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Oct 03. 2019

김영하

비관주의자가 삶을 즐기는 방식

 김영하는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 예능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미있는 책을 쓰는 작가다. 그는 95년 등단 이래 장르의 자장 안에서 과감한 시도를 하는 스타일리스트로 문단에 반향을 일으켰다.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힌 심리 묘사는 다층적이고, 이야기 곳곳에 지적인 사유가 녹아있다. 특히 철학, 미술, 음악을 가리지 않고 절묘하게 사건의 알레고리로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비관주의자가 삶을 즐겁게 사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위악과 냉소가 감도는 도시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두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구는 쿨한 스타일이 그의 작품을 지탱한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들이다. 


빛의 제국(2006)

 때는 86년, 김기영은 고정간첩이 되기 위해 서울 한 대학에 잠입한다. 기영은 시위 현장과 강의실을 바삐 오가며 한국 사회의 진통을 온몸으로 겪는다. 졸업 후에 후배 장마리와 결혼을 택한 기영은 예술영화 수입업자로 서울에 정착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간첩 활동을 시작하려던 차에 자신을 관리하던 북쪽 요원이 실각하면서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로 전락한다. 기영은 고국이 자신을 잊은 것으로 판단하고 오로지 남한에서의 성공에 매달린다. 95년, 어느새 2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온 기영에게 난데없이 복귀 명령이 하달된다. 이제 시간은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빛의 제국>은 남파 고정간첩의 내적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한국식 스파이 소설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높은 완성도로 한국은 물론 프랑스에 출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소설 제목은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빛과 어둠이 기이하게 공존하는 초현실적인 그림 '빛의 제국'에서 따왔다.


 소설은 시종일관 서늘한 분위기와 적나라한 인물 묘사가 인상적이다. 분단과 체제라는 거대한 담론에 휘말리기보단 개인의 일상적인 색채를 그리는 데 더 주력한다. 가령 소비사회 한국의 민낯, 386세대의 몰락을 바라보는 기영은 시각은 소위 후일담 문학이라 부르는, 과거를 막연히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한 비판의식에 가깝다. 김영하는 경계에 선 기영의 입장을 십분 이용해 우리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이 도시에서 작동하는지 엿본다. 그가 곧 북으로 복귀해야 하는 간첩 신분이라는 건 이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맥거핀'에 가깝다.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연료통 밑바닥에 가라앉은 몇 방울의 냉소를 연료 삼아 겨우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권태가 걸음걸음 바짓자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의 공작원반, 흔히 130 연락소라 부르는 그곳을 막 떠나온 기영은 그의 허무주의적 태도가 조금 놀라웠다. 이런 적지에서, 전두환 역도가 광주에서 수천의 인민들을 백주에 학살하는 땅에서 긴장도 적개심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권태와 허무야말로 이 사회의 특질이었다.”

 모든 교육을 북에서 받은 김기영은 자신의 권태에 놀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화려한 도시가 숨통을 조일만큼 부대낀다. 이념과 가치가 획일화된 북에서는 도통 갖기 어려운 허무가 시간을 짓누른다. 기영은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 자문하지만, 선뜻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단에 복종했던 평양에서의 삶이 한없이 옛일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잠자리에 들기 전 떠올렸던 이념을 향한 고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영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일상에 치여 생각하기를 잊은 제 삶을 회의한다. 
 김영하는 휘황한 수식어를 배제하고 되도록 담백한 언어를 구사한다.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빛은 차갑고 메마르다. 그는 타협 없이 비극을 적는 작가다. 어설픈 희망이랑 진즉에 집어치우고 곧장 생의 아이러니와 마주한다. 어쭙잖은 낭만을 기대하긴 어렵고 오직 감정을 덜어내기 바쁘다. 드물게 등장하는 유머마저 다분히 위악적이라 책을 내려놓고도 뒷맛이 텁텁하다. 난 이러한 점을 김영하 문학이 가진 본류라고 생각한다. 

검은 꽃(2003)

 <검은 꽃>은 구한말 약 천여 명에 달하는 멕시코 이주 한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미주까지 공간을 확장한 역사소설이다. 1905년, 짧은 기록으로만 남겨진 이들을 김영하가 상상력을 가미해 되살렸다.
 사회 각계각층의 조선인이 제물포 항구에서 영국 증기선 일포드호에 승선한다. 농민, 장돌뱅이, 신부, 무당, 도둑, 군인, 심지어 황제의 일족까지 뒤섞여 있다. 조선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 그들은 이역만리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밀어젖힐 때마다, 조선인들은 예의와 범절, 삼강과 오륜을 잊고 서로 엉켜 버렸다. 남자와 여자가, 양반과 천민이 한쪽 구석으로 밀려가 서로의 몸을 맞대고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실제 이주 한인들은 멕시코에 도착해서 노예에 가까운 현실과 맞닥뜨린다. 수년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새로운 삶을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이 지나 어렵사리 계약이 끝맺고도 그들은 결코 정착하지 못한다. 조선이 패망한 탓에 고국을 잃어버렸고, 뿌리가 없는 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때는 멕시코 혁명이 목전에 다다른 혼돈의 시기. 방랑자들은 저마다 혹독한 현실 앞에서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다.


 정착지를 찾지 못하는 문제는 비단 타국 이민자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부모님 세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일생을 할애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가 온전한 거처 하나를 찾지 못해 오늘도 빚을 지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방 한 칸 집세가 날로 치솟아 멀쩡한 직업을 갖고도 카드빚에 허덕인다. 방랑자의 설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검은 꽃>은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순간을 적은 픽션이고, 최근 국제적인 화두로 떠오른 난민 문제와 같은 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토착민의 배타주의는 지극히 폭력적이며, 여전히 한국 사회는 낯선 이방인들을 어떻게 처우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점은 버려진 이를 포용할 수 없는 사회라면 인도주의라는 말은 끝내 요원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호출(1997)


 <호출>은 김영하의 첫 소설집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중에서도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진 <거울에 대한 명상>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인간을 통해 나르시시즘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소설 화자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만족한다. 턱을 쓱 추켜올리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응시한다. 그는 소설에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말 그대로 거울 속 남자다. 번지르르한 게 다인, 어떤 특질도 짚어낼 수 없는 전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남자는 말한다. ‘이미지는 중요한 거야. 실체보다 이미지가 더 실제적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 그의 아내는 평범한 집안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 거울 속 남자의 사회 위상에 걸맞은 선택이다. 그의 직장은 누구나 추켜세우는 곳이고, 집과 차는 남 부러울 게 없는 정도다. 그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아내가 지겨울 때면 정부와 데이트를 즐긴다. 아내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을 지닌 그녀를 통해 욕망을 채운다. 어느 날 남자는 느닷없는 순간에 정부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제 잘난 맛에 살던 남자는 정부의 고백에 몸을 움직이기도 버거운 차 트렁크 안에서 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인스타그램이 잠식한 이 도시는 서로 잘남을 전시하기 바쁘다. 현대인은 습하고 퀴퀴한 삶의 이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럴싸한 것에 매혹을 느낀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력만 드러낸다. 김영하는 거울에 비치지 않는 곳 어딘가에 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호출>은 수록작 전반에 심리적인 공허를 채우지 못한 인물이 대지를 부유한다. 자유와 반역의 기회가 사라진 이 땅에서 기껏해야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현실을 조롱하는 일뿐이라는 듯 팔짱을 끼고 위악적인 소리를 지껄인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지 못해서일까. 쉼 없이 얼굴에 냉소를 머금고 위악을 뱉는다. 난 그들의 얼굴에서 표정을 가다듬고 의자에 기댄 김영하의 얼굴을 본다.


여행의 이유(2019)


 책이란 어쩔 수 없이 간접 경험이다. 아무리 곡진하게 적어도 당사자가 아니면 한갓진 소리로 들리기에 십상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공명할 수 있으려면, 결국 저자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 김영하의 여행책 <여행의 이유>는 대부분의 걸출한 산문이 그렇듯 여행 중에 일어난 이런저런 실패담을 통해 저자 특유의 색을 입힌다. 좌충우돌 모험기를 읽으며 독자는 마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재난 영화를 보듯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작가는 그 실패가 일상에 남긴 자국을 유려한 필치로 적는다. 그것은 여행의 교훈이라거나 실패를 딛고 성장했다는 식이 아닌, 일상 밖에서 오롯이 자신이 된 순간의 여파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여행이라는 서사가 내게 남긴 걸 끄집어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여행엔 저만의 고유한 서사가 깃들기 마련이니까. 독자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어느 한 편에 묻어두었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저자의 실패담이 결코 나와 멀지 않음을 깨닫는다. <여행의 이유>는 이처럼 여행이 가진 한계와 실체를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낭만적인 여행이 끝난 후에 곱씹을 수 있는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김영하는 프랑스 작가 실뱅 테송의 말을 빌려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라고 말한다. 나 역시 간혹 명동 거리를 걸을 때 무수한 관광객에 질리곤 한다. 어릴 적 추억이 새겨진 명동 성당마저 빼앗긴 기분이 들어 얼른 군중을 피해 을지로 귀퉁이로 달아난다. 현지인은 타국에서 온 손님을 달가워 않는다. 어렵사리 돈을 모으고 짬을 내 휴가를 왔을 이들이 그저 귀찮을 뿐이다. 유럽에서도 요즘 주요 관광 도시가 오버 투어리즘으로 고생한다. 도시를 점유한 여행자로 인해 거리마다 인산인해고, 현지인이 찾는 카페가 관광객에 잠식된 지 오래다. 작가 수전 손택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다 해도 여행은 영혼의 식민주의라 칭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전 세계에 화두로 떠오른 난민 문제와 엮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만연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움직임이 횡횡한다. 이런 배척의 기류에 대해 김영하는 자신이 배낭여행을 하던 일화를 언급하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이십 대에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기대치 않은 환대를 받았다. 그저 여행자라는 이유로 친절을 베풀었다. 그가 잘나거나 불쌍해 보여서가 아니라 낯선 곳에 떨어진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김영하는 이런 기억에 보답하기 위해 가끔 한국에서 길을 헤매는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덕을 순환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무수한 여행자가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라고. 여행자란 늘 초행인지라 어리숙하기 마련이고, 타인의 친절 없이는 곤란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김영하는 여행이 지닌 폭력성에 비추어 순환하는 환대의 가치를 상기한다.


이전 12화 조지 오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