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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9. 2018

나를 보내지 마

<한중록> 혜경궁 홍씨 저, <붉은 왕세자빈> 마거릿 드래블 저


클론들의 독서, Never Let Me Go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몰라도 영화 <네버 렛 미 고>와 <남아있는 나날>을 아는 분들은 꽤 많을 것이다. 난 두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데, 두 작품의 원작들을 보다 더 좋아한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두작품을 비롯한 활발한 집필의 공로를 인정 받아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시간을 꽤 지난 지금도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랭킹 상단에는 두 작품이 끈질기게 버티고 서 있다. 올해는 유독 더 수상자 특수를 타는 모양새다.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포스터

작년 수상자 '밥 딜런'과 재작년 '파트릭 모디아노'가 미비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걸 떠올려보면 예상외의 일이다. 이유는 아마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 재밌어서 일 것이다.(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재밌다. 심지어 두 사람은 꽤 친하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작가다.) 작년 밥 딜런이야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니 평전이 많이 팔릴 리 없었다. 16년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내겐 그저 숙면의 재료 그 이상이 될 수 없음을 재차 실감하게 했다. 한 마디로 가즈오 이시구노의 소설들이 더 친절하고, 부록처럼 영화화까지 되어있으니 잘 팔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나를 보내지 마>는 인간의 의료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중반까지 읽다 보면 어릴 적부터 살던 기숙학교를 떠나는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한 섬에 정착한 클론들은 기증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유년과 청년기까지는 그들은 스스로 인간들의 대용품임을 모르고(모른 척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성년이 되면서부터 얼마 남지 않은 삶과 자신들의 존재적 회의감으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얼마 후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들의 장기와 신체를 떼어줘야 할 것이다.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생식 없는 섹스를 하며 여러 날을 보낸다. 그중 어느 이는 몰래 술을 찾아 마시고, 어느 누구는 여행에 목을 맨다. 그리고 어김없이 주인공 캐시는 문학에 빠져든다. 캐시는 시한부의 인생, 제한된 공간에서 문학을 통해 여러 공간들을 상상한다. 자신의 원본 인간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채광이 좋은 사무실에 앉아있을 자신을 그려본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영국식 저택과 저 앞에 도시락 통을 들고가는 여인의 삶을 시샘한다. 그렇게 구현되지 않을 가능성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캐시가 읽는 소설들의 면면들은 대부분 영미문학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볼 수 있는 교과서와 같다. 만약 내가 한국에 사는 클론이었다면 나 역시 한국 소설들을 읽으며 채워지지 않을 궁금증을 달랬을 것이다. 김영하, 김애란, 은희경의 작품을 읽다 말고 가슴팍에 책을 대고는 생각에 잠기겠지. 물리적 확장이 불가능한 세상을 문학으로 넓혀나가려는 노력이 작중에서 애틋하게 그려진다.      

영화 <네버 렛 미 고> 왼쪽부터 극 중 인물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캐시(캐리 멀리건), 토미(앤드류 가필드)

캐시가 읽는 여러 작가의 소설 중에는 마거릿 드래블이라는 낯선 이름도 등장한다. 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마거릿은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작가다. 그녀는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세븐 시스터즈(The Seven Sisters)’ ‘여름 새장(A Summer Birdcage)’ ‘상아의 문(The Gate of Ivory)’ 등아 있지만 역시 낯설다. 마거릿은 유독 여성문제와 그에 부합하는 사회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작가로 유명하다. 요즘 페미니즘 문학의 기수로 평가받는 세라 워터스, 도리스 레싱과 같은 작가들과 비교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설 붉은 왕세자빈, 영국판 한중록?


마거릿 드래블은 뉴욕에 거주하던 중 90년대 말에 영문판 <한중록>(원제 : The Memoirs of Lady Hyegyong)을 읽게 된다. 여러 보도를 통해 읽어본 결과 그녀의 작품에서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혐의를 지적하는 평론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조선 시대 '혜경궁 홍씨'가 공들여 작성한 궁중 비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한중록이 영문으로 번역된 것 자체도 신기하지만, 번역이라는 것이 가진 확장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사례다. 어느 누가 영국의 유명한 작가가 한중록을 읽어봤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데보라 스미스’의 과감한 번역을 통해 영국 출판계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 '마거릿 드래블'

마거릿이 <한중록>에 감명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기록이라는 점과 궁중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권력의 다툼 등이 영국 소설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의 고전 소설들 역시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 왕가의 파벌과 대 가문의 권력 암투를 그린 작품들을 자주 다루고 있으니까.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된다.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가 몇 년의 집필 끝에 <한중록>을 기반으로 한 소설 <붉은 왕세자빈>(원제 The Red Queen, 2004)을 출판했다.

캐시가 마거릿 드래블의 소설을 통해 자신이 결코 접할 수 없는 미혹의 세상을 떠올렸듯이, 마거릿 역시 우연히 접한 혜경궁 홍씨의 저서 <한중록>을 통해 여성 간의 연대를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붉은 왕세자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혜경궁 홍씨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기술은 물론이고, 옥스퍼드대 출신의 의학윤리 전공 여성 학자 바버라 할리웰이라는 화자를 등장시켜 문학의 횡단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야 맞닿을 수 있는 두 여성 사이의 끈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극 중 화자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중록>을 읽고 과거 조선에서 일어난 사도세자의 비극에 공감하게 된다. 자신 역시 능력이 있음에도 남성들이 지배하는 옥스퍼드대에서 교수로 자리 잡지 못하는 현실과 겹쳐지는 것이다. 남편은 억압적인 부친과의 갈등으로 인해 생긴 정신병으로 고통받고, 아들은 유전병으로 먼저 세상을 뜨게 된다. 작가 마거릿 자신이 혜경궁의 인생을 향한 깊은 공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설정이다. 몇몇 평자들은 이를 두고 장소만 바꾼 설정의 배끼기를 지적한다. 그녀는 이에대해 문학의 연결성을 강조한다. 오리엔탈리즘을 가장한 무차별 인용에 대한 그녀의 반응이 흥미롭다.

수많은 사극에서 보았던 혜경궁 홍씨를 연기한 배우 중 가장 좋아하는 배우 '견미리', 출처 : MBC 드라마 이산 스틀컷

혜경궁 홍씨의 기구한 삶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는 시아비인 영조가 자신의 남편이자 당시 세자인 사도를 죽이는 것을 견뎌야 했다. 또한 자신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집안사람들을 정치적 이유로 풍비박산 내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다. 특히 홍국영이 세도가로서의 기질이 발휘되던 정조의 집권 시절에는 온 가족이 줄줄이 초상 치르는 걸 보며 오열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들 정조의 석연찮은 죽음을 지나쳐야 했으며, 대비가 아닌 탓에 숙적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다. 참으로 오래 살며 모든 것을 지켜본 그녀다.

‘한중록’은 모두 네 편으로 되어 있다. 제1편은 혜경궁 홍씨의 어린 시절과 세자빈이 된 이후 50년 간 궁궐에서 지낸 이야기를 하는데, 사도 세자의 비극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제2편과 제3편은 친정 쪽의 누명이 억울함을 말하는 내용이다. 제4편에서 비로소 사도 세자 참변의 진상이 기록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사도 세자의 죽음(임오화변)에 관련된 내용이다.

한중록을 집필한 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때는 순조 1년. 환갑을 맞이한 혜경궁은 숙적인 정순왕후가 죽은 다음 해에 집필을 시작했다. 손자인 순조에게 서둘러 회고록을 써서 올려야 했던 데엔 이유가 있다. 아들 정조가 죽고, 정순왕후까지 죽자, 그녀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가문의 부활을 시행하기 위해서다. 하루빨리 치욕 속에 사라져 버린 그녀의 가문을 본 궤도에 올리는 것이야말로 환갑을 맞은 그녀의 마지막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중록은 그녀의 의도가 새겨있고, 그녀의 열망이 숨어있다. 자신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기에 한중록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편집된 역사인 것이다.

영화 <네버 렛 미 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소설만큼 좋아한다. 어쩌면 배우들의 연기가 이렇게도 어울릴 수 있는지.

정조의 죽음에는 많은 이견이 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녀는 한중록을 집필하며 머릿속에 이산의 얼굴을 얼마나 그렸을까? 역사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내가 이 글을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성한 것처럼, 역사란 추론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건 개개인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의 차로 나눠지겠지. '한중록'을 진실로 보든, 거짓으로 보든지 간에 뛰어난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기구한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 완숙한 감정의 분출을 만들어냈다고 하면 과장일까?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책을 읽는 클론 캐시의 얼굴과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궁중에서 사는 한 여인의 기록을 읽는 바버라. 사무치는 비극을 앞에 두고 인생을 복구하길 원하는 혜경궁의 필치. 문학은 시공을 초월하여 한국과 영국,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있다. 본디 이 오고 감의 얇은 선들엔 누군가가 문학을 왜 읽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들이 적혀 있다.


P.S. 소설에서 캐시가 잃어버린 후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매는 주디 브릿지워터의 '네버 렛 미 고'

https://youtu.be/4UX6tzE7P44

Judy Bridgewater - Never Let Me Go
어린 소녀가 혼자 춤을 추고 있더구나. 조금 전 네 말대로 뭔가 다른 걸 생각하면서 두 눈을 감고 애타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춤을 추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음악, 그 노래, 그 가사에는 뭔가가 있었어. 슬픔으로 가득 찬 뭔가가 말이다.”

  “그건 「네버 렛 미 고」라는 노래였어요.” 그렇게 말한 다음 나는 그녀를 위해 한 소절을 나직하게 불렀다. “네버 렛 미 고, 오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그녀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노래였어. 그 후에도 한두 번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혼자 춤을 추던 어린 소녀가 떠오르곤 했다.”

"나를 보내지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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