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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15. 2023

행복은 반복의 욕구다

 최근 신작 <운동의 참맛>이 딱 1주간 YES24 베스트셀러 20위에 들어갔다. 아, 내 책이 이슬아 작가 밑에 있다니. 그걸 캡처해서 보고 또 보면서 힘을 얻었다.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에 난 3주 동안, 이 행복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백지의 시간이 왔다. 백지라는 망망대해에서 다시 써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백지에다가 글을 쓰는 건 주말에 텅 빈 헬스장에서 원판을 꽂는 기분과 다를 게 없다. 가문의 영광은 채 한 달도 못 가 사라졌고 이제 다시 길고 긴 ‘과정’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글쓰기는 오래 할 수 없다. '3주 기분 좋아지려고 그 고생을 한다고?'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의 결과만 보면서는 하루에 한 시간씩 헬스장에 갈 수 없다. 몸을 잘 만들어서 프로필 사진에 띄워봤자, 남들의 찬사와 만족감에 취하는 것도 고작 한 달이다. ‘내가 그 고생을 해서 만든 몸인데, 다시는 운동이랑 식단 못 해!’가 되면 말짱 꽝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운동의 여파에만 관심이 쏠리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호프집에서 손님이 주방에서 닭발을 볶고, 주인이 테이블 위에 누워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꼴이다.


 바디프로필은 아름다운 몸을 전문 사진가의 작품으로 남기는 창작 활동이다. 조각 같은 몸이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바디프로필을 새로운 변화의 동기 부여로 여기는 문화가 생겼다. 빛나는 시절을 간직하려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게 드문데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바꾸겠다는 건 박수받을 만한 도전이다. 내 주위에서도 헬스를 시작하며 바디프로필을 선결재하는 분을 여럿 봤다. 확실히 목표가 생기면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K드라마의 장점은 극적인 스토리텔링이다. 바디프로필은 조각 같은 몸이 필요하기에 한동안 피 말리는 운동과 다이어트를 반복해야 한다. 뻑뻑한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서 아이돌이나 할 법한 식단을 해보고, 밥 대신 트레이너의 잔소리를 먹어가면서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면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그냥 듣고 있으면 영화 <로키>의 줄거리 같지만, 매끈하게 다듬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면 주말 드라마의 시나리오로도 손색이 없다. 남들 다 놀 때 텅 빈 헬스장에서 자신을 찍어 올리며 고독을 달래고, 운동을 끝내고 닭가슴살을 씹을 때 응원을 받으면서 뻑뻑함을 감내한다. 그러다가 ‘완전히 달라진 나’로 사진을 딱 찍어서 올리면 KBS 미니시리즈 하나가 뚝딱이다. 


 요즘 바디프로필 사진을 보면 부작용도 확실하다. 바디 프로필은 근육을 늘리는 것보다는 얼마나 몸을 말리느냐의 싸움에서 성패가 갈린다. 얼마나 운동을 잘하는지보다 얼마나 잘 굶느냐가 핵심이다. 극단적인 몸은 유지하기 어렵고, 요요가 생기면 박탈감도 상당하다. ‘내가 어떻게 이 살을 뺐는데’ 하면서도, 굶고 고생한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는 폭식과 운동 중단으로 이어진다. 바디프로필을 찍고 몸이 금세 원상 복구되면 운동에 재미를 붙이기는커녕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전성기 사진 하나만 사진첩에 남을 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운동을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부담스러운 행위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헬스 유튜브를 운영하는 가수 김종국은 바디프로필 열풍에 이런 말을 했다. "자기만족이긴 하지만 왜 인생을 사진 한 장에 거냔 말이야. 인생을 사진에다 걸면 안 돼. 인생은 끊기지 않는 동영상이야.”


 자고로 인생은 점진적일 때 행복할 수 있다. 대기만성형 인간이 젊었을 때 전성기를 다 보낸 사람보다 행복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과 송해 선생님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속단하긴 이르지만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 말년을 보내신 송해 선생님의 환한 얼굴을 떠올려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운동도 마찬가지로 차차 강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할 맛이 난다. 상승곡선이 완만해야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에 재미가 붙는다. 빠른 시기에 고점에 도달하면 쾌감이야 크겠지만, 순간에 다다른 후 쇠락하는 몸이 행복할 리 없다. 이번 여름이 아니라 앞으로 십 년 후에도 건강해지려면 결국 느리지만 차차 몸이 변해가는 운동의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헬스에서는 근성장의 원리를 논할 때 근육에 차츰 느리게 부하를 높여가는 '점진적 과부하'란 말을 쓴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바디프로필도 시장이 커지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그만큼 전문 사진가도 심심치 않게 시장에 뛰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화보를 만져주면 사진이 근사한 작품으로 남는다. 전문가는 보정 과정에서 예술혼을 발휘하며 그들이 가진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사진을 재창조한다. 모델을 깎고 보태서 새롭게 빚어낼 정도다. 소비자는 사진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 주면 그걸 자기 몸으로 믿어버린다. 화보 사진을 보다가 실제 헬스장 거울에 자기 몸을 비춰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쫄쫄 굶어서 지방과 근육을 둘 다 날려버렸기에 쌓아둔 자산도 없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다.


 근육질에 건강한 몸을 만들려면 무조건 굶으면서 운동해야 하는 줄 알고 스트레스만 받기 일쑤다. 이러니 인스타그램용 헬스라는 말도 돈다. 16년 차 헬스인인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제대로 된 몸을 만들려면 근육 손실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막상 다이어트했는데 쌓아둔 잔고가 없으면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지방을 덜 빼더라도 근 손실을 최소화하는 몸 관리가 중요하다. 바디프로필을 포기할 수 없다면, 우선 건강한 몸을 만든 후 스튜디오의 보정 솜씨에 맡기자. 흘러내리는 지방도 말끔하게 지워내는 전문가의 손길이면 근육은 근육대로 지키고 사진도 완벽하게 연출할 수 있다. ‘타협’이라는 말이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헬스의 목적과 바디 프로필의 지향이 맞닿는 곳은 ‘보정’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도 유행에 편승해서 바디 프로필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회사 동료가 1+1으로 등록하면 공짜로 찍어둔다고 해서 일정을 잡아준 적이 있다. 계산해 보니 6개월간 10킬로는 감량해야 했다. 난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시지만 난 바디프로필이 요구하는 몸이 싫었다. 지금보다 좀 더 엄격한 식단을 하고 운동량을 늘려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한 내 몸이 바디프로필에서는 그저 지방이 흐르는 몸으로만 여겨지는 것도 불쾌했다. 업체 입장에서는 편집 과정에서 다 만들어 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말도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현실과 사진의 인지부조화에 시달리기 싫었고, 나온 사진을 올릴 데도 없었다. 팬티만 달랑 입고 나온 사진을 대체 어디 게시한단 말인가. 아마 평생 놀림거리가 될 일이었다. 직장에서 얼마나 놀림을 당할지 안 봐도 뻔했다. 우리 부장 성격이라면 월요일 아침 회의 때 피피티에 내 빤스 사진을 띄울 게 뻔했다. 내 의지 부족과 부끄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국 나는 촬영을 포기했다. 그러니까 바디 프로필은 실로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인 것이다.


 난 매일 유튜브로 그리스 신전에나 나올법한 선수들의 몸을 보면서 그들의 가르침대로 운동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내 몸이 그들의 몸처럼 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프로 보디빌더인 김성환, 설기관, 황철순, 강경원, 김준호, 이용승, 김건우의 팬이지만, 한 번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들은 오랜 기간 선수로 뛴 프로들이다. 프로는 언감생심, 난 딱 보기 좋은 몸 정도만 만들기를 원한다. 자고로 옷맵시가 잘 받고 얼굴도 좋아 보이는 몸은 근육과 지방이 적절하게 섞인 몸이다. 남자의 경우, 약간의 ‘떡대’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 없이 오직 근육만으로 그 덩치를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건강한 돼지가 일반인 기준 보기 좋은 몸이 아닐까.


 대회 시즌,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선수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정말 고생고생해서 몸을 만든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도 제 밥그릇이 걸려있을 때는 누구나 그렇게 진지하다. 회의네, 보고서네, 척척 처리하는 직장인들도 눈물겹게 목구멍에 풀칠하며 산다. 우린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며, 다른 분야에서 하는 경험을 흉내 낼 순 있지만, 완전히 소화해 내긴 어렵다.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내가 가수를 할 순 없지 않은가. 노래방에서 연습 좀 하고, 발성 훈련을 받고 더 나은 성량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프로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디프로필로 운동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멋진 몸을 만드는 건 부가적인 취미다. 건강을 해치거나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찍어야 할 사진 같은 건 없다. 즐겁고 재미있게 취미로 운동하는 법을 익히는 게 우선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운동 같은 건 없다. 누구나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피부에 있는 주름과 모공까지 다 나오는 셀카를 찍어대는 마당에, 나도 잘 만든 몸으로 타인을 대하며 자신감과 경쟁력을 갖추길 원한다. 특히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시선에 둘러싸여 있다. 놀랍지 않게도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예상대로 소셜 미디어가 자존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남들과 자신의 물질적 지위를 비교하고 측정하면서 자신이 사회적 서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불만족을 느끼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사치를 과시하는 인스타그램에 자주 접속하다 보면 부정적으로 사회적 비교를 하게 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난 소셜 미디어에 내 인생을 오래 노출한 것을 후회한다. 너무 많은 것을 과도하게 공유해서, 이제는 나의 너무 많은 부분이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라고 했다. 내게 SNS라는 사슬은 대단히 속되고 노골적이다. 타인의 시선에 놓여서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경쟁 시장이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보드리야르는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지만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며,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라고 했다. 이미지는 실재와 무관하지만, 난 매체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기준으로 내 삶을 맞춰내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이미지가 나의 건강이라고 생각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뒷걸음쳤다. 내가 점차 늙어가는 걸 잊으려고 현실의 피드백을 거부했다. 라면 먹방을 찍으면서도 식단 관리가 아주 쉽다고 거짓말을 하는 호사가의 말을 맹신했다. '점심은 단백질 셰이크에 저녁은 닭가슴살입니다. 배고픔이 기본값이니 변수를 만들지 마세요.' 나는 여러 다이어트 유튜버와 나 자신을 분리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쿨함의 기준과 점차 멀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중 테레자의 입을 빌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했다. 난 길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난데없이 집에 화재가 발생하며, 평생에 걸쳐 모은 전세보증금이 날아가는 것보다 그냥 그저 그런 하루를 더 무서워한다. 이룬 게 하나도 없는데 하루가 그냥 지나가 버렸으니까. 내일이 또 어김없이 닥쳐오니까. 정신없이 살다 보면 생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게 서슴없이 아름다운 밤이 지나가고, 허무하게 그냥 날이 새는지 야속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뭘 해야 했는가 생각하면 그것도 확실치 않다. 공부를 좀 해야 했나. 좋아하는 사람과 한 시간이라도 더 보냈어야 했나. 미안했던 친구에게 참회의 카톡이라도 보냈어야 했나. 늦지 않게 사랑한다고 고백했어야 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 난 그래도 매일 운동만큼은 빼놓지 않고 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말을 상기한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다.’ 그러니까 오늘도 뭐가 됐든 기필코 운동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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