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끼는 후배의 이혼 소식을 들었다. 지난주에 이혼했다고 전화가 왔다. 놀란 척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럴 것 같더라니.' 녀석의 목소리가 이제 막 지옥에 떨어졌다 빠져나온 듯 안도하는 게 느껴졌다. 평소 녀석에 말투에 묻어있는 장난기가 하나도 없으니 아쉬웠다.
"고생했다. 너 술도 많이 마셨지. 몸도 많이 상했겠는데."
녀석은 가래 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속 시원해요. 운동 시작하려고요."
민수는 직장에서는 서글서글하고 일할 때는 강직한 바가 있어서 윗분들 총애를 받았다. 어른들 술자리엔 꼬박꼬박 끼면서 주말 아침에는 조기축구회까지 가는 그런 놈들 있지 않나. 그렇게 윗분들 눈치를 보면서도 주변에 미움을 사지 않는 재주도 있었다. 단점이라면 가끔 일할 때 너무 딱딱해져서 나조차도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녀석에게 아침에 커피 마실 때랑 저녁에 스크린 골프 갈 때를 빼곤 꼴도 보기 싫다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런 녀석이 한창때 에반더 홀리필드랑 타이틀매치를 치르다가 3라운드에 가서 귀를 물어뜯고 나자빠진 타이슨처럼 비척대고 있었다. 그놈의 이혼이 뭐라고.
녀석은 대뜸 괜찮다고 했다. "혼인 신고도 안 했고, 서류 정리도 깔끔해서 괜찮아요. 식도 코로나 때 조촐하게 치러서 주변에서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대출을 잔뜩 끼고 산 집은 내놨고, 자기는 오피스텔에 들어갔단다. 신속하고 깔끔한 이별이라나. 남 결혼에 참견은커녕 관심조차 안 보이는 내가 본의 아니게 깊숙이 개입한 관계였다. 내게 들어온 소개팅을 후배한테 넘겼는데, 두 사람은 만난 지 이틀 만에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만에 식을 올렸다. 그리고 결국 관계가 막을 내리는 것까지 그들의 부모보다 먼저 알았다. 난 괜히 죄책감이 들어서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꽤 어울렸다. 주말이면 무조건 교외로 떠나서 놀고 싶어 했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끌어안고 자는 걸 낙으로 삼았다. 늘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젊어서 그런지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술을 마셔도 주일 아침이면 오후 한 시에 여는 청년부 예배에 갔다. 후배는 소개팅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아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난 그때만큼은 선배답게 만류했다. 평소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다. 내가 이은 관계라 이상하게 불안했다.
녀석이 연애를 시작하고 그녀와 속도를 낼수록 난 녀석과 멀어졌다. 나로서는 든든한 헬스장을 파트너는 일게 되었다. 결혼한 후로는 가끔 퇴근하고 함께하던 한강 러닝도 혼자서 해야만 했다. 신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쳐도 함께 예매했던 서울마라톤까지 녀석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졌을 땐 매우 섭섭했다. 매일 옥상에서 드립 커피를 마시며 어제 조진 광배근이 딴딴하다며 농담 따먹던 시절이 그리웠다. 조금 가볍지만 예쁘게 말할 줄 아는 후배의 낙관이 그리웠다. 실없는 농담을 하며 날 따라다니고 내가 선배라고 깍듯하게 챙겨줄 줄도 알아서 늘 고마워했다. 내가 선배 노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섭섭하기도 했을 텐데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주고, 때가 되면 헬스장 가자고 조르는 게 큰 힘이 됐다.
내가 부서를 이동한 후에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다시 사무실에서 혼자가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 부서 동기를 통해 녀석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걸 전해 들었다. 난 그런 일을 남 입을 통해 들었다는 데 속이 상했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내가 그들의 불화를 어느 정도 직감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녀석은 알게 모르게 제 불행을 내 탓으로 돌렸을까. 괜히 소개팅을 넘긴 게 화근이 됐을까. 내가 받아야 했을 불행을 자신이 대신 떠안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놈은 아니지만, 불행에 이유를 찾자면 무슨 생각을 못 할까. 마음이 쓰였던 나는 먼저 연락을 취해 금요일에 보자고 우겼다. 막무가내로 불러냈다.
후배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럴 땐 제아무리 입이 무거운 자라 할지라도 마치 신 앞에서 벌거벗겨진 것처럼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아직도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린 녀석이 사는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투다리에서 모둠꼬치와 생맥주를 시켰다. 녀석은 내 앞에 바싹 붙어 앉아 조용하면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쉬지 않고 얘기했다. 내가 안 불렀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이 쏟아졌다.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녀석의 흉부였다. 둘이서 고함을 질러가면서 만들었던 대흉근이 완전히 쪼그라져 있었다. 그걸 어떻게 만든 건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쿼트로 단련했던 대퇴사두도 보기 드물게 바람이 빠져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결혼이 사람 잡네."
후배는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그럼으로써 자기 삶이 일정 부분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는지 속사포랩처럼 상실감을 토로했다. 아내와 어떤 일로 다투는지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우린 헬스장에서 친해진 사이답게 근육 얘기만 했다.
"선배, 저 이제 밥도 안 먹어요. 입맛이 없어요. 살려고 프로틴 파우터 타 마시는데 왜 근육이 빠지죠. 고작 몇 달 운동 안 했다고 몸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난 단호하게 얘기했다.
"운동 안 하고 마시는 파우더는 그냥 똥이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퇴근하면 바로 헬스장으로 와. 내가 다기 복구시켜 줄 테니까."
녀석은 발로 내 의자를 툭툭 치며 말했다.
"선배 고마워요. 역시 운동밖에 모르는 우리 선배. 선배 우리 그때 너무 좋았죠. 매일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닭가슴살 데워 먹으면서 노가리 까고. 기억나요?"
"맞다. 그때 참 좋았지. 계속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세상 끝났냐.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아니에요. 선배, 진짜 이제 다 좆된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할 리 없어요."
그날 이후로도 녀석은 헬스장에 나오지 않았다. 오죽해서 저러나 싶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모른 척했다. 어느 책에서 읽으니 프랑수아즈 사강은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며 다소 심상한 이혼 사유를 댔다고 한다. "그는 결혼 생활보다 자신의 도기 작품을 더 좋아했다.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네그레트소스를 곁들이느냐 네덜란드식 소스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사강은 첫 번째 이혼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이유를 댄 바 있다. "나는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고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말을 타러 간다. 결정은 내려졌지만, 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난 사강이 이혼 당시에 남긴 인터뷰를 꼼꼼히 읽으며 그 어떤 이혼 사유보다 두말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띄었던 건 그가 남편의 무심함이나 결격함을 꺼내기보단 엇갈리는 취향을 집어냈다는 점이다. 취향(趣向)은 말 그대로 방향의 문제다.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해도 같이 가려면 동향이어야 한다.
후배 말대로라면 아내는 녀석에게 언제 어디서든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줬다. 늘 억눌리는 데 익숙한 조직 생활을 하던 녀석에게 그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효율성, 유용성, 객관성을 중시하는 세계에 살다가 퇴근하면 그녀가 인도하는 느슨한 세상으로 떠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다다르지 못한 이면의 세계에 매혹되기 마련이다. 후배는 그녀를 통해 느낌대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생전 처음 분방함과 희열의 감정, 욕망에 호소해서 나아가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녀를 따라 합정동에서 홍대를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보헤미안처럼 사는 애들과 놀았다. 그간 나눠보지 못한 간지러운 얘기들을 100분 토론에 참여한 진중권처럼 신나게 떠들어댔다. 순간의 삶, 향락적인 자기표현, 육체미, 무종교, 사회 속박의 불온함, 머나먼 곳을 향한 동경, 스타일과 미학을 찬양하는 삶에 심취해서 그녀를 따라 자기도 인스타그램을 도배했다. 그에겐 다시없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때부터 후배는 자기 삶을 15도쯤 틀어버렸고, 사내에서는 후배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들려왔다. 하지만 후배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상향을 발견했으니 구시대적 유물 따위는 신경 쓸 게 아니라는 식이었다.
결혼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차이가 간극으로 변했다. 다른 섬에 사는 사람이 교류의 물꼬를 터서 번영에 이르는 대항해시대를 살다가, 막상 합병을 하니 내가 왜 너의 속국이냐고 따지는 꼴이었다. 너는 왜 네 방식만 고집하고,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그토록 매혹적으로 보였던 신대륙이 어느 순간부터 미개한 원시 문화로 느껴진 것이다. 어느 하나 양보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압제뿐이다. 늘 설레던 늦은 밤은 그렇게 속절없이 사그라들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오빠를 자유롭게 해 준다며. 그게 좋아서 결혼한 거 아냐? 대체 뭐가 문젠데. 왜 나를 가두려고 드는데! 왜 말이 바뀌는데!"
후배는 하루에 한 번 운동하고, 저녁에는 단백질로 이뤄진 식사를 해야 했다. 내가 아는 후배는 그런 인간이었다. 하지만 후배의 아내는 즉흥성의 총아였다. 예측 불가능을 삶의 모토로 삼고 사는 사람이었다. 녀석은 그 넘실거리는 삶을 오래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건 균형과 안정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남남인 사람이 일과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어쩌면 사랑의 속성일지도 모르지. 들끓는 얼굴로 불안해하고 오해하다가 결국에는 다시 불안에 떠는 그런 불균형이 내겐 사랑의 본모습이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건 차츰 그 열기가 식어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게 결혼의 이미지는 덤덤한 얼굴로 매무새를 고쳐 앉고 커피를 한 잔 따르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데 있다. 다 그만둘까 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고 한숨을 푹 내쉰 후에 물어본다. '그래서 넌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마치 처음 만나는 연인처럼 그간 벌어진 사건을 대충 뭉개고 다시 처음부터 묻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고 침실로 향하려는 그를 억지로 끌어 앉히고 내 말 좀 들어보라면서 어렵사리 대화를 덧붙여 나간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부둥켜안은 채로 해가 진 관계를 서늘한 새벽 밤까지 물고 늘어지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사랑과는 다소 무관한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결혼제도가 묻는 건 오직 지속 가능성에 있다. 내가 운동을 하고 단백질을 챙겨 먹으면서도 관계를 붙들 수 있는 지속 가능성. 나의 삶의 방식을 상대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지속성. 후배는 이혼을 거치고 나서야 다시 헬스장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후배는 요즘 퇴근하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공원을 뛰고 헬스장도 다닌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권유했음에도 하지 않던 피티도 받는다고 하더라.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같이 하면 좋은데.' '그냥 쑥스러워서요. 선배 언제 같이 한 번 운동해요.' 의사들이 괜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움직이고 땀을 흘리라고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정량의 운동량을 채워내면 실패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성공담이 생긴다. 어찌 됐던 시간이 흐르고 밤에는 잠이 찾아온다. 녀석은 요즘 운동한다는 걸 티 내고 싶었는지 웃으면서 얘기했다. '헬스장에 가보면 다들 죽상을 하고 바벨을 들고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다 만트라 같아요. 하나 둘 셋, 숫자를 채우면서 기도하는 거죠. 몸에 통증이 올라오고 땀이 막 흐르면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주 철학자 나셨네. 운동하다가 책도 쓰겠다 너.' 녀석은 베슬베슬 웃으면서 말했다. '고립 운동이잖아요. 근육 고립 말고 저 자신의 고립. 이 말이 저랑 딱 어울려요. 이별에는 고립 운동.' 난 흔한 위로보다는 평소처럼 잔소리를 해댔다. '설렁설렁 깨작대서는 될 게 없으니까 되도록 무게를 많이 쳐라.' 나는 이제 막 운동을 재개하려는 녀석에게 또 잔소리 비슷한 걸 하고 말았다. 아무튼 난 녀석이 운동한다니 곧 괜찮아질 거라고 어느 정도는 안심할 수 있었다. 운동한다고 나아질 건 없다. 그렇다고 뒷걸음칠 일도 없다.
ᅠ녀석과 새벽까지 투다리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택시에서 어쭙잖은 위로의 말을 쓰다가 지웠다. 대신 내가 먹는 헬스 보조제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냈다. 위로도 참 편한 세상이다. 다짐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잔말 말고 내일 운동 나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하체하는 날이니까.' 그렇게 창밖을 보며 무심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다. 며칠 전 카페에서 다짐하듯 영수증에 쓴 메모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기엔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체로 휘갈기듯 ‘더 많은 산책과 운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찌나 거세게 썼는지 글자가 분노를 품은 것처럼 삐죽거렸다. 지금 후배에게 필요한 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산책과 운동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산책 운동 산책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