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 보이지만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이방인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땐 종종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일상의 커다란 구멍을 마주하고도 미처 돌아볼 새 없이 스쳐 지난다. 늦은 밤 뭔가가 떠올라 기억을 물끄러미 응시하지만, 머리가 아득해 눈꺼풀만 무겁다. 언어는 애초에 불완전해서 마음을 온전히 녹여낼 수 없다. 이런 우리를 위해 일류 작가들은 창밖으로 멀리 어두워지는 늦저녁 하늘처럼 불가해한 현상을 서술한다. 내가 정체 모를 기분에 허우적거릴 때 문학의 자장 속으로 이끈다. 미묘한 문장과 정성스레 조탁한 단어가 감정을 틈새를 파고든다. 미묘한 느낌을 놓치지 않고 광채를 띤 순간을 포착한다.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은밀한 감정을 들춰내어 독자를 특별한 곳으로 인도한다.
줌파 라히리는 독특한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영국의 벵골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유년 시절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떠나면서 로드 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그런 연유로 작품 대부분이 이방인의 정서에 가닿아 있다. <축복받은 집>은 줌파 라히리의 데뷔작이자, 누구나 한번 읽으면 잊지 못하는 걸출한 소설집이다. 다음은 이 책에 수록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의 마지막 문단이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이처럼 줌파 라히리는 멀리 떠나온 자의 소회가 무척 중요한 작품을 쓴다. 이 책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맨 앞에 수록된 <일시적인 문제> 역시 외롭게 도시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다. 쇼바와 슈쿠마는 결혼한 지 3년이 된 부부다. 몇 달 전 아이의 사산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는 이젠 의례적인 말조차 나누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안타까운 건 차라리 소란스럽게 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바닥이 드러날 텐데, 현재로선 서로를 붙잡을 마음의 동력마저 상실해버렸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 이때 일시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동네 전기공사로 닷새 동안 저녁에 한 시간 정도 단전이 된다는 안내문이 붙여진다. 부부는 밤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어색하게 식사를 한다. 하지만 어둠에 의지해 한결 편안해진 부부는 평소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이 터놓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애잔한 마음에 젖는다. 남편의 집을 처음 찾았을 때의 어색함. 그의 수첩을 들추며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며 느꼈던 설렘. 어느 날 데이트에서 문득 이 사람이 내 반려자가 될 것을 직감하며 느꼈던 환희까지. 퇴근하면 방에 처박혀 서로를 멀리하던 부부는 정전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묵은 오해를 풀어낸다. 하지만 공사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며 일시적인 화해 무드도 종료된다. 전기는 복구되고 다시 불은 다시 켜졌지만 그들의 애틋한 시간마저 사라졌다. 저녁을 위해 사뒀던 와인과 케이크도 이제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다시 어색한 사이로 돌아간다. 와인 잔엔 붉은 자국이 남겨져 어젯밤의 자취만 상기하지만, 미처 다 돌지 못한 셀로니어스 멍크의 앨범처럼 두 사람은 잔망스럽게 빙빙댄다.
"생일 양초는 다 타버렸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그릴 수 있었다. 약간 기울어진 커다란 눈, 도톰한 포돗빛 입술, 두 살 때 높은 의자에서 떨어져 턱에 생긴, 아직도 눈에 띄는 쉼표 모양의 상처, 슈쿠마는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불필요하게 보였던 화장품이 이제는 필요했다. 용모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녀를 또렷이 드러내려면."
익숙한 관계일수록 서로를 속단하고 미루어 짐작한 걸 확신이라는 터울에 가둔다. 인간은 얼마나 미욱한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줌파 라히리는 우리가 바닥을 응시하는 미세한 순간을 끌어올려 마치 이 순간만이 전부인 것처럼 시간을 잠식한다.
<축복받은 집>의 두 번째 이야기인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 등장하는 '피르자다'라는 남자는 아이들을 방글라데시 지역인 바카에 두고 온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당시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분리 독립을 위한 전쟁이 막 벌어지기 전이라 피르자다는 TV 뉴스를 보며 절망한다. 피르자다는 인도 캘커타 출신 부부의 집에 서 한 달에 한 번 식사를 하는데, 그 집 아이의 눈으로 본 피르자다의 근심은 이해할 수 없는 허상일 뿐이다.
“피르자다 씨는 벵골 사람이지만 이슬람교도란다. 그래서 인도가 아니라 동파키스탄에 살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피르자다 씨와 나의 부모님은 똑같은 말을 썼고, 똑같은 농담을 하며 웃었고, 외모도 얼마간 비슷했다. 식사할 때 절인 망고를 먹었고, 매일 저녁 식사 때는 손으로 밥을 집어 먹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그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를 세계지도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타지에서 조국의 분리를 지켜보고, 그로 인해 인도인들 역시 자연스레 분열한다. 분노와 회의, 그리움의 정조들이 작품을 내내 떠돌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납득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삶의 작은 것에서 위로를 찾으며 살아간다. 작품들에서 유독 인도의 전통요리와 차, 의복과 의식에 집착하는 이방인들은 꼬리가 잘려버린 뱀처럼 스스로 움츠러들 뿐이다. 피르자다의 슬픈 눈, 부모의 침묵, 어린아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하는 어른들을 보며 그것이 명명백백한 세상의 이치임을 깨닫는다. 지도 속 인도는 각기 다른 색을 가진 파이 조각처럼 나뉘어 있다. 마치 이 식사시간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고요한 적막을 부른다. 이는 작가가 가진 감정의 침전물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다.
운전석에 앉아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볼 때가 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어떤 사람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껌을 씹는다. 음악을 듣는 여고생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난 그들을 보며 짐짓 놀라워한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그들을 거기에 놓곤 따로 떼어본다. 그 속에 이야기를 가미하고, 그들 각자의 우주를 상상한다. 차마 흘려보내지 못하고 그들이 서 있는 꼴을 붙잡는다. 한참을 살피다 보면 그들도 나처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엔 타인의 주저하는 말투와 혹시 엇나갈지 모르는 말의 뉘앙스를 살피는 화자가 있다. 곤두선 감각이 어느 순간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다가 한편으로는 누구나 골치 아파 모른 척하는 걸 끄집어낸다. 가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찧고 까불다가도 몽롱하게 취해버린다. 어느 순간 아, 이게 소설을 읽는 맛이지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어디선가 떠나온 당신과 나를 위로해주는 맛에 시종 입맛을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