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배고프던 대학생 시절, 나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다. 규칙적으로 출퇴근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보다 그날그날 일당을 받을 수 있는 막노동을 선호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좋아하는 그녀에게 맛있는 스파게티를 사줘야 했고,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악어 모양의 로고가 박힌 피케셔츠를 입어야 했다. 곧 죽어도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마셔야 했으며 신춘문예 원고는 꼭 최신형 맥북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늘 돈이 급했다.
나는 하루 뼈 빠지게 일하더라도 한 번에 큰돈을 벌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사장 막노동만 한 게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몸을 쓰는 일을 하면 몸도 좋아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무거운 걸 들고, 계단을 오르고, 삽질하는 게 결국은 다 근육을 만드는 운동의 일종이 아닌가 싶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정말로 막노동을 돈 버는 헬스장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 무렵 나는 돈이 궁할 때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인덕원역 앞 오래된 상가에 자리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난 이왕 고생할 거라면, 철거 현장보다는 아파트 신축이나 주택 재건축 공사장을 선호했다. 어느 정도 준공에 다다른 덕분에 그늘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덩달아 현장 분위기도 한결 여유로웠다.
나는 운동복 차림에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스니커즈를 신고 공사장으로 향하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몸을 실은 인부 아저씨들 표정이 시궁창처럼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 긴 하루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후드티를 입은 내 또래 녀석도 보였다. 녀석은 현장에 자주 오는 모양인지 인부 아저씨들과 친해 보였다. 운전하던 인력소장은 백미러로 녀석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상하야, 너 오늘은 내빼면 안 된다. 시간 다 채우고 가야 해." 상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바지에 똥을 지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한여름인데도 인부 아저씨들은 목에 수건을 두르고 긴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프로의 옷차림인가 했다. 저렇게 옷을 켜켜이 껴입고 여름 땡볕을 버티기 쉽지 않을 텐데, 저렇게 입지 않고는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운동복 차림에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스니커즈를 신고 공사장으로 향하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다들 표정이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 긴 하루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후드티를 입은 내 또래 녀석도 보였다. 그 역시 바지에 똥을 지린 표정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사장 입구에는 '안전제일'이라는 팻말을 크게 써 붙인 자재 창고와 현장 사무실이 세워져 있었고, 안전모를 쓴 현장 감독관은ᅠ현황판을 들고 다가오더니 인사 한마디 없이 나와 상하에게 주의사항을 일렀다. 너희 꼬맹이 둘은 무조건 내가 시키는 일만 해.
"네 알겠습니다"
난 바짝 긴장해서 눈을 부릅뜨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완 달리 상하는 짝다리를 짚고 딴청을 부렸다.
감독관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물 위에서 못을 박던 인부 아저씨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이 박 씨 내가ᅠ공구리칠ᅠ때 물 섞지 말라고 그랬지. 왜 말을 안 들어."
공사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어디서든 지시하고 재촉하는 고함이 가득했다.
"이런 젠장. 아니 언제는 물을 좀 섞어야 한다며."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몸을 키우겠다고 생각한 내 순진한 바람은 벽돌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잔뜩 위축돼서 얼이 빠져있는 내게 감독관은 다시 소리쳤다.
"뭣들하고 있어. 어서 일 시작해!"
초짜인 우리는 주로 벽돌이랑 흙을 옮기는 일을 했다. 벽에 나사를 박는 김 씨 아저씨를 보조하는 일도 우리 몫이었다. 난 잠깐 쉴 때마다 공사장 한편에 마련된 정수기 옆에서 커피믹스를 타 마셨다. 커피믹스 한 컵을 백 모금으로 나눠 마시면서 시계만 살폈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분명 근력을 쓰는 행위인데, 노동은 근육 단련이 아닌 소진에 가까웠다. 헬스장에서는 어디 내놔도 빠질만한 몸이 아니었는데, 공사장에서는 영 아니었다. 일 근육과 운동 근육은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공사장 일은 지나치게 무릎과 허리 근육을 써야 해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다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쉬지도 않고 무너진 자세로 몸을 혹사하니 운동은커녕 있던 근육도 녹아내릴 판이었다.
공사장의 점심 식사 메뉴는 국밥이었다. 공짜라서 곱빼기에 밥을 두 공기나 말아서 먹었다. 오후를 버티려면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한다는ᅠ김 씨ᅠ아저씨의 잔소리에 국물까지 다 들이켰다. 식후에는 당이 모자란다는 말을 실감하며 식당 자판기에서 달곰한 커피를 연거푸 뽑아 마셨다.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을 수 없는 갈망이 일었다. 온 세포가 제발 좀 설탕에 절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김 씨 아저씨는 내게 다가오더니 "공사판용 카페오레 맛 한 번 볼래?"라고 물었다. 김 씨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밀크커피와 우유를 한잔씩 뽑아 섞더니 기가 막히게 달곰한 카페오레를 만들어줬다. 입이 얼얼할 정도로 단 커피를 마셨더니 나는 그제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난 점심 휴식 시간에 박스를 깔고 앉아 인부 아저씨들과 저급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댔다. 그러던 와중 내가 몸을 키우기 위해서 공사장에 왔다고 하자 왕년에는 책 좀 읽었다던ᅠ김 씨ᅠ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김 씨ᅠ아저씨는ᅠ내 옆에 앉더니 내가 한심한ᅠ듯 웃으며ᅠ뿔테 안경을ᅠ고쳐 쓰고ᅠ얘기했다.
"야 일이랑 운동이랑 같냐. 일하고 운동은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 자체가 아예 달라. 너 여기 오는 길이 즐거웠어? 지금 즐거워? 운동할 땐 막 즐거우니까ᅠ엔도르핀이ᅠ뿜어져 나오지. 근데 일할 땐 어때. 스트레스 호르몬만 잔뜩 나와. 일이 운동이면 여기 일하는 우린 다 초콜릿 복근이게."
난 고개를 끄덕이며 곰곰이 듣다가 말했다.
"그냥 국밥이랑 자판기 커피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내 한마디에 다들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피식피식 웃어댔다.
어렵사리 오후 근무를 마치자 어느새 저녁 일곱 시였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소장 아저씨에게ᅠ가서 두툼한 돈 봉투를 받았다. 나는 돈 봉투를 소중히 가슴팍에 품고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실었다. 지독한 땀 냄새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였기에 사람들은 절로 나를 피했다. 입에서는 커피믹스 특유의 텁텁함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그날 밤부터 며칠간은 온몸이 쑤셔서 헬스장에 갈 수 없었다. 노동으로 운동을 대신하겠다는 내 야심 찬 계획은 오히려 내 운동 루틴까지 처참히 무너뜨렸다.
공사장 경험은 내게 운동과 노동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요즘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침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하는 운동이라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운동뿐이다. 다른 운동을 좀 하고 싶어도 쏟아지는 전화와 눈치 주는 상사,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과 데드라인의 위협에 몸을 움직일 여력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뱃살을 막기 위해서 난 틈틈이 깨알 운동을 한다. 회의 중에는 주로 괄약근을 조였다가 푸는 케겔 운동을 한다. 발표자를 보는 척하면서 남몰래 케겔 운동을 해도 내 괄약근에 땀이 나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오래 쓰고 싶어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놓고 목 스트레칭을 한다. 졸릴 땐 비상구로 달려가 1층부터 20층까지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 그러고 나면 잠이 달아날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번쩍 든다. 내가 여전히 빨래판 복근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신호 대기 중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한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한쪽에는 일을 마친 인부들이 서 있었다. 역시나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난 불현듯 빈 종이컵을 구기며 현장으로 돌아갈 때 느꼈던 아스라한 피로감을 떠올렸다. 김ᅠ씨ᅠ아저씨가 먼지 묻은 손으로 타 주시던 카페오레 맛도, 노동이 운동일 수 있다고 설파하던 날 비웃던 상하의 미소도ᅠ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ᅠ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