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Sep 04. 2019

나는 바다에서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친구 결혼식으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옛 친구를 만나면 나는 옛날의 내가 됩니다. 그래서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바다입니다. 나는 정장 차림입니다. 해가 제법 뜨겁습니다. 웃옷을 벗어 왼쪽 팔에 두릅니다. 양쪽 소매를 접어 올립니다. 구두는 모래에 푹푹 파이는 중입니다. 바다와 나는 조화롭지 않고 어색한 느낌입니다.


나는 바다에 앉아 파도와 사람들과 갈매기를 구경합니다. 여유로운 풍경입니다. 바람의 부드러운 압력과 모래의 입자와 푸른빛이 느껴집니다. 나는 거기서 따뜻한 숨결과 검은 머리칼 차가운 손발을 떠올립니다. 나는 당신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엉성할까요.' 언젠가 당신은 말했습니다. 아마도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왜 우리만은 작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묻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그런 부족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모든 일에 무신경한 편입니다. 고통을 잊고 싶어서 감각을 차단했더니 모든 면에서 무감각해졌습니다. 나는 간지럼도 잘 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내가 당신을 만났고 녹슬었던 감각은 이제야 조금씩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지난날의 나의 실수는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말입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물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싶어서 매일 아침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은 우리의 관계가 가까운 친구이기를 바랍니다. 가끔은 어머니 같은 너그러움을 주고, 가끔은 아버지 같은 엄격한 사랑으로 내게 가르쳐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것이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라는 문장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만큼은, 나는 기꺼이 얽매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바다입니다. 당신을 바다에서 떠올렸습니다.

당신은 무얼 하고 있나요.






한 주간 제가 쓰고 읽은 글을 메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저의 메일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전 09화 어느 지중해 섬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