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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4. 2021

주공아파트 단지부터 시작

#28 생애주기는 어떻게 삶을 흔드는가

 생일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신지. 난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병원이 너무 무섭고 날 낳기가 참 힘겨우셨단다. 내 머리가 커서 그런가. 두 번째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병원은 늘 끔찍하셨단다. 그 병원은 지금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영동지구라 부르던 강남 일대를 강남구로 통칭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했으리라. 과거 한강 이남 서울이 영등포뿐일 때 영등포 동쪽 동네라고 해서 영동으로 불렸다. 그래서 초기 강남 개발사업이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다. 나는 강남이 아닌 영동 출생 아이인 셈이다.

 지금 강남은 이제 영동의 흔적을 털어내고 두터운 휘장을 둘러찬 복부인이 되었다. 학군이 좋아지고 아파트값이 오르면서 내가 살던 개포동을 비롯한 강남구 일대는 풀메이크업에 비싼 가방도 든 모양새다. 코스모스가 핀 들판이 꽤 많았던 동네 어귀도 죄다 아파트 단지로 채워졌다. 이제 더는 내 삶과 무관해진 장소다. 기억 속엔 여태 소박하고 허름한 그대로인데 어찌나 낯선지 마치 고향이 사라진 기분이다. 사실 고향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뜻하는데, 다 자라기 전에 그 동네를 떴으니 엄연한 의미로는 그냥 강남 태생이다.

 얼마  볼일이 있어 내가 살던 개포동에 가봤는데,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가 근린주구의 형태를 갖추면서 블록들이 큼지막해졌더라. 대로가 늘어나고 모퉁이는 드물어졌다. 여긴 내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라는 위화감만 잔뜩 느끼다가 돌아왔다. 특히 내가 살던 개포상록9단지 공무원 임대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지워져 버렸다. 종호랑 뛰고 놀던 공간을 구경할  없다는  슬펐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 주려는 듯  영화 <벌새> 보니 내가 살던 동네가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벌새> 대치동을 배경으로  영화지만, 실제 촬영지는 개포동 공무원 아파트 단지다. 어릴  드나들던 상가건물과 작은 공원까지 은희의 걸음마다  흔적을 찾아낼  있었다. 영화가 마치  생일을 축하라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없는 실향민의 마음이라는  이런 걸까. 청승맞게 <벌새>   살짝 울기도 했는데, 은희가 나무 아래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농도 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또르르. 사라진 공간에 대한 애틋함  방울, 이렇게 좋은 영화에 내가 태어난 곳이 담겼다는 안도가  방울.


 올해 생일은 낯선 도시에서 맞았다. 아버지께는 카카오톡으로만 인사를 드렸다. 일이 잘되고 있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다고. 곧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찾아뵙겠다며. 어릴 적 내 생일엔 왕왕 아버지와 영화관에 갔다. 무슨 영화였는지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끝나고 집 근처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먹곤 했다. 걸쭉한 흰 수프와 옥수수, 브로콜리가 놓인 예스러운 곳이었다. 포크와 나이프 손잡이가 목재로 된 감촉이 기억난다. 다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아파트 단지를 아버지와 둘이 걷는데 집까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시합을 벌인 기억도 난다. 아버지는 원기 왕성한 순간을 약간 지났고 난 이제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마치 젊음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처럼 이겨보려고 기를 쓰며 달렸다. 내 시야가 점점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렴풋하게나마 이게 삶의 순환이라는 걸 느꼈다.

 커서 아버지와 비슷하게  것이라 생각했지만 커가면서 좌표평면을 달리 찍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고개를  돌리며 뻗대고 싶은 욕구가 있다. 가끔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착각해서 낭패를 보지만, 구체적인 알맹이가 없는 막연한 바람은 아니다. 사춘기적인 공상처럼 딴청을 부리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쓰는 삶을 바란다. 공연한 관습을 답습하는 일엔 손사래를 치고, 제멋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도덕·윤리에 어긋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그래도 된다고 믿고 산다. 가령 생일을 맞아 전화를 걸어 축하해주신  오래전 상관은 혼자 객지에서 사는  걱정해줬는데, 대뜸 요즘 무슨 '재미' 사냐고 물으셨다.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이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나는 선뜻  읽고 영화 보고 시간이  때마다  쓰면서 퇴근 후에는 3 운동에 매진하느라 정신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험상 그가 물은  단순히 '재미' 아니었다.  가족을 만들지 않고,  술도 먹지 않으며,  혼자서만 운동을 하고,  남들이 의례 하는 자기 발전의 덕목을 쌓지 않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던 거다.  마디로   혼자서 그러고 사니, 정도의 질문이었다. 그의 말투에서 번지는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답이 나에겐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웃음을 터뜨릴만한 농담은   알기에 웃어넘겼다.

 속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는 결혼 생각 없어요. 저는 주식  해요. 저는 주택청약  해요. 인간관계엔 눈곱만큼도 신경  써요.   생각도 없어요. 사고 싶은 것도 그냥 사버려요. 스타벅스에 매달 수십만 원씩 상납해요. 저는 그냥 글이나 쓸게요. 실컷 시간을 낭비할게요. 적고 보니  유치하다. 생애주기마다 나오는 납부고지서를 찢어버리고 한갓진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이런 생각은 효도랑도 거리가 멀어서 부모님들도 걱정하신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고 있다. 삶의 좌표평면에서 엉뚱한 지점에 점을 찍고 싶다. 그래프상으로 예측이   되는 곡선을 그리고 싶다. 그래서 대체  믿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없다. 습관화된 패턴에서 살짝 벗어나 고유한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는 중이다. 우선  해답은  사무실과 친구들의 푸념 속에는 없다. 그럼 어디에 있나. 이번 생일에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더라. 사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매일 쓰는 중이다.

 과거엔 나만   있는 이야기가 여럿 있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 갤러리에서 나눈 농밀한 대화라든지, 둘이서만 누워있는 의 주홍색 불빛, 테이블을 앞에 두고 전에는  적이 없는 대화를 나누던 ,  오는 운동장을 맨발로 걷는 시간, 이태원 뒷골목을 걸어 올라가며 느꼈던 시야처럼 두드러진 감각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어떤 시절을 명명하고 쓰는 거다. 하지만  과거를  털어먹고 나니 실탄이 사라졌다. 이제 내 중년은 어떤 기억을 남기게 될까.


 김찬호 씨의 <생애의 발견> 한국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고민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세대론을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기술한 책이다.  책에서 중년의 ,  마흔이 넘은 성인에 대한 분석은  비판적이다. 개인적인  없이 오직 돈과 가족으로 귀결되는 편협함. 도의적인 모럴이 없으니 어떠한 철학도 내세우지 못하고 그냥 남들처럼 우르르 몰려가는 집단주의. 서울의 32 아파트와 삼성전자 주식에 모아둔 돈을 탕진하는 무모함. 자식새끼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별다른 보답을 기대할  없는 실망감.  흔한 중산층의 소멸, 세속적인 도시의 군상. 저자 김찬호는 우리 중년의 삶은 다른 세대에 비해 유달리 척박하다고 지적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 직장인은 현실 논리에 배겨날  없다. 남다른 삶의 본보기가 없으니 전부  비슷하게 살고 있다. 내가 믿고 사는 바에 특별할  없다 보니 쉽게 권태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포드사의 생산공정처럼 엇비슷한 기성품을 양산한다. 소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욜로라든지 플렉스 문화가 자리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넓은 집과 좋은 차가 어려워지니 번지르르한 소비재를 프로필에 띄워놓는 식이다. 속세를 등지지 않는 이상 나도  터무니없는 이상에서 벗어날  없다는   알고 있다. 벗어나기는커녕 놓인 덫마다 걸려들어 시간을 탕진할 때가 많다. 무슨 방법이 없으니까 자꾸만 삐딱하게 염세적으로 구는 것도  때문이다. 서른여섯 해가 지나가니 이제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지가 지상 최대의 고민이 되었다.


 생일을 맞아 쓴 글 치고는 좀 삐딱하다. 이건 문제가 좀 있네. 흥분하지 말고 다시 아파트 단지에서 놀던 때를 떠올려보자. 아 레드선. 기억이 아련해지면서 다시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해 질 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터에서 놀던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부름. 생일이라고 미역국 대신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여주시던 기억. 어떻게 하면 유년기에 가졌던 벅찬 삶에 대한 기대를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은희의 고민은 내게 전이된다. 은희가 벌새면 난 땡벌이다.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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