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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쟝 Apr 05. 2019

회사 정하기

저는 어디서 일하게 되는 거죠?

 이제는 벌써 일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어간다. 어느 회사에서 일할지 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생각보다 의미 있었던 과정이었다. 시애틀에서 한 해외인턴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시각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긴 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게 아닌, 할 수는 있지만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몰랐기도 했고 디자인에서의 어느 구체적인 분야를 하고 싶은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회사를 정한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다루기로 하였다.



프로그램 소개

 우선 내 프로그램은 미주리 대학에서 진행하는 I-LEAP라는 프로그램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주 2일은 Professional Communication / Business Skills and Professionalism이라는 수업을 듣는다. Communication 수업은 보통 20-30분짜리 podcast를 듣고 관련 내용에 관해서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는 수업이다.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논의하기 때문에 3시간짜리지만 굉장히 모두가 재밌어하는 수업이다. 처음에 영어 수준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영어를 배우러 온 것이니 못해도 우선 말하는 것을 해보면 어느새 어떻게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Business Skills 수업은 팀별로 나누어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발표하는 수업이다. 현재 팀으로 나누어 비즈니스 모델을 정하는 정도 진행하고 있고 5월 말에 기업가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아직 어떻게 진행이 될지 기대가 된다. 우리 팀은 organic에 중점을 주어서 구상 중인데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나머지 주 3일은 Internship을 진행한다. 사실 주 3일만 일을 하는 것은 첫째 날만 출근하면 둘째, 셋째 날은 금방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한 주가 훅훅 지나간다. 대부분 9 to 4 정도까지 일을 하는데 다들 한두 시간씩 차이가 있긴 하다. 나는 운이 좋아 11 to 5로 늦게 출근해도 되는 무적권이 있다. 5시까지 근무지만 사실 나는 거의 개인 프로젝트 진행에 가까워서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할게 많지 않으면 4시 반이나 4시에 퇴근해도 상관없다. (3시 반에 퇴근해본 적도 있긴 한데 이날은 정말 할 게 없었다...) 출근해서 우선 디자인 관련 칼럼만 두어 시간을 읽고 시작하기 때문에.. 무급이기 때문에 월급 닌자가 아니다 하하하 (학교에서 학점으로 대신 받는다. 약 12-15학점)


 주말은 보통 Free Day나 Field Trip을 간다. 대부분은 자유로운 주말이지만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다 같이 놀러 가거나 쇼핑몰을 가거나 볼링을 치러가거나..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하지만 난 집순이라 잘 안 나간다...

아름다운 미주리 대학


세 가지 선택지

 처음에 나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1. 커스텀 티셔츠 디자인 옷가게

2. 학교 게이밍 연구소

3. PH.D 학생과 리서치 프로젝트


 1은 다운타운에 있는 옷가게로, 커스텀 디자인 티셔츠를 주로 다루는 옷가게였다. 재작년에 이 프로그램을 했던 아는 언니가 이 가게에서 일했는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단지 이분은 실내 디자인과였는데 그 직무에 맞는 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가게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재밌어 보이지만 나 역시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2는 미주리 대학 안에 있는 게이밍 연구소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인턴쉽을 정할 때 아직 이 연구소에 대한 많은 정보가 없어서 걱정했었다. 산업디자인이라 3D 모델링 등을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내가 원하는 직무가 아니었다. 

 3은 미주리 대학 박사과정인 학생과 같이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가장 관심도가 높고 내가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부분이라 적극 찬성했지만 주 1회 혹은 그보다 더 적게 진행할 수 있기에 학교 측에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미국 workplace atmosphere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나.. 맞는 말이긴 한데..



인턴 확정

 결국엔 최종적으로 학교에 게이밍 연구소를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PH.D학생과 같이 리서치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다. 게이밍 연구소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이때는 감도 안 잡히고  '게임'이라는 단어 때문에 게임 제작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게임 제작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이미 사전에 파이썬과 유니티를 할 줄 아는지에 대해 물어봤을 땐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회사를 정하면서 굉장히 강하게 주장했던 것은 "단순 시각디자인 작업만 하는 곳은 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다행히 내 담당자는 내가 visual측면보다 research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관련 회사들을 알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한 번에 인턴쉽을 두 가지나 하게 되었지만 나와 내 담당자는 오히려 이게 나중에 내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이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솔직히 게이밍 연구소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이곳에서 정말 배우고 싶었던 다른 것을 배우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ㅎㅎ. 



PH.D 학생과의 미

 우선 만나자마자 첫 질문이 "What prototyping tool do you usually use?"였다. 이런 주제의 내용을 한국어로는 가끔 이야기하지만 영어로 이야기하려니 현기증이 막 나면서 어질어질했다. Axure를 주로 사용하게 될 것인데 내 마지막 Axure은.. 2013년도에 사용한 게 마지막이었다. 덕분에 엄청난 양의 튜토리얼 영상을 보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모르는 건 부딪혀봐야지. 미국 와서 느낀 게 있다면 언어가 어려우면 우선 말해보는 거다. 영영사전을 읽는 것처럼 말할 때 기억 안 나는 단어가 있으면 풀어서 설명하면 된다. 이처럼 모르는 프로그램이라도 어차피 배워야 할 것이었다면 몇 번이고 시도해보면 어떻게든 익혀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픽적인 부분도 좋지만 둘 다 진행할 분야는 user research에 주로 포커싱이 될 것이다. UI와 UX의 차이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이지 항상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뒤늦게 생각나는 거 같다. 이 때는 영어로 정리가 안되어서 네네치킨처럼 yes, okay만 해댔던 기억이 난다.


 이때 가장 영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화 내용 다 이해하고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거 같은데 내가 얼마나 관심이 깊은지, 기대되는 부분이 어딘지, 이거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떤지를 표현하는 게 참 어려웠다. 단어의 한계도 있었지만 생각의 정리가 안 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일상 언어들이 아닌 전공 관련  영단어들을 한국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으니까 더욱 어려웠던 거 같다. 미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나 전화 인터뷰하셨다는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면 이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연구소 첫 출근

School of Information Science & Learning Technologies (SISLT)의 Adriot Studios에서 일하게 되었다. 

연구소 출근 10초 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이고 웹사이트에 있는 스크린샷보다는 훨씬 더 개선되었다. 유니티로 제작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게임이 제작되는지 알기 위해 Roll a Ball이라는 튜토리얼을 따라 했다. 다음으로는 현재 제작하고 있는 게임 MHS을 테스트했는데 (현재 계속 디벨롭 중이라 배포되고 있진 않다.) 이 게임으로 이제 내 전공에 어떻게 맞게 연결시킬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좀 가졌다. 여기서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단점을 말하자면 그만큼 내가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흘러 보내는 시간들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처음엔 연구소 사람들에게 날 소개하는 것도 벅찼다. 영어는 정말 어렵다. Undergraduated가 뭔지도 몰랐고 "How are you?"로 시작하는 일상적인 small talk도 버거웠다. 내 또래 학교의 미국 친구들과는 잘 이야기하는데 '상사, 보스, 슈퍼바이저'라고 내가 느끼니까 더욱 말하기가 힘든 거 같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고 날 신경 써주는 게 느껴지지만 두려움은 내가 여기서 극복해야 할 문제다.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인사도 가볍게 하고 종종 다 같이 스타벅스 가면서 사소한 이야기도 하지만 업무 보고할 때는 언제나 머리가 아프다.. 할 말을 속으로 10번씩은 연습하고 가야 한다ㅠㅠ...




 학사 졸업반인 내가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거 같은 것들을 여기서 많이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휴학을 하지 않고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쯤이면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거고, 무한하게 반복하는 제품 아이디어와 스케치, 모델링은 하고 있었을 거다. 

 제품 자체를 디자인하는데 중점을 두냐 or 제품이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냐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만약 지금 여기서 사용자 경험 평가에 대해 더 공부하지 않다면 나는 아마도 겉으로만 아름다운 제품을 뽑아내기 위해서 밤새도록 야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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