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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2. 2018

로맹 가리

삶의 마지막 모습까지 퇴고를 끝낸 남자

 로맹 가리는 평생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써낸 작가이면서 동시에 파일럿으로 전장을 누빈 경력이 있다. 적막한 이른 아침 비좁은 조종석에 앉아 어둠이 깔린 산등성이를 타고 비스듬히 비행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세상에 유일무이한 이야기를 써내야 한다는 강박을 뒤로하고 강 위를 활강하며 내려오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오늘은 낮엔 비행하고 밤엔 글을 썼던 로맹 가리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20세기의 낭만과 스릴을 동시에 품었던 비행 청년 로맹 가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로맹 가리는 러시아 유대인 집안 태생이다. 그는 홀어머니에 의해 길러지다 14살에 프랑스로 이주하고 나서 두각을 보인다. 파리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을 전공한 직후 프랑스 공군에 입대한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 기간에 일급 조종사로 승전에 이바지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로는 공적을 인정받아 프랑스의 훈장 중 가장 명예롭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한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로맹 가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기 앞의 생은>은 로맹 가리의 대표작이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로 1975년 공쿠르상을 받기도 했다. 아랍인 소년 모모와 그를 돌봐주는 유대인 여성 로자의 이야기를 다룬 <자기 앞의 생>은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와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며 자라온 자신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은 소설이다. 러시아 태생 유대인으로 늘 프랑스 내에서도 이방인처럼 살아왔던 로맹 가리는 늘 비주류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인종과 종교가 다른 인간들이 서로 베풀고 위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여전히 세계는 내전이 횡횡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에 총구를 겨누고 있지만, 소설에서만큼은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주인공 모모는 열 살 소년으로 1970년대 전후로 추측되는 프랑스 빈민가에 산다. 여러 민족이 엉켜있는 후진 동네엔 가난의 냄새가 폴폴 풍긴다. 친부모에게 버려진 모모는 위탁모에게 맡겨진 신세다. 그렇다고 모모가 우려처럼 어둡게만 자라는 건 아니다. 음습한 환경에서도 제 나름대로 천진하고 기발한 상상으로 독자를 무장해제시킨다.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표정을 하고선 불가해한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장면들엔 위트와 페이소스가 짙게 드리운다.

 

 로자는 모모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여러 창녀의 아이를 키운다. 과거엔 로자 역시 매춘부였지만 이제는 시들어진 육체를 추스르기에도 버겁다. 뒤를 보자니 참혹한 과거가 산재하고 옆으로 눈을 돌려봤자 벌거숭이 아이들뿐이다. 그녀는 큰 덩치를 가누기도 힘든데 매일 7층 건물을 낑낑대며 올라야 한다. 오로지 통증만이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주렁주렁 달린 일거리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로자의 절뚝이는 삶은 모모에게 심각한 불안을 자아내는데, 모모야말로 로자가 죽으면 갈 곳 없는 천애고아이기 때문이다.


 모모는 종종 로자 아줌마가 지하 창고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에서 잠을 자는 곰처럼 그 안에서 고개를 묻고 육체의 통증과 불안을 달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온 적이 있는 그녀는 제 삶의 최저점을 불러들이며 생의 밑바닥을 견디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으로 가끔 히틀러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거기엔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바닥의 정서가 있다.


 소설은 유대인, 회교도, 성 소수자, 흑인, 이민자, 매춘부, 빈민층 등 이른바 레미제라블이 모여 만든 공동체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절망을 예감한 이들이라고 보기엔 옹기종기 모여 활기에 찬 소리를 지껄인다. 어떤 교훈도 의미도 없는 생계를 비관하기보다는 억척스럽게 끌고 가는 힘이 인상적이다. 바닥을 친 존재는 더 내려갈 곳 없다는 데 위안을 삼기 마련인 걸까. 생계 이외엔 아무것도 개의치 않은 자에겐 꿈틀거림이야말로 걸음을 뗄 수 있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로맹 가리는 끝내 로자의 생을 파괴한 후 모모를 홀로 남겨둔 채 끝을 맺었다. 이제 이 아이는 흘러넘치는 여생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모모는 전과 같이 근사한 숙녀의 모습을 한 엄마를 상상할 수 있을까. <자기 앞의 생>은 우리가 기피하는 현실의 구렁텅이를 비춤과 동시에 그 와중에도 더러운 손톱으로 흙구덩이를 기어오르는 자의 존엄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거기엔 한 치의 빛도 없지만 그렇다고 값싼 동정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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