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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Nov 10. 2023

여름이 끝나간다, 마참내.

*마참내는 오타가 아니다.

*이것은 8월 31일에 써놓고 저장해 놓은 글


더위에 약한, 추위에는 더 약한 내가, 감수성이 높아버리면?

23년 한국여름 = 죽음


오늘 아주 오랜만에 뽀송하게 일어났다. 늘 찐득하게 일어나 더워진 자리를 피해 옆으로 뒹굴 뒹굴 하며 깨었는데, 오늘은 매우 상쾌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낀 쾌적한 아침이었다.


나에 대해 대표적인 특징을 몇 가지 뽑자면 하나는 ‘추위에 약하다.’ 이고 다른 하나는 ‘신 것을 매우 못먹는다.’이다.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나열한 이유는 그러니까 나는 위의 두 가지 말고 추가적으로 내가 더위에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 그 생각이 바뀌었다.


확실히 남들보다 더위를 덜 탄다. 남들이 너무 덥다고 에어컨을 찾거나 선풍기를 찾아도 나는 참을만 하다며 버티고, 에어컨을 틀어도 10분만에 추위를 느끼는 탓에 길게 틀어놓지도 못한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에어컨을 트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안그래도 바깥이 더운데 에어컨을 틀면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 인위적으로 찬 바람을 만들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뭐 그런... 환경을 생각하는... 오지랖? 나 스스로도 이거 하나 튼다고 해서 아주 큰 해악을 끼치진 않을거야,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안된다. 남이 틀어놓는 데에는 시원하다고 좋다고 하면서 내가 틀어놓는 것에는 아주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한 여름에도 에어컨을 멀리하고 부채나 선풍기로 연명하거나 에어컨을 틀더라도 길어봤자 30분, 이렇게 살아왔건만. 이번만은 달랐다. 역대급 폭염이라고 하나 언제 어느 여름에는 안 더웠나 싶었다. 열대야는 내가 여렸을 때부터 있었고, 30도 이상 넘어가는거야 여름이니까. 그런데, 내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여름의 초입 그리고 한참 더워질 시기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병원은 24시간 에어컨이 돌아가고 시원하다. 바깥이 얼마나 더운지 모른채 올 여름을 맞이했고, 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에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간 집은, 내가 11년만에 여름을 맞이하는 방. 11년동안 한 번도 틀지 않아 고장나있던 에어컨을 다행히 미리 고치긴 했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사람이고… 구조상 내 방은 매우 몹시 더웠다. 분명 바깥 바람은 조금 시원한데, 내 방은 여전히 덥고 아니 바닥이 따뜻해!!! 누가 보일러 틀었는가? 의심이 가는 내 방…….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는 더위를 덜 느낄뿐 더위 자체에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내 무기력과 게으름의 원인은 이 더위가 틀림없다고.


내가 해야할 일을 잘 못하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아주 특별할 일은 없어서 왜그럴까 계속 고민이었는데, 어느 날은 괜찮고 어느 날은 안 괜찮고의 차이가 더위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바깥의 온도와 상관없이 더위에 대처하는 내 자세에 따라 다르다는 것. 마음먹고 더위를 물리치려 에어컨을 틀거나 더위를 피하거나 하면 또 괜찮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누워있다고 해서 안 더운 것은 아니지만, 움직이는 게 더 힘드니까. 거의 아파서 누워있는 수준으로 누워있었다. 어쩌면 아픈 게 맞았다.


나는 추위를 잘 타고 추위에 약한 사람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약간의 감기를 앓고, 기상이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여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겨울보다는 싫지 않았는데 이번은 너무했다. 이건 너무했다. 세월이 하수상하여 과연 내가 고수하고 있는 이 감수성이, 지구에게 미안하고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이 고지식한 행동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조를 내뱉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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