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과의 전쟁
교실에 도착해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혜림이가 내 팔을 잡고 한참 동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평소 내성적이던 이 아이가 이러는 건 분명 할 말이 있다는 증거다. ‘왜?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했더니 ‘선생님 오늘은 아이라인 꼬리를 예쁘게 빼셨네요.’라고 말한다.
보통 초등학생 5학년 말 정도가 되면 입술에 빨갛게 틴트를 바르는 여자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6학년이 되면 더 많은 아이들이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대화 주제에서 화장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조용한 혜림이도 나에게 이것저것 먼저 말할 때가 있는데 바로 주제가 화장일 때다. 자기는 나중에 뷰티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면서 집에서 화장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브러시로 블러셔를 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하고, 눈에 아이섀도를 바를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유튜브에서 습득한 나름의 메이크업 기술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어쩐지 오늘따라 얼굴이 불그죽죽한 고구마 같더라니 집에서 블러셔를 바르고 왔나? 그야말로 화장을 글로 배운 솜씨다.
화장을 하는 아이가 점점 늘어난다는 건 학교에서는 더 이상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때 아이들의 화장을 주제로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학교 교칙에 ‘화장 금지에 관한 규정’이 있는지를 살펴본 일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학생생활규정에 그러한 항목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화장 금지 규정이 없으니 학년 규칙에라도 새로 만들어 화장을 금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 날 나는 집에 돌아가서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가 ‘왜 화장을 하면 안 되나요?’라고 물을 때 꺼내어 놓을 수 있는 변명들이 너무 궁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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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화장의 연대기를 묻는다면 나 역시 초등학생 6학년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학교 문구점에 가면 500원짜리 투명 립글로스를 팔았다. 바르면 입술이 반짝반짝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500원짜리 립글로스를 입술에 바르면서 친구들과 놀았다. 그게 돼지기름이라느니 지렁이 기름이라느니 하는 뜬소문도 돌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그런 ‘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중학생 때는 엄마 몰래 베이비파우더를 얼굴에 발랐다. 베이비파우더를 얼굴에 팡팡 치면서 ‘남들 엉덩이에 바르는 걸 얼굴에 바르고 있다니’하는 회의감도 잠깐 들었지만 굉장히 만족했다. 애들이 얼굴이 하얘 보인다고도 했고 아기 분 냄새가 난다고도 했으니까. (진짜 아기 분을 발랐으니까 당연하지.) 그러나 이 화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친 엄마한테 제대로 걸려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
고등학생 때는 더 많은 것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서클 렌즈를 껴보고 색이 있는 약국용 립밤을 바르게 되었으며 고데기로 머리도 만졌다. 당시 생활부장으로 계신 선생님이 무척 엄하셨는데 1박 2일로 수련활동이라도 갈라치면 의상부터 화장까지 꼼꼼하게 단속하셨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한 친구는 색이 있는 립밤을 입술에 발랐다는 이유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얼굴이 붙잡혀 수건으로 박박 문질러졌다. 지금도 생각한다. 친구는 얼마나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을까. 선생님 얼굴에 발린 립스틱과 진한 눈썹을 보면서, 이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른은 되고 학생은 안 돼?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예전보다 화장을 줄여가고 있다. 한 번은 필요 없는 화장품을 대거 정리하려고 서랍을 열었다가 20대에 사 모은 화장품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화장에 대한 집착에서 많이 벗어난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화장기 없는 내 모습을 보며 ‘예전에는 화려했는데 지금 모습은 좀 실망이다.’라고 말한 분도 있고 젊은데 좀 화사하게 꾸미고 다니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입술이 벅벅 문질러진 내 친구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화장을 한다고 나무라더니 커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나무라고 싶은 건 화장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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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한정된다. 첫째, 어렸을 때부터 화장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그러나 인체에 100퍼센트 무해한 립스틱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을 바르도록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둘째, 외모에 지나친 관심이 쏠리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모든 청소년들이 반드시 공부를 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이다. 셋째, 화장을 하는 아이들은 탈선하기 쉬우니까. 화장하는 것이 본드나 마약을 하는 범법 행위도 아니고, 화장이 탈선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면 당장 태권도나 복싱 학원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무술을 배운 아이들은 폭력을 휘두르기 쉬울 테니까. 넷째, 아이들이 일명 ‘술집 여자’처럼 화장하는 게 싫으니까. 네. 왕년에 술집 좀 다니셨군요? 화장한 청소년의 얼굴을 보고 ‘술집 여자’를 떠올리다니 한두 번 다녀본 솜씨도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이런 사고가 가능한 건지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본인이 가진 협소한 시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낙인찍고 다녔을 생각을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화장을 반대하는 근거가 이렇게 논리적으로 빈약한데 언제까지나 덮어놓고 화장을 금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화장은 두발의 자유화와 같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두기에는 무엇인가 여전히 찝찝하다. 그 알 수 없는 찝찝함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있다.
유튜브에서 ‘초딩 메이크업’이라고만 검색해도 수십 개의 콘텐츠가 나오고 TV에는 사과 한 알로 하루를 버티는 연예인을 자기 관리의 신이라며 찬양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농담처럼 ‘돈 많이 벌어서 성형시켜줄게.’라는 말을 하고 기형적으로 마른 아이돌이 방송에 나와 노래하고 춤춘다. 여자 연예인들은 조금만 살이 쪄도 온갖 부위별로 품평을 당하며 비인간적으로 난도질된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 온 아이들인데 건강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교과서도 예외는 아니다. 'What does she look like?'라는 표현을 가르치면서 'She is beautiful. Isn't she?'라는 문장으로 처음 본 여자의 외모를 평가한다. ‘beautiful'을 가르치는 단어 카드에는 구두를 신은 긴 머리의 여성이 치마를 입고 뽐내며 걷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는 두 눈이 하트로 변한 남자와 예쁜 여성을 질투하는 시선으로 째려보는 다른 여성의 그림이 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외모지상주의가 깊숙하게 들어와 있으니 숨 쉬듯 상대방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그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나를 갉아먹는다. 사실 아이들에게 화장을 금지시키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외모지상주의 시스템을 부수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기에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 대신 아이들의 화장을 금지시키는 일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매우 일시적인 효과를 보이거나 반발심만 낳을 뿐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화장을 그만 두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들 입술에 발린 립스틱을 벅벅 문질러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건강한 미의식을 길러주는 일이다.
입술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온 아이들의 어색한 얼굴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로 살기가 참 팍팍하다는 생각이 든다. BBC가 전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남녀 간 소득 불평등이 높은 국가일수록 여성들이 미용과 패션에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언제까지 나의 몸과 나의 얼굴은 대상화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예뻐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 대신 ‘외모지상주의에 맞서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가치 있고 소중하며 아름답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루빨리 화장을 둘러싼 이 논쟁이 고루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오기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