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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12. 2019

윤종신의 늦바람에 부쳐

 아침에 일어나서 눈이 떠지지 않아 폰으로 뉴스를 실눈으로 살폈다. 거대한 혼돈에 휩싸인 최근 정국을 마주하기 버거워, 내 사랑 연예란으로 눈을 돌렸다. 12년 만에 라디오스타에서 하차하는 윤종신. 갑자기 기억 한 조각이 툭 하고 떨어졌다.


 스물 중반, 한창 내 위악과 냉소가 치솟을 무렵 난 매주 수요일마다 라디오 스타를 즐겼다. 색동옷에 연지를 찍은 무릎팍의 등쌀에 한 회가 5분도 안 돼서 끝나버리던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이라 뭐든 헐뜯고 싶을 때 김구라가 거기 있었다. 아직 먹고살기가 텁텁하던 시절 김구라는 전투력이 최고조에 다다라 있었다. 난 그의 돌직구에 대리 만족을 느꼈다. 사무실에서 과장의 구박에 숨죽이던 나와 달리 그는 래퍼처럼 누구든 가리지 않고 일갈했다. (물론 약자에게 더 강했다는 건 인정해야 마땅하다) 게스트를 불러놓고 막 나무라는 <라디오 스타>의 콘셉트는 사실 곱지 않은 시선을 불러일으켰다. 김구라가 칼을 높이 쳐들면, 신정환이 입에 머금던 술을 내뱉는 식이니 당할 자가 없었다. 온갖 매체에서 막말 방송이라고 비난하고, 그 거침없음을 불편해한 안티도 상당했다. 그래도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 김국진은 꿋꿋했다. 난 정예라는 말을 떠올리면, 삼국지나 슬램덩크가 아니라 당시 라디오 스타를 먼저 떠올린다. 난 수요일 밤 라디오 스타에서 허튼소리를 주워듣고, 주말에 술자리에서 거친 농담을 배설했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김구라도 묽어진 탓에 이제 온 가족이 모여 밥상머리에서 그가 출연하는 <복면가왕>을 보더라. 김구라는 바야흐로 주말 저녁을 책임질 수 있는 방송 전문가가 되었으니까. 그 결과로 난 이제 김구라가 나오는 예능을 잘 보지 않는다. 내가 텔레비전을 멀리하던 시점이 그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

말 그대로 리즈시절

 당시에 김구라는 방송을 같이 시작한 윤종신을 함부로 격하했다. 게스트가 지루해 방송이 잘 풀리지 않으면, 패널들끼리 서로 헐뜯는 분위기에서 김구라의 먹잇감은 단연 윤종신이었다. 인텔리 한 이미지에 음악적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그가 마흔이 넘어 험난한 예능에 뛰어들었으니까. 김구라는 틈만 나면 무시와 조롱으로 윤종신의 커리어를 깎아내렸다. 유희열 김동률과 함께 90년대 감성 발라드를 장악했지만, 어느 순간 격차가 벌어져 버린 시기. 그들이 해가 다르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 다르게 마흔이 넘어 본격 주워 먹기 개그 스타일을 창시한 그의 처지를 비꽜다. 난 개인적으로 그 시기가 윤종신의 음악적 슬럼프라고 생각한다. 찬란하게 빛나던 윤종신의 음악은 뒤늦은 입대, 결혼으로 인해 하향 곡선을 탔다. 아니 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난 그때 무르익음이라는 가치를 몰랐으니까. 온통 뜨겁기만 해서 조금만 식어도 시시해했으니까. 김구라는 그 미지근함을 그가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단언했다. 그건 윤종신에게 아픈 말이었을 것이다. 김구라의 말은 농담조였지만 물이 졸아버린 신라면처럼 맵고 얼얼했다. 나 역시 김구라의 독한 혀에 자지러지게 배를 긁으며 웃었던가. 예능 늦둥이라는 호칭에 박수를 치며 웃던 윤종신은 때마다 너그럽게 놀림을 받아들였지만, 몇 년 후 한 인터뷰에서 초조와 서글픔을 느꼈던 마음을 고백한 바 있다. 내가 한때 몰입하던 뮤지션은 그렇게 잊혀갔다. 아마 나도 그 시점부터 윤종신의 음악을 멀리했던 것 같다.

앨범 <그늘>

 김구라의 말처럼 난 90년대 발라드가 정점인 시기에 그의 음악을 즐겼다.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던 형의 영향으로 윤종신, 유희열, 윤상, 전람회, 이승환을 일찍부터 들었다. 내 눈엔 신승훈을 들으면 시시했고, 윤종신을 들으면 뭘 좀 아는 놈이었다. 하지만 내가 윤종신의 앨범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건 'Annie'가 수록된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다. 남들이 한풀 꺾였다고 말하던 시절, 그의 음악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한참을 머물렀다. 연인과의 이별을 격한 감정 없이 소회하고, 때론 팔짱을 두르고 웃을 수 있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김구라가 매가리가 없다고 비난했던 음악적 기조가 너그러운 윤종신의 성품과 잘 어울린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앨범 표지를 보면 일찍부터 코트를 꺼내 입은 그는 이제 한 시절이 지남을 잊지 않고, 이제 다시는 뜨겁지 않으리라 말한다. 그리고 윤종신의 다음 정규앨범 제목은 <그늘>이다.


 모두의 예측과 달리 윤종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을 회고해야 문득 떠오르는 과거로 남지 않았다. 노총각 사인방(김현철, 이현우, 윤종신, 윤상)으로 불리던 네 명의 뮤지션이 음악과 거리를 둘 때도 그는 예능에만 출연하는 이인자 캐릭터에 머물지 않았다.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진행해, 천편일률적인 한국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형식 실험의 성공사례로 남겼다. 또한 패널들의 온갖 사고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스타를 보란 듯이 엠비시 간판 예능으로 정착시켰다. 12년 동안 단 1회도 빠지지 않고 프로그램을 지켰다. 난 누군가에게 품위 있는 사십대를 말할 때 윤종신을 언급할 때가 있다. 자신의 미흡을 가지고 농담을 할 줄 알고, 과거의 성공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함. 화려한 미덕보다 익숙함과 변주의 가치를 아는 어른. 개인의 취향이라는 말의 촌스러움을 아는 뮤지션.

 난 윤종신의 마지막이 보고 싶어 짧은 클립으로 라디오스타를 봤다. 김구라는 윤종신에게 이별 선물로 100유로가 갈피에 끼워진 책 한 권과 하와이안 셔츠를 선물하더라. 별로 신경 안 쓰는 듯, 의례적인 요식이라 고개를 돌리고 선물을 건넨다. 하지만 윤종신의 얼굴엔 감동의 빛이 스쳤다. 거기엔 십 년을 넘게 쌓아 올린 유대가 있었으니까. 모두가 지쳐 안식할 나이에 자신을 북돋는 동년배를 향한 존중이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여 주책맞게 침대에서 찡해졌다. 방송에서 하차한 그는 '월간 윤종신'이 10주년을 맞게 되는 내년 이방인의 시선으로 프로젝트를 제작한다고 한다. 윤종신은 라디오스타의 마지막으로 <늦바람>이라는 곡을 불렀다.


https://youtu.be/Ro8g3ovcxWo 


글쓴이 : https://instagram.com/major.minjin


표지 사진 : 앨범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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