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았던 여성을 밝혀내는 작가
난 섬세함과 민감함, 세심함 같은 말에 끌린다. 나와 정 반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런 단어들을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기가 죽기도 한다. 특히 일류 작가가 지닌 민감한 촉과 문장마다 굽이치는 섬세한 결을 보면 두려워지기도 한다. 왠지 눈가가 촉촉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고, 나는 저들의 세계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이 자리한다. 일하다가도 세심함과는 멀찍이 떨어진 나를 의식하면서 좌절한다. 자초지종을 무시하고 일을 밀어붙일 때 난 퇴근이라는 출구를 향해 앞만 보고 뛰는 그레이하운드가 된 기분이다. 난 가끔 어떤 이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사실 이해할 게 너무 많아서 생긴 착오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한다. 사려는 피곤한 일이니까. 그럴 때 침대 맡에서 주워 읽는 책은 내 불안을 더 부추긴다. 그 안에 편재한 다정한 사려가 날 초조하게 한다. 어제 읽은 것을 오늘 행하지 못한 뼈저림이다. 그래도 조금 읽다 보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류 작가가 그린 고된 이해의 과정을 보면서 문학의 형태를 그려나간다. 내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사건 자체의 스펙터클이 아닌, 사건 이후의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정말 순수문학이라는 게 있다면 그 '순수' 안에는 사건이 자아내는 빛의 파장이 줄줄이 적혀있지 않을까.
난 가끔 쇼코가 감정을 한껏 덜어낸 얼굴로 집 앞마당에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비 오는 아파트 자취방 앞에 우산을 챙겨 온 할아버지의 남루한 얼굴도 여전하다.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오 년이 넘어가지만, 소설이 가져온 인상은 오히려 더 생생하다. <쇼코의 미소>에 수록되었던 모든 작품은 마치 버릴 게 없는 네스프레소 캡슐처럼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이유는 최은영이 가진 문체에 대한 신뢰에 기인한다. 문장 하나하나 작가 특유의 사려를 느낄 수 있다. 무리한 보폭 없이 끝없이 길을 걷는 당나귀처럼 온순하다. 타인을 향한 사려가 담긴 단어의 조탁과 문장을 부대낌 없게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비결이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한 보 한 보에 집중하는 작가의 태도가 느껴진다. 내디딘 문장이 미처 뭔가를 놓치지 않았을까 심려하는 그 마음이 애틋하다.
최은영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었을 때도 밑줄이 빼곡하게 그었다. 책을 읽으며 영역표시를 하듯 이곳저곳 내 의도와 채취를 담았다. 책과 나 사이 점이지대를 찾아내서 곱씹어보는 과정이었다. 난 종종 독서를 할 때 이해 가능한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는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이해할 수 없을 땐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우다가 듣기 좋은 말에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펜을 드는 건 아닐는지. 내가 아무리 누군가에게 열려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도 그게 가당키나 할까. 속단을 경계하며 살아도 챙기지 못한 마음이 불쑥 솟아난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나와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처방전과 같다. 시대가 앓는 갈등 틈으로 진입하려는 작가의 야심은 <쇼코의 미소>보다 좀 더 현실 문제에 개입하려는 인물의 꿈틀거림에서 드러난다. 젠더 감수성, 남성 권력이 지닌 폭력성과 그로 말미암은 페미니즘, 빈부격차, 발작적인 폭력, 이방인 정서, 시골 소멸과 의뭉스러운 도시의 모습이 인물을 습격할 때 이야기는 거칠어진다. 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바삐 넘기던 책장을 멈춰 세우는 고난이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문제 속에 가닿으려는 작가의 분투가 느껴진다. 마음 놓고 즐길 수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더는 움츠러든 어깨를 지닌 여린 아이로만 보이지 않는다. 방 한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제 속내를 드러냈던 작가는 이제 버스를 타고, 어느 도시 골목에 기대어 선 타인에게 시선을 던진다. 최은영은 좀 더 무릅쓰며 내키지 않는 곳까지 파고든다. 눈을 마주하길 주저했던 수줍음은 여전하지만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 읽는 내내 곳곳에서 숨을 골라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은영의 작품 세계를 선연하게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다. 군부독재 시절과 극심한 빈곤, 운동권 학생들과 열악한 노동자의 처우와 같은 먼지 나는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흉악한 시대에 미처 가리어져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역사를 살핀다. 작은 상처가 덧나 끝내 생채기를 내는 가혹한 전개지만 작가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쪽 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시대는 쉽사리 잊었으나 한 개인에겐 상흔처럼 남아있는 여성의 삶을 그려낸다. 상처 난 자의 궁여지책을 고육지책으로 만드는 참혹한 전개에 마주하기가 버겁지만, 최은영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나아간다. 시간은 쉽게 잊었지만 분명히 남겨두고 온 한 여자의 자취를 따라나선다.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멈춰 서서 빤히 응시한다. 소설이 가진 이러한 끈덕진 태도는 삶이란 당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목소리처럼 들려 마음이 복잡해진다. 작품의 말미에 최은영은 이런 문장을 적었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첫 장편소설 <밝은 밤>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 단편들이 내재한 주안점을 확장한 작품으로 보인다. 소설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연표의 상단에 외면당해온 여성을 적어 넣는다. 아무도 마이크를 주지 않았던 그네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그들도 있는 힘을 다해서 모욕적인 시대를 이겨내 왔음을 공표한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뒷바라지나 하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기능적으로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앓고 못 견뎌 실수를 저지르고 끝내 용서하지 않았던 한 인간으로서 서사에 불을 지핀다. 소설은 여성들의 처지를 그저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고작 남성들의 장대한 삶을 극적으로 치장하는 조력자에 머물지 않는다. 여성들은 엄연한 역사의 주동자로서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에서 살아남는다. 장대한 희생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무책임하게 떠나간 남성을 배제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버텨냈던 여성들을 따라나선다. 작가는 마치 씨실과 날실로 짠 직물처럼 촘촘한 감정을 수놓는다. 냉담한 역사의 한 복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연대가 옷감을 떠다가 설빔을 해 입힌 것처럼 풍요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최은영이 그린 한국이라는 공간에는 지긋지긋한 도시인의 염증과 결국 그곳에서 천착할 수밖에 없는 힘 빠진 어깨가 있다. 감히 위로라고 뭉뚱그려버리기에는 귓가를 맴도는 모욕적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최은영은 도시의 새침한 생김새와 매캐한 먼지를 스치며 걷는 이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우리와 멀지 않고 친숙하기만 한 도심 풍경이다. 인파를 자세히 살피다 보면 누군가는 사위를 기민하게 살피며 고개를 파묻고 톡을 보내고 있다. 그는 쭈뼛거리며 말을 건넨다. 인스타그램이 더 편하고, 감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언어마저 이미지로 소비하는 시대의 모습이다. 최은영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소설 안에 고스란히 보존한다. 그리고 미처 보지 못했던 게 있음을 드러낸다. 잊을만하면 나를 괴롭히는 기억에 골부림 하는 이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는 친구 앞에서 자신이 지었던 표정을 기억하고, 멀리까지 자신을 찾아온 친구를 현실적 고민 탓에 외면했던 무심함에 대해 생각한다. 최은영은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언어가 협소해진 시대의 감정이란 불가해한 뉘앙스에 가깝다. 감정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뭉친 어깨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속도전의 도시는 늘 불가결한 귀결을 품고 우리를 위협한다. 인생은 시시때때로 음습한 마음에 시달리기 마련이고, 서점을 찾는 이들은 버거운 가슴을 붙들고 문학 코너 앞에 선다. 매대에는 무수한 작가들이 미처 휘발하지 않은 감정을 기어코 형언하며 버티고 서 있다. 그들은 말한다. 눈을 비비고 보면 비루한 하루에도 미세한 차이는 있게 마련이라고. 그중에서도 최은영은 단연 돋보이는 연구자다. 더딘 손길이지만 최대한 신경 써서 스쳐 가는 감각을 매만지는 감정 기술자다. 오직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민한 관찰자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작가라면 계속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두툼한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