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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08. 2017

난 점점 더 가난해지는 걸까

왓챠 <잠 못 드는 밤>

누구에게나 있을 이야기지만, 난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갑작스럽게 가정에 위기가 닥쳐와 가족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쭉 가난해온 것과 갑자기 가난해진 것은 다르다. 충격의 여파는 오래가고, 장담할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가난해지면 집이 좁아지고, 가구를 버리게 된다. 손때 뭍은 물건들이 버려지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육신이 추워지고, 늘 목이 마른 기분이 든다. 가난의 행태는 내가 알기론 다들 비슷하다. 모두가 아는 실수를 해서 전형적인 방법으로 가난해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어디서 말하기도 민망하다. 다들 그 정도 경험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솔직하게 가난함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덤덤해졌던 것 같다.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는 짐짓 희미해졌다. 어릴 땐 가난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에게 굳이 터놓진 않지만, 내 젊음을 무기 삼아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었다. 가끔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다소 불편한 점만 있었을 뿐 가난은 그저 옆에 놓여있는 삶의 환경들 중 하나였다. 내가 짊어진 시간이라는 봇짐엔 아직 꺼내지 않은 따근한 도시락이 있었고, 가끔 친구들과 그것을 꺼내먹으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가난은 그저 훗날 훨훨 비상할 내 미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물과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서른이 넘은 지금 내 주변에 가난은 없어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 가난했던 그때보다 더 가난이 명확하게 만져진다. 왜냐면 가난이 미덕이 아닌 세상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가난은 부끄러움이고, 밝혀봤자 좋을 것 없는 흉이다. 가난이 있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은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를 떠났다. 붙잡을 수 없었던 건 개선의 여지가 없는 현실 때문이다. 자존심상 슬픈 내색을 하지 못했다.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엔 제목처럼 가난했던 하룻강아지가 돈의 맛을 알고 월 스트리트의 늑대가 되는 이야기다. 역시 이 늑대의 초창기는 가난했다. 어린 아내는 잔소를 퍼붓고, 정체 모를 미래를 기약하며 돈을 좇았다. 그리고 마침내 돈을 벌어 졸부가 되자 가난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난을 모험담으로 삼아 자신의 직원들에게 돈에 대한 강의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 수만 있으면 세상은 달라진다. 사기를 치든 살인을 하든 결국 돈 많은 새끼가 자본주의 게임의 승자다. 이 영화 자체가 돈을 탐하는 늑대의 야만성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밌는 게 있다. 오로지 돈이 목적인 세상에서 돈을 부정하게 버는 것이 나쁜 짓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니까. 영화 속 졸부는 그를 막으려는 FBI와 경쟁회사의 임원들을 돈으로 비웃으며 세상을 기만한다. 

영화는 야만적인 돈벌이를 마치 록 음악처럼 유쾌한 놀이로 연출한다. 특히 섹스와 돈을 한 묶음으로 펼쳐놓는 끝없는 소비의 진열은 기분까지 불쾌하게 한다. 난 이 영화가 펼쳐 보이는 난장판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펼쳤던 모든 악행을 하나의 미담쯤으로 치부하는 섣부른 태도에 얼굴을 피해버렸다. 영화 속 늑대는 끝에 가서 자신의 악행을 처벌받지만, 그것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될 뿐 그의 타락이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 넣는 건 아니다. 이 영화가 돈을 그리는 윤리적 태도에 관해서 시종일관 불편한 맘을 가지고 영화관을 나섰다. 요즘엔 욕망을 전시하는 것이 쿨한 시대다. 위악이 오히려 위선보다 낫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상대를 향해 거칠게 내뱉고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난 영화관을 나서며 불편한 마음을 쿨한 것으로 덮으려고 애써 미소 지었다.

잠 못 드는 밤Sleepless Night, 2012

장건재 감독의 영화 <잠 못 드는 밤>은 젊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정 반대의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어느 평범한 신혼부부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영화의 주 소재로 삼는다. 그들은 상상한다. 직장에 잘리게 되면 어쩌지? 아이를 낳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지? 쉬는 날에 쭈쭈바를 먹으면서도 그들은 불안은 쉼 없이 상상력을 괴롭힌다. 그들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눈을 감으면 덮쳐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하기엔 벅찬 현실의 문제들이 산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건, 결국엔 서로 의지하며 문제를 해쳐나갈 자그마한 공간 덕분이다. 작은 아파트에서 두 사람은 몸으로 대화하고, 눈빛으로 서로를 그리며 사랑한다. 결코 섣부른 불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던져 신뢰를 깨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한 부대의 연대감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영화는 작은 아파트 안에서 별다른 사건도 없이 흘러 지나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상과 현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들을 괴롭혀봤자,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한 여름밤의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아늑함 때문이다. 몸을 포개고 침대에서 서로를 애무하는 두 사람의 체위는 몸을 따듯하게 덥혀준다. 한 여름 더위에 못 이겨 아파트 앞 공원을 손을 잡고 걷는 부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작은 그들만의 공간에 내 마음을 의탁하니 가난이 발붙일 곳 하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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