하게 빛나는 문장. 그것은 내 마음의 스위치를 켜준다.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밝아진다.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이토록 글숲 거닐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떤 좋은 책, 귀한 문장도 그것을 담을 마음 그릇이 있는 사람에게만 그의 삶을 흔들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같은 책,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언젠가 무심코 지나쳤던 글이 인생의 길 위에서 빛이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면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학창 시절, 헤르만 헤세는 나의 삶을 위로해 주었다. 깊은 내면의 숲에서 방황의 길을 걸었던 그는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문장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처음으로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찾아 읽으며 한 권 한 권 보물처럼 책장에 꽂아 두었던 나는, 그로 인해 인생의 첫 굴곡진 길에서 마음을 단단히 다져갈 수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헤르만 헤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데미안』이다. 모든 것을 이해할 만큼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안온하게 살아온 내가 만난 또 다른 세상. 그 속에서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싱클레어의 성장과 닮았기에 더 깊이 이해하며 몰입하게 되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열일곱의 나는 그것을 노트에 꾹꾹 눌러 담으며 전율하는 마음 깊이 새겨 넣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내 인생의 빛이 되어 나를 이끈다. 관계에 지치고 살아감이 버거울 때 문장 사이로 부는 바람은 내 마음의 구멍을 어루만지며 다독인다. 언제든 내가 다가가면 더없이 묵묵한 벗으로, 삶에 힘이 된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내가 사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책장을 펼친다. 문장의 향기를 헤아리며 침잠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나를 안아주는 듯하다. 방향을 잃은 내게 길이 되어준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문장의 향기를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