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쉘터Take Shelter, 2011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폴 고갱은 문명세계의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에서 밝고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훌륭한 예술가 중에는 기인이 많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평범함과는 좀처럼 인연이 없었다. 그런 고갱마저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기행을 저지르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모두가 알다시피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며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 고갱은 자연스럽게 고흐와 함께 남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이라는 화실에서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면서 공동체의 삶을 살아간다.
두 사람은 언제나 작품 활동 중 술을 마셨다. 한 잔 두 잔 비워내는 술잔,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예술적 순간은 영원한 것이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흐가 술만 먹으면 기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사리에 맞지 않는 모호한 문장을 늘어놓거나,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해 고갱을 진저리 치게 만든다. 고흐는 항상 친구 고갱이 그들의 보금자리인 아를을 떠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에 시달렸는데, 이는 곧 망상으로 옮아 정상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했다. 친구인 고갱으로서는 절친했던 고흐의 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갱은 훗날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를을 떠나야 했어. 고흐가 너무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지. 심지어 나에게 정말 떠날 거냐고 묻기에 난 그렇다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고흐는 신문에서 ‘살인자가 도주했다’라고 적힌 문장을 찢어 내 손에 쥐어줬다고.”
고갱의 입장에선 심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이 워낙 돈독해서 불안한 동거는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그 증거로 고갱은 그 뒤로도 고흐와 항상 식사를 하고 산책하는 취미를 가졌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사단은 어느 날 맑은 하늘을 뒤로한 채 벌어진다. 어느 날 고갱 혼자 산책에 나섰는데, 몰래 따라갔던 고흐는 고갱에게 들키자 ‘너는 말을 하지 않아, 하지만 나 또한 말하지 않을 거야.’라는 이상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 사건이 벌어진 직후 고흐는 곧장 산책에서 돌아와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다. 그때 시간이 밤 10시였는데 평소라면 카페에서 술을 진탕 마실 시간이었다. 고흐의 마지막 산책이 그의 심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고흐는 귀에서 솟구치는 피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아를의 집에 자신이 손수 고른 노란 가구들을 적신 그 피범벅을 보며 고흐는 아마도 어떠한 결심을 했을 것이다. 고흐는 곧장 자신의 잘린 귀를 가지고 라셸이라는 평소 자주 찾았던 매음녀를 찾아간다. 그리곤 그 귀를 고갱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더없이 깊은 잠을 청한다.
영화 <테이크 쉘터>
고흐가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잘라 낸 이유에 대해서 뚜렷이 알려진 바는 없다. 여러 학설들이 난무하지만 그 당시의 고흐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고흐가 죽고 난 후 고갱마저도 이해에 닿을 수 없어 괴로워했다고 한다. 난 얼마 전 본 제프 니콜스 감독의 미국 독립영화 <테이크 쉘터>를 보고 나서, 문득 인간의 불안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안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영화는 어느 날부터 시작된 악몽이 현실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커티스(마이클 섀넌)라는 남자를 비춘다.
커티스는 고되지만 분명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그는 35살의 성실한 가장이다. 집에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현명한 아내 사만다(무려 제시카 체스테인)가 있고,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싱긋 웃을 줄 아는 맑은 딸 한나가 있다. 커티스는 열심히 회사에 헌신했기 때문에 딸의 치료를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모든 게 잘 풀려가던 이 가정에 뜬금없이 찾아온 위기가 바로 ‘불안과 망상’이다.
정신분열증이란 100이라는 정보에서 10이라는 신호와 90이라는 잡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30~40의 잡음들을 신호로 받아들여 의식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어버리고, 그 불안감에 망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그 수순이다. 그런데 커티스에게는 맥락 없는 망상이 되려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증세를 나타난 것이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이 현실로 침범하기 시작한 다. 하늘에 있지도 않은 새떼가 보이고, 가족의 죽음이 눈앞에 펼쳐진다. 커티스는 더 나아가 거대한 폭풍이 이 도시를 덮쳐,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선연한 신호를 잡아내기 시작한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이 계시와 같은 망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영화의 설정이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정신분열증과 과대망상의 징후를 거꾸로 거스르고 있는 것 외에, 증상을 앓는 본인 자체가 자신이 미친 것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정신병으로 아직도 일생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친어머니의 징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불안과 망상이 가족의 내력에 의한 대물림이 아닌지 스스로 의심한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그가 찾은 유일한 방책은 집 앞에 방공호를 파내어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이의 눈에 띄지도 않고, 속병을 치료할 수 있는 스스로의 묘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 비이성적인 행동의 대가는 참으로 크다. 불안의 증세가 일상 속에서 뜻 모르게 돌출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다. 어렵게 얻은 딸의 치료 기회도 모두 무산된다. 커티스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어간다.
온 재산을 털어 방공호를 짓고, 기행을 반복하여 딸과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드는 이 가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은 커티스의 아내 사만다뿐이다. 그녀는 가족을 위한답시고 땅을 파대는 이 남자의 광기에 현실적으로 대처한다. 무너진 경제상황을 몰래 모아둔 돈으로 수습하고, 남편에게는 방공호를 파게 하여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다. 그녀는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남편을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사람들 틈으로 이끌어낸다. 그리고 커티스가 지은 방공호 안에서 잠을 자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설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사만다의 현명함이 커티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불안이라는 그 흔한 것.
'불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밀접한 개념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불안과 망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망상이 왜 생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망상의 내용과 그 사람의 관계는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망상이라는 증상에는 그 사람을 보여주는 분명한 인과가 있다. 그리고 증상을 통해 마음의 문에 접근하여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죽음을 선택하는 고흐 옆의 고갱이 사만다의 불안을 덜어줄 사만다의 존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영화 <그녀>의 노총각을 위로해주는 운영체제 목소리 역시 사만다다) 평생 자신의 그림 한 장 팔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버린 고흐는 그 음울한 얼굴을 숱한 자화상에 남겼다. 자신의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까지 그림으로 남겨둘 만큼 자신을 그리길 좋아했다. 그의 슬픈 눈과 무표정한 얼굴 사이의 잡히지 않는 그 접점이 그를 더 외롭게 보이게끔 한다. <테이크 쉘터>의 결말은 이렇다. 단순히 망상으로 치부했던 불안의 형태가 현실로 나타난다. 거대한 폭풍우가 가족의 앞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어쩐지 커티스의 표정은 그렇게 두려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두려웠던 것은 묵시록의 절망이 아닌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의 형태를 온몸으로 받아냈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옆에는 아름다운 아내 사만다와 예쁜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