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위대한 음악가의 삶은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해왔다. 감미로운 음악 이면에 감춰진 사생활이 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고상한 작품만 보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음악가의 사연은 때론 예술가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음악가의 삶이 비극에 가까울수록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수많은 타블로이드지는 연예인들의 사생활만으로도 연명할 수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추락의 낙차는 더 컸고, 아티스트의 신비로운 음악도 적나라한 일상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내리며 근거 없이 떠도는 자극적인 소문이 아닌, 진정한 음악가의 삶을 비춘 글은 드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불세출의 걸작을 남겼지만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쳇 베이커의 삶을 살펴보자.
영화 <리플리>에는 술집에서 주인공이 쳇 베이커를 흉내 내며 'My Funny Valentine'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주위 공기가 느슨해지면서 미국 서해안의 맑디맑은 하늘을 닮은 쿨 재즈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영화 배경은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의 캄파니아 지방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미국의 트럼페터 쳇 베이커가 스크린을 장악한다. 1950년대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던 쳇 베이커는 나른하고 감각적인 선율로 수많은 여성 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마일즈 데이비즈와 함께 쿨 재즈의 아이콘으로 불렸으며 1954년 캘리포니아에서 녹음한 'Chet Baker Sings' 앨범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특히 다른 재즈 뮤지션과 다르게 언제라도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하고 중성적인 멜로디메이커로서의 소질이 한국인의 정서와 잘 부합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재즈 에세이 <재즈의 초상>에서 쳇 베이커를 이렇게 묘사한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곡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하지만 이런 찬사와 달리 쳇의 삶은 그의 음악을 즐겨 듣는 팬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로 추악하다. 작가 제임스 개빈이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으로 남긴 <쳇 베이커> 전기의 부제는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다.
<쳇 베이커> 전기는 쳇의 음악과 삶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무엇보다 음악 평론가 김현준 씨의 번역이 훌륭해서 재즈의 초기 역사부터 배울 수 있는 재즈 입문서이기도 하다. 쳇의 삶을 폭력적으로 요약하자면 공연과 여자, 마약과 폭력 그리고 불안과 몰락이다. 쳇은 자신의 곡절 많은 삶에서 이중인격에 파렴치한 악역으로 열연했다. 무대 위에서는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로 여심을 울렸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약물 중독에 극심한 여성 편력까지 안하무인의 무뢰한이 되었다. 쳇은 쿨 재즈의 대표적인 트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로 인기 가도를 달렸지만, 끊이지 않는 사생활 문제로 명예를 실추했다.
쳇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고, 도대체 안정을 취하기 어려운 가족 곁에서 자랐다. 십 대 후반에 우연히 악기를 접하고 연주에 재미를 붙일 무렵 군에 강제 징용되어 전쟁을 통과했다. 스무 살이 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연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잘생긴 외모 덕이라고 폄하를 당했다. 거기에 심약한 기질과 문란한 사생활에 결정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면서 궁지에 몰렸다. 뮤지션이 음악이 아닌 범죄로 이슈 몰이나 하니 동료 뮤지션들은 쳇을 대놓고 무시했다. 특히 마일즈 데이비스는 쳇을 동네 꼬마라도 다루듯 했고, 쳇도 평생 마일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 화려한 기교와 힘을 중시하던 미국의 '밥' 재즈 신에서 쳇이 음악적으로 자신을 내보일만한 틈은 없었다. 미국 땅에서 인정받지 못한 쳇은 결국 유럽으로 향했다. 그는 오직 마약 살 돈을 구하기 위해 무리한 유럽 투어를 소화했다. 쳇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독일, 네덜란드, 파리와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 보냈다. 미국인들이 힘과 기교의 재즈를 선호하는 반면, 유럽 재즈 신은 멜로디와 느낌에 더 높은 가치를 두어 쳇 베이커의 서정성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쳇은 우수에 젖은 목소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 명성을 약물로 다 까먹은 케이스다. 커리어 말미에는 잘생긴 얼굴이 다 무너지고 치아에 크게 다치면서 은퇴 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쳇은 트럼펫을 불기 어려운 시절에도 젊은 여성과 만나 데이트를 했고, 빚을 내서라도 마약을 했다. 오로지 마약 할 돈을 구하기 위해 노예 계약에 가까운 조건을 받아들이고, 조악한 녹음과 공연을 수용했다. 자식에게는 옷 살 돈 한 푼 건네지 않을 만큼 가족에게 끝까지 비겁했다. 그는 약물 문제로 커리어를 스스로 훼손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쳇은 나이를 먹고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환각의 틈에 기생했다. 끝내 네덜란드의 한 호텔에서 투신할 때까지 마약중독자였다.
재즈의 역사는 길고 길어서 세월은 쳇의 추악한 삶을 잊었다. 그 대신 트럼펫을 무릎에 대고 의자에 앉아 들릴 듯 말 듯 얇게 연주하는 한 뮤지션의 위태로운 이미지만 남겨뒀다. 최근에는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를 연기한 영화 <본 투 비 블루>가 개봉하면서 구제 불능에 가까운 쳇의 삶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