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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25. 2019

첫 느낌이란 건

웨이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첫사랑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선명하다. 난 아직도 그 여름날의 아득함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건 보면 안 된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며 주의를 주셨다. ‘뭔데 보지 말라는 거야?’ 우유를 한 컵 따라 마시고 컵을 휘 헹궈 개수대에 놓고는 얼른 소파에 앉아 테이프를 재생했다. 비디오 라벨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고 적혀 있었다. 단골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영화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난 아버지와 무수한 영화를 섭렵했지만, 빨간색 영화는 처음이었다. 침이 꼴딱 넘어가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창밖을 보니 밖에선 해가 지고 있다. 놀이터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고집스레 놀이에 집중하던 아이들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호통을 치는 어머니의 기에 눌려 고개를 푹 숙이고 급히 집으로 향한다.

 비디오는 도대체 무슨 예고편이 이리도 많을까. 빨리 감기를 눌렀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영화에 접어들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경고문을 보며 자세를 가다듬고 오프닝 크레딧의 적막과 마주한다. 흰 자막이 하나둘 점멸하고, 한결같이 느끼한 얼굴을 한 니컬러스 케이지가 술을 진탕 먹고 운전을 한다. 그는 라스베가스 거리에서 한 여자를 차로 칠뻔한다. 그리곤 화를 내며 다가오는 여자에게 욕을 먹는다. 그리고 우연히 다시 조우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한잔할래요? 음주운전은 불법 아닌가요? 재미있네. 난 벤이에요. 난 세라 예요. S-E-R-A 세라” 세라는 그를 유심히 지켜본다. 잠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나쁜 놈 같지는 않아 보였는지 그의 차에 오른다.

 사실 난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분명한 감각이다. 그전까지는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던 주말의 명화가 이제는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사랑이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유일한 히트작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청불' 딱지 이상으로 야하고 잔인한 영화다. 무엇보다 소재가 알코올 중독남과 매춘부의 사랑이었으니, 당시 내가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볼 때까진 영화의 스토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고, 몰입을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내 목덜미를 잡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기억만 남았다. 

 이후 비디오로 보던 영화는 컴퓨터로 들어왔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즈음 MP3의 보급과 함께 영화 역시 패킷화가 이뤄지며 인터넷의 바다에서 영화를 찾아 헤맸다. 밤새 켜놓은 컴퓨터로 세계의 명화를 다운로드하고, 방과 후에 라면을 먹으며 봤다.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밖으로 도는 형은 너무 멀리 있었다. 갑작스럽게 기운 가세, 느닷없는 이사로 얼마 없던 친구마저 사라졌다. 나는 영화를 벗 삼아 사춘기를 버텼다. 중 2병이 중이염보다 무서운 건 치료제가 없다는 건데, 난 너나 할 것 없이 중병에 시달리던 시기에 큰 방황 없이 영화에 속풀이를 한 셈이다. 이쯤 책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한 장소는 학교 도서관이었다. 당시 사서 선생님은 젊고 이뻤고, 부끄러워 말도 잘 못 걸면서도 방과 후에 그녀를 보러 갔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세계문학전집에서 두꺼운 양장본을 떡하니 빼고는 힐끔거리며 그녀를 살폈다. 그때 사귄 친구들이 문제아 '홀든 콜필드', 사랑에 버림받은 '위대한 개츠비', 사연 많은 '안나 카레니나'(첫 챕터만 읽어서 안면만 익혔다), 정신 못 차린 '허클베리 핀',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 같은 녀석들이다. 이후 소설과 영화는 고립된 나를 돌봐줬다. 내게 고독은 편안한 쉼터와 같다. 내 삶의 조건은 고요함이다. 그걸 인정하는 게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 서른이 훌쩍 넘어서 보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다정한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허리가 쑤셔도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술자리가 파장으로 치달을 때면 더 불안해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아무도 나와 술을 마셔주지 않고 집으로 가버릴까 봐 초조하다. 괜스레 농담이랍시고 실없는 얘기를 꺼내며 혼자 웃는다. 술을 한 병을 더 시키며 분위기를 띄우려다 만취해 버린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술자리는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난 점점 더 초라해진다. 고독을 좋아한다는 마음은 자취를 감추고, 홀로 거리에 서서 여지없이 바닥에 내몰린다. 마치 라스베가스를 떠도는 벤처럼 한심한 작태를 일삼는다. 세라를 떠올리다 속이 매스꺼워 토악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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