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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n 09. 2019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최승자의 시를 읽다가

기억 놀음


 서촌 초입에 자리한 종로도서관을 좋아한다. 사직단을 끼고 후미진 골목을 걷다 보면 작은 공원에 이른다. 며칠 전에도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그 근처를 걷다 평소 눈에 안 띄던 작은 놀이터를 발견했다. 공기도 좋아 철봉이라도 할 겸 놀이터에 발을 디디자 한 소년이 보인다. 흰색 반소매 티에 검정 츄리닝 바지, 의자엔 큰 스포츠 가방이 놓여있다. 녀석은 나를 보고 잔뜩 움츠러든다. 때아닌 불청객이 영 못마땅했는지 짐을 챙긴다.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닌, 너와 함께 이 공간에 있기에 꽤 적합한 사람임을 보이기 위해 되도록 온화한 표정으로 철봉을 했다. 사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제일 싫고, 극장 옆 좌석 타인이 가장 거슬리는 법이다. 그래 내 외향이 심히 험악하지. 금세 자리를 뜰 것으로 보였던 소년은 놀이터 가장자리에서 허공에 발차기한다. 스피커로 작게 틀어놨던 이름 모를 노래도 이어폰으로 바꿔 끼고 혼자에 심취한다. 왠지 모르게 그의 시간을 침범한 것 같아 미안했다.


 철봉을 하며 소년을 살폈다. 이 늦은 시간에 뭘 하는 걸까. 녀석은 마치 몸 구석구석을 단련하듯 바삐 움직인다. 난 소년을 관찰하기 바빠 미적거렸다. 괜스레 누군가의 긴요한 시간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밤 11시 놀이터는 소년에게 어떤 시간일까. 어쩌면 고달픈 하루 내내 이 시간만 기다려온 건 아니려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풀고 정처 없이 생각을 흘려보내는지. 가족의 얼굴, 학교에서의 생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난 조용히 놀이터를 빠져나와 경복궁역으로 향하며 소년을 떠올렸다. 나이키 가방에 들어있던 장갑과 티셔츠, 끈이 해진 하얀색 슈퍼스타 운동화. 공기에 흩어지는 가쁜 숨.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러운 이사로 통학 시간이 길어졌다. 걸어서 5분이면 가는 학교를 버스 타고 40분을 가야 했다. 잔뜩 주눅이 들었다. 확실히 제 구획이 잡힌 무리 틈에서 혼자된 기분이었다. 교실에서 배격된 느낌에 책상만 보다 빠져나왔다. 그땐 종일 머리가 시끄러웠다. 시종일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시디플레이어를 닳고 닳도록 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딴청을 피우면 좀 살만했다. 시끄러운 집안을 잊기 위해 방구석에서도 듣고, 부모님 싸우는 소리를 피해 지옥에서 춤을 췄다. 파란색 파나소닉 제품이었는데 싸고 튼튼했다. 검은색 백팩에 소설책을 몇 권 넣고 한없이 골목을 걷다 들어가면 잠이 잘 왔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게 <휘성 1집>이다. 구슬프게 울부짖는 그의 캐릭터가 요즘엔 희화화되는 모양인데, 그땐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됐다. 아마 울기도 했을걸. 그래서 요즘도 휘성 1집을 들으면 괜스레 오그라든다.


 아침에 길을 나서며 오랜만에 ‘안 되나요’를 들었다. 멜론은 가뿐하게 12개의 트랙을 재생한다. 어쩐지 가볍게 들린다. 당시 내가 들었던 휘성은 무거웠는데. 그에겐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운 울분이 있었다. 유치한 자기 연민과 교실을 불살라버리고 싶은 내 속내가 꾹꾹 담겼다. 데뷔 초기 휘성의 무대를 기억한다. 이상한 파마를 하고 큼지막한 옷을 입은 그는 내가 TV에서 보던 발라드 요정과는 달랐다. 요란한 가수 틈에서 눈을 부라리며 땅만 보고 노래를 불렀다. 내게 휘성은 과잉이며, 어둡고 침울했지만 남 같지 않았다. 목이 다 긁히고 쉬어도 끝내 뱉어버리는 무모한 기운이 좋았다. 세속적인 느낌 이면에 부득불 마이크를 잡은 기운이랄까. 침범 불가한 제 영역에서 모두를 밀어내듯 부르는 노래가 좋았다. 아침이면 그의 시디를 재생하며 아득한 등굣길을 버텼다. 지금은 내가 변해서일까. 시디플레이어가 스트리밍으로 형체가 없어져서일까. 감정이 녹슬어 그 기운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 다르게 사랑하는 법 /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 공부’ 중, 최승자)


 난 종종 지나간 일을 곱씹다가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그런 잡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때리는 기분으로 글자를 새겼다. 꺼내놓고 들여다보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나아질 건 없었다. 누군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는지 모르지만, 난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잘 모른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확실한 게 없다. 매일 아등바등 발맞추지만 도통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지금 직면한 문제가 산적한데 상상으로 도망치기 바쁘다. 사무실에서 적어 온 투두 리스트가 산더민데 자꾸 과거에 자리 잡고 턱을 괸다. 요즘 점점 더 꿈을 많이 꾼다. 며칠 전에는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이 말다툼하는 걸 뜯어말리느라 혼났다. 둘 다 서로가 더 위대한 배우라고 싸우는데 꿈같지 않게 생생했다. 나는 무조건 말론 브랜도 편이다. 그가 더 위대한 배우라고 확신하니까. 근데 제임스 딘이 자긴 팬티 브랜드도 있다고, 자기가 더 유명하다고 우겨대는 통에 애를 먹었다. 듣다 보니 틀린 말 같지도 않았다.


예감 준비


 얼마 전 회사 근처 수제 햄버거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매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지겨웠다. 날씨가 좋고 뭔가 할 게 없으니 머리도 가뿐했다. 식당 가득 외국인이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여기가 이태원도 아닌데 웬일이람. 어쩐지 여기가 유럽의 한 식당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사무치게 확연한 일탈이 그리워졌다. 난 다 때려치우고 떠나버리는 걸 못하는 사람이다. 잃어버릴 게 두려워 생각만 바쁘다. 그냥 안전지대에서 버티는 걸 선호한다. 기회비용을 생각하다 제풀에 지친다. 그러니 늘 하던 것만 하는 수밖에. 그걸 행복이라고 브이 자를 그려봤자 자기 위안일 뿐이다. 빼곡한 일과를 마치고 나면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날 옥죈다. 이럴 땐 영화관에 가서 톰 크루즈와 곡예를 펼치며 다 잊어버렸는데, 요즘엔 그것도 안 된다. 달관한 척 팔짱 낄 수 없다. 건방진 웃음을 머금을 수가 없다.

 이튿날 강남의 한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갔는데 그냥 그 시간이 좋더라. 그렇다고 뭐 신의 은총을 받겠다고, 종교에 귀의해서 마음을 편히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될 리도 없고. 그냥 거기서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니 기분이 괜찮더라. 왜들 졸린 주말에 교회당에 몰려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모았다가 주말에 가서 푸는구나.

 못마땅하고 귀찮더라도 정녕 소중한 이에겐 내 마음을 전해야 한다. 문자로라도 난 당신을 위한다고, 은연중에 나마 말해야 한다. 유치하고 어색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게 달관은 회피다. 달관을 취한 모든 태도는 비겁하다. 최승자의 말대로 달관을 핑계 삼아 도통한 척하면 곪고 썩는 걸 피할 수 없다. 인생은 불가피한 사고의 연속이고, 온갖 복잡한 사연으로 인해 흩어진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진심은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다 안다고 넘어갈 순 없는 노릇이다.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했다. 딱히 친하지 않은 이들과 누구보다도 다정한 얼굴로 떠들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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