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Mar 16. 2023

타인의 역할


"우리의 일생에서 타인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나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당도할 수 없었다. 거부당하고 미움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때로는 사랑받고 구원받으며 칭찬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 그들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아내와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는데 '나랑 만난 덕분에 당신이 지금처럼 잘 살고 있는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다. 그때마다 나는 '저를 만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신대방역 근처 어느 반지하 자취방에서 술에 취한 채 세상을 탓하며 나 자신을 혐오하며 구저분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를 만난 뒤로 시작한 일들이 많다. 오래도록 미루어왔던 글을 썼다. 아내는 내가 쓴 글을 좋아했다. 그 덕분에 용기를 얻고 인터넷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뉴스레터도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내친김에 팟캐스트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시작한 것들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꾸준한 작업과 작은 성공들이 내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즈음에 책 한 권을 냈다.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고 돌연 출간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막상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쓰고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하고 인쇄를 맡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내게 언제쯤 책이 나오는지 물었다. 그러면 나는 하는 수 없이 포기하기를 포기하고 작업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렇게 멈추었다가 다시 달리고, 조금 걸었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게 되었다. 물론 모두 내 손으로 해낸 일이지만 전적으로 아내의 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늘 혼자이고 싶었던, 어느 누구와도 함께 살아가지 않겠노라 말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그때 당시의 나는 단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도망쳤을 뿐이다. 그걸 애써 멋져 보이도록, 어설프게 포장했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둘러 세운 단단한 성벽을 허물고 타인이 내민 부드러운 손길을 마주 잡았을 때 삶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픔이 두려워 놓쳐버린 기쁨이 많다. 망망대해 속에서 튜브에 의지한 채 떠 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호기심도, 열정도, 절망도, 분노도, 그 모든 걸 초월하는 사랑도 생겨난다. 비록 우리가 속한 바다는 끝이 없고 온 힘을 다해 헤엄치는 일이 기어코 소용없어진다 해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모든 순간이 의미를 갖게 된다.




친애하는 작가님들과 뭉쳤습니다. 책 속의 문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5인5색 개성 넘치는 브런치작가가 연재하는 공동매거진 <친애하는 문장들>, 구독 눌러주시고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엔 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