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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08. 2023

산책도 엄연히 운동이라고 우겨본다

 갑자기 휴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에 없던 반차를 내고 부랴부랴 회사 건물을 나서는데 부장이 날 불러 세웠다.

'휴가 올렸네. 무슨 일 있어?'

'아 갑자기 죄송해요. 집에 볼일이 좀 생겨서요.'

 어떤 볼일도 없었지만, 볼일이 있는 사람인 척 서둘러서 외투를 챙겼다. 외투를 천천히 입기보다는 급해서 들고 간다는 제스처가 중요했다. 평소 휴가는 업무에 지장만 없으면 자유롭게 쓰라고 강조하던 차였기에 부장은 아무 말 없이 결재를 해줬다. 클릭 소리가 나자 무섭게 부장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단말기 사업은 지침이 아직 안 내려왔나?’

‘네 상부에 확인해 봤는데, 담당자가 다음 주 초에 내린다고 합니다.’

그는 애써 휴가 잘 다녀오라고 중얼거리다가 말끝을 흐렸다.


 여름휴가가 끝난 직후라서 동료들은 휴가를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묵묵히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그 흔한 외근자도 하나 없었다. 나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분위기 맞추다가 작년처럼 연가보상비를 날리긴 싫었다. 올해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휴가를 다 챙겨나가면서도 일은 펑크 안내는 실속형 얌체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몸을 굽신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뭐라도 더 물어볼까 무서워서 미적대지 않고 계단실로 향했다. 다년간 단련한 축지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마음이 음식물 낀 수챗구멍처럼 찜찜했지만 막상 회사 밖을 나오니 속이 후라보노 껌이라도 씹은 것처럼 후련했다. 나지막한 괴성을 지르고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다.

'남들 일할 때 노는 게 최고야.'

'맞아. 휴가는 무조건 다 쓰고 봐야 해.'


 회사 앞 좁은 골목길에 이르렀지만 딱히 갈 데는 없었다. 헬스장에 들렀다가 놀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초가을 날씨가 너무 아까웠다. 아니 사실, 어제 스쿼트를 하다가 옆자리 청년과 무게싸움을 하다가 삐끗한 허리가 문제였다.

'어디로 갈 건데?'

'몰라.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그래야지.'

'그래도 휴간데 어디 안 가?'

'그러게. 어디 가지?'


 휴가를 쓰고 나면 어디라도 가고 싶을 줄 알았지만 막상 나오니 갈 데가 없었다. 어딜 가든 즐거울 것 같긴 한데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늘 가는 스타벅스에 발을 디디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갈피를 못 잡고 골목을 배회하다가 삼각지역으로 향했다. 우선 회사 근처를 떠야만 했다. 4호선과 6호선 갈림길 앞에 놓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놀기 좋은 동네가 많은 단풍색 6호선 라인을 타기로 했다.


'가을에는 단풍색이지'

'어느 동네 가게?'

'합정이나 망원?'

'그냥 가는 거야? 왜 하필 그 동네야?'

'골목이 많아서 걷기가 좋거든.'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리가 한산했다. 카카오맵으로 요즘 잘 나가는 카페를 검색했다. 허리가 아파서 의자가 편한 데를 찾아냈다.

'나 망원동으로 간다. 결정했어. 인스타로 아인슈페너 기가 막히게 하는 카페 찾아냈어.'

'오늘은 웬일로 헬스장을 거르네?'

'휴가잖아. 때론 산책도 운동이 된다고.'

 옆자리 청년과 무게싸움을 하다가 다쳤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산책이 무슨 운동이야?'

'얘가 뭘 모르는 소리 하네. 트레드밀 걷는 것보단 산책이 훨씬 나아. 30분만 걸어도 네가 어제 먹은 잡채 한 접시는 빠질걸?'

'헬스장 안 가려고 별소리를 다하네. 어차피 아인슈페너 먹으면 별 볼 일 없는 거 아니야.'


 지하철은 독서하기 딱 좋다. 고개를 너무 숙이면 목 디스크 걸리기 십상이지만, 백팩에 핸드폰을 얹고 '밀리의 서재'를 켜면 온당한 자세가 잡힌다. 난 내심 유튜브로 시간을 죽이는 치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아니 아르노'의 소설 <세월>을 읽어 내려갔다.

'지하철에서 나만 책 읽는다.'

'누가 보면 유튜브 일절 안 하는 사람인 줄 알겠네.'

'근데 밀리의 서재로 읽으니까 나도 핸드폰 게임하고 있는 거 같아서 별로다. 역시 책은 손에 들고 폼을 잡아야 맛인데.'

'독서를 허영으로 하네.'

'허영의 힘이지. 내 근육도 다 허영의 힘이야. 내가 와꾸를 중요시하니까. 사실 보이는 건 겉치레 아니겠어? 어느 정도의 허영은 외관상의 영화를 넘어서서 본질을 건들기도 한다고.'

'또 개똥철학 나온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작가를 거꾸로 말하면 가짜인 거 모르냐.'


 책을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 졸음이 몰려왔다.

'책 내용은 불륜과 치정의 콜라보라서 격정적인데 왜 난 몰입이 안 될까.'

 친구는 바쁜지 답이 없었다.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가 내 삶과 너무 멀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파리 중심구에 살면서 점차 멀어지는 사랑에 고통받는 여인의 속내는 내겐 그저 픽션이 가져다준 환상일 뿐이었다. 졸음 앞에서는 답이 없었다. 잠을 깨려고 유튜브로 김성환 선수의 인클라인 벤치프레스 영상을 봤다. 위쪽 가슴에 계속 자극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그 엄청난 근육 크기에 잠이 달아났다. <운동의 참맛>을 쓴 작가 답지 않게 아직도 운동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투성이었다.

'몸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거 같아. 늙어서 그런가.'

'뭐? 몸을 어떻게 쓴다고?'

'아니 소설 말고 운동. 하면 할수록 헬스가 어렵다. 예전에는 무식하게 밀어붙여도 몸에 탈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자세를 조금만 잘못 잡아도 바로 고장이 나네. 내구성이 떨어졌나 봐.'

'시간 없다고 무게만 치려고 드니까 그러지. 이제 가볍게 해 버릇해야 해. 3대 500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지도 무게 치려고 별 짓 다하면서 별소리를 다하네.'


 톡을 쓰고는 잠시 눈을 잠시 감았다가 이번에는 비소설 책을 폈다. 스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형태로 쓴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글이었다. 어린 마르셀은 혹독한 질병을 안고서도 사교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몸이 타는 것처럼 아파도 글을 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뎠다. 마르셀은 불운하게도 불후의 걸작을 쓰고도 사후에야 명성을 얻었다. 그는 현대인이 앓는 각종 질병을 온몸에 품고 살아서 생애 단 한순간도 건강할 수 없었다. 마르셀은 사망하기 16년 전부터 자신은 얼마 못 가 죽을 거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죽음을 다룬 작품을 읽으며 죽음에 밀착했다. 그의 삶은 불행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작가는 작가인지 불행마저 문학으로 풀어내서 불세출의 작품을 남겼다. 프루스트는 평소 일이 틀어지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알려져 있다.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을 키우는 건 슬픔이라며 고통 없는 인생의 허망함을 얘기했다. 그는 통증이 뭔가를 깨우친다고 믿었고, 그 생각을 길고 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포갰다.

'프루스트는 통증이 삶의 비밀을 깨우쳐 준다고 했대. 이건 헬스에도 맞는 얘긴데. 문학이나 운동이나 실은 비슷한 걸지도 몰라.'

'밴태처럼 통증을 좋아하는 걸 보니 너나 그 병적인 작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건 그런 게, 나도 허리 통증을 참아내면서 지금 지하철에 글감을 찾고 있거든. 오늘은 원고로 쓸만한 사람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고. 그래서 나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창작욕이 몸의 통증을 넘어서는 그 느낌.'

'마르셀은 앓다 죽어서 불세출의 걸작을 남겼지만, 너는 헬스하느라 그런 작품은 못 남길 거 같은데.'

'누가 뭐래냐. 나도 걸작은 못써도 건강하게 쓰다가 죽는 게 더 좋아. 천재는 고달픈 거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소설 속 '나'는 어느 날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다가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홍차 향이 잠든 심연을 떠올리면서 이런 문장을 적었다. "갑자기 모든 기억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맛은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고모가 차에 살짝 담가 내게 건네주던 바로 그 마들렌 맛이었다." 나도 저녁마다 프로틴 음료수랑 냉동 닭가슴살 데워 먹으면서 글을 쓰니까 이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이번 역은 망원 망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디스 스탑 이즈... 딴딴따라 따라다라'


'이제 내린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좀 먹고 카페로 가야겠어.'

'또 고기 많이 주는 식당 찾는다고 고생깨나 하겠구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선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게.'

 

 망원역 1번 출구로 나와서 하늘을 보니 요새 보기 드물게 날씨가 맑았다. 포털을 확인하니 서울은 백여 일 만에 미세먼지 수준이 '좋음' 단계로 들어선 참이었다. 공기 질이 좋아서인지 기분이 상쾌해졌다. 몸에 열기가 돌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북적이는 곳을 벗어나서 한적해지기 위해 걷는 것이야말로 도시 산책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 보니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옷 속에 돌덩이를 잔뜩 넣고 우즈강에 천천히 스며들 때도 이런 맑은 날씨였다고 한다. 어쩌면 날씨는 그 자체로 문학일지도 모른다. 날씨는 그날의 기분을 달리하는 걸 넘어서서 어떨 때는 한 사람을 인생을 뒤바꾸기도 하니까. 날씨는 모든 걸 차치하고 다 괜찮은 기분으로 둔갑시켜 버리니까. 날만 좋으면 서울도 여느 유럽 도시 못지않게 근사해진다. 망원동 골목길이 베네치아의 허름한 골목길처럼 멋스러웠다. 운하만 없지 오히려 더 깨끗하고 청량했다. 문학은 생의 대리 체험이라는 점에서 날씨가 일으키는 환각작용과 유사하다. 몸에 열기가 돌면서 대퇴부와 종아리 부근에 자극이 오기 시작했다. 통증은 사라지고 미세한 근육의 열이 기분을 들끓게 했다.


 내 일주일 루틴은 평일에 4일 정도 헬스장에 가고 주말 이틀은 러닝이나 테니스를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운동으로 빽빽하지만 산책을 위한 시간은 빼먹지 않는다. 산책은 효율 좋은 운동은 아니지만,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제 책 <걷기예찬>에서 산책의 대체 불가능성을 적기도 했다.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은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헬스를 고되게 하고 다음날 근육에 피로도가 선명할 때 산책은 좋은 기분전환이 된다. 운동은 잘 쉬는 것도 중요한데, 산책만큼 적당히 몸에 열을 내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찾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유럽여행처럼 기분을 낼 수 있다.


 최근에는 산책할 여유조차 없었다. 신간 원고를 끝맺자마자 새롭게 신작을 기고하면서 쉴 틈이 사라졌다. 퇴근하면 바로 카페로 가서 글을 써야 했고, 글을 쓰다 보면 바로 수면 시간이었다. 수면의 끝은 출근과 성기게 맞물렸다. 그렇다고 헬스장을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작 제목이 <운동의 참맛> 부제가 <오늘은 기필코 운동하러 가야지>인데 헬스장을 빠지면 쓰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려고 요즘 유행하는 N잡러 노릇을 하려다가 비프리랜서가 되어버렸다. 일에 하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요즘에는 날씨와 무관하게 한 시간에 한 번씩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가 부럽다. 그들이 발산하는 니코틴과 타르 연기는 자기 파괴적인 해방감이 있어 좋아 보였다. 더 독한 연기를 마셔대며 미세먼지 따위를 비웃는 그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파다. 옥상에서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호기로운 애연가는 짝다리를 짚고 허연 연기를 입에 머금고는 인생은 짧고 아등바등 살아봐야 별거 없다는 말을 뱉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기껏 팔 굽혀 펴기나 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호방함이 대단해 보였다.


 망원동에서 연희동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한 시간 반 넘게 걸으니 옷이 땀에 젖기 시작했다.

'나 이제 제육덮밥에 후식으로 아인슈페너 먹어도 될 것 같아. 거의 500kcal 빼냈어.'

'그래 먹어라 먹어. 누가 뭐래냐. 즐겁게 운동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요즘 헬스 할 때도 죽상을 짓더니.'


 연희동 부근에 접어들자 신기할 정도로 길이 곱이곱이 나 있었다. 집 구경 사람 구경하느라 어딘지 살필 마음이 가셨다. 이 부근 부동산 시세가 장난이 아닐 텐데 동네가 무척 소박해 보였다. 소박함도 돈이 많아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서글펐다. 그래도 커피값 정도만 내면 골목길 투어는 가능하니 다행이었다. 어려서부터 걷기 좋은 서촌이나 북촌에서 살고 싶었다. 지금은 사람이 바글바글하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인사동부터 통의동까지는 다 느긋한 산책자의 명소였다. 그땐 뭘 몰라서 북촌이니 연희동이니 골목길이 죄다 허름하니 코너에 있는 비디오 가게 알바만 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연희동에서 살고 싶다. 그럼 매일 산책하면서 예쁜 카페에도 들를 수 있을 거 아냐.

'요즘 거기 전세가 얼만 줄 아냐. 꿈깨라 꿈 깨라. 지금 신림 영등포도 전세가 없어서 난린데.'


 연희동을 지나 한참 걸으니 헬스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산책의 청량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다른 생각 말고 나긋한 바람이 불고 커피가 향긋한 데 가서 멍하게 놓여날 생각이었다. 한참 걷다 지쳐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바람에 휘날려온 전단에 눈이 갔다. 녀석은 비틀거리다가 머리 위까지 날아오르더니 내 앞에 툭 하고 떨어졌다. 어쩐지 의미심장해진 난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오픈! 초대박 세일! 헬스 등록하면 요가 필라테스 복싱까지 무료! 주차 두 시간 무료!" 난 파격적인 혜택이 가득한 광고 문구보다 주차장까지 딸린 편의성이 눈에 띄었다. '대체 운동할 때 차는 왜 몰고 가는 거야.'


 생각해 보니, 내 최근 운동량이 줄어든 이유도 승용차 탓이었다. 어디든 차를 타고 다니니 확실히 살이 더 붙는 기분이다. 물론 내가 살이 찌도록 많이 먹는다는 걸 잘 알지만, 과거에는 어디든 걸어 다녀서 몸이 더 가벼웠다. 요즘에는 집 근처 어딜 잠시 들르더라도 주차장을 먼저 검색하고 나선다. 솔직히 말하면 괜히 차를 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딜러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 해서 차를 샀는데 막상 나는 차를 잘 쓰지 않는 인간이었다. 차를 사기 전엔 내가 다시는 차를 사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근데 이상하게 그땐 차를 사야 할 이유가 1,200,000개쯤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 수 없는 허영심이 돌기 시작하면서 덜컥 구입했다. 왠지 서른 후반에 접어든 내 나이에 걸맞은 차가 필요해 보였다. 때마침 내가 사려는 차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 자주 언급한 차종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딜러가 황수관 박사 못지않은 달변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설득의 심리학'이라도 읽으셨는지 나는 딜러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막상 새 차를 받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차를 좋아하지 않았다. 차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 값비싼 오판이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어릴 적부터 포르셰를 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명인 반열에 오르고 고대하던 포르셰를 사고 나서는 오히려 차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포르셰를 타면 포르셰가 보이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고는 그 비싼 차를 친구에게 줘버렸다. 그는 친구가 운전하는 포르셰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따. 진짜 멋지네.' 지금 내 상황이 딱 그와 비슷하다. 차를 타면 걷는 거리가 줄고, 걷기가 줄면 유산소 운동을 더 해야만 한다.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비싼 세금을 내고 보험까지 든 차를 그냥 두기도 또 뭐 하다. 있어 보이려고 차를 샀는데 막상 차를 타지 않아서 골치가 아프고, 없어 보일까 봐 차를 타면 또 차가 막혀서 골치를 썩이니 이거야말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막상 차를 보면 너무 예쁜데, 운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그냥 팔면 그만이잖아.'

'중고차 딜러의 감정가를 너무 후려치더라고. 우리 애기를 그렇게 싼값에 보낼 순 없잖아.'

'차만 타면 스트레스받으면서 무슨. 주차장에 차 박아놓고, 애를 왜 방치하냐. 아동학대아냐.'

'원래 사랑은 스트레스야.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이어진 것처럼 사랑도 통증이라고. 그래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통증을 긍정하는 거야.'

'더 못 들어주겠다. 고만해라.'


 쉼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홍제동에 다다랐다. 홍제동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결국 홍제동에 이르러서야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투두리스트'가 떠올랐다. 오늘은 미뤄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 날이었다. '이제 어디든 들어가 앉아야겠어. 손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배도 고파. 어디로 갈까.'

'아인슈패너는?'

'신나서 걸었더니 한참 전에 지나쳤다. 산책의 매력이 이런 거 아니겠냐. 코스가 따로 없잖아. 헬스는 자극해야 할 부위랑 세트하고 무게까지 딱 정해져 있잖아. 근데 산책은 다 프리해. 마치 인생과 같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잖아.'


 골목마다 카페가 그득하니 갈피를 못 잡고 헤맸다. 난 다수의 선택지 앞에서 피로를 느꼈다. 우선 따질 게 너무 많았다. 어디 커피 맛이 좋을지, 어디 주인이 친절할지, 어디 의자가 안락할지, 어디 화장실이 깨끗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난 가방을 고쳐 매고 발길을 돌려 한 번 가본 적 있던 연희동 소재의 비좁은 독립서점 겸 카페로 들어갔다. 한참 일하다가 새로운 판형으로 보이는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의 파반느>가 보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여전히 책 표지책에 그려져 있었다. 책이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되려 몸뚱이를 노골적으로 계급의 영역으로 다루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인스타그램 속에 줄줄이 딸려 나오는 멋진 몸을 향한 극성스러운 찬사에는 유난스러운 데가 있다. 절대적인 긍정은 반대편 입장에서는 다시 말해 절대부정이기도 하니까. 나도 그런 찬사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 몸이 망가질까 봐 조바심이 나서 아무 생각도 없이 땀을 흘릴 때도 잦다. '요즘에는 좋은 집안에서 자란 애들이 더 마르고 날씬해.' 이런 말도 다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려는 논리다. 건강하고 보기 좋은 육체가 미의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안티에이징의 시장에서 인정 투쟁을 벌이며 살아간다.


 배가 고파서 근처 기사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테이블들이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놓여 있었다. 확실히 혼자 밥 먹기 편한 식당이었다. 당연한 듯 생선 백반이 주문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칠천 원 가격에 고등어와 장조림에 된장찌개까지 나왔다. 속으로 그래도 생선이니까 건강한 단백질이라며 위안으로 삼았다. 구글에 고등어 한 조각의 단백질량을 검색하니 15g이나 되었다. 백반을 열심히 폭풍흡입하면서 주위에 앉은 기사분들을 관찰했다.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다들 지쳐 보였다. 서울 시내에서 운전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표정이 다 말하고 있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하고 계셨다. 콩나물무침이 자아내는 참기름 냄새가 고소했다. 긴 산책으로 인해 강렬한 허기가 날 지배했다. 뉴스룸에서는 고위층 인사 비리와 향응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튀긴 생선이 기가 기막히게 맛있었다. 그릇을 치우는 아주머니 손놀림이 어찌나 재빠른지 옆자리 손님이 자리를 뜬 지 10초 만에 새 테이블이 생겼다. 기자를 피해 급히 들어가는 유력 인사의 발걸음은 그보다 더 날랬다. 나도 날래게 밥을 먹어치웠다.


'오늘은 헬스장에 안 가련다. 산책도 엄연히 운동이니까.'

'그래, 먹는 것까지가 운동의 피날레니까.'

바쁜지 답이 없는 친구는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주절주절 톡을 남겼다.

'노을 지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양화대교까지만 걷다가 버스 타려고. 153번 버스 타고 가다가 영등포에서 갈아타면 될 듯.'

 더는 1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친구도 헬스장에 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뜬금없는 휴가이자 오늘 운동도 이쯤에서 끝이다.

'오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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