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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Jul 12. 2021

여기서 만큼은,,,

독서모임 10년 했으니 책 좀 쓰라고 해서 쓰는 이야기 #4

동생들과 시작한 독서모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매 주 만나는 일정이었지만 다들 불평하나 하지 않고 월요일의 이른 아침을 함께 맞이했다. 3월에 시작한 모임은 어느 덧 학기의 마지막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4개월 가까이 모임을 지속한 것이다. 함께 읽은 책도 10권이 넘었고, 서로가 독서모임에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학과 동기, 선후배들 사이에서 우리 모임에 대해서 수군수군 거리는 모습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에 독서모임을 하는 이상한 애들이 있다며,,,


한 학년에 40명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과였고, 수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상 학과 외 생활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학과 동아리의 유대관계가 높았고, 회원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세력다툼(?)도 없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학과 내에 독서모임이라는 소모임이 하나 생기니 신경이 쓰였나보다. 우리는 새로 생긴 학과 동아리가 아니라, 그냥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이는 작은 모임이라 생각했지만, 작년까지 학과회장이었던 내가 한다는 것 때문인지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7시'라는 어느 동아리에도 참여에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대에 운영이 되는 모임이다 보니 별다른 말이 오고가진 않았다. 우리 역시 학과에 책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고, 딱히 신규회원 모집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별다른 홍보나 신입회원 모집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매 주 월요일 아침을 나름 알차게 보내며 활기찬 모습으로 등교를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는지, 조금씩 참여에 대한 문의를 해오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처음엔 그냥 재미삼아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름 진지하게 요청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반응과 분위기에 모임을 같이 꾸려가던 동생들도 괜히 신이 났다. 신규회원 모집에 대해서 함께 논의를 한 뒤, 4명 보다는 6명이, 6명 보다는 8명이 함께 하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니 2학기 부터는 희망자에 한해서 인원 충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3~4명 정도 더 들어와서 8명 정도로 모임을 꾸리면 더욱 재미있어 질 것 같다며 부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학과 홈페이지에 독서모임 인원을 모집한다고 안내를 했더니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10명 이상의 친구들이 참여를 희망했다. 월요일 아침 7시를 얕잡아 보는 우리 같은 또라이가 더 있었던 것이다. 굳이 인원 제한을 둘 필요도 없었고, 그룹을 2개로 나눠서 진행을 하면 되니 모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 중에는 1교시 수업을 밥 먹듯이 지각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학점과는 거리가 먼 친구도 있었기에 괜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단 한 번도 학과 생활을 하지 않았던 친구도 이 모임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왜 같이 책을 읽고 싶냐 물었다.


'여기서 만큼은 선배, 후배 시선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 역시 고작 한 살,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 설정이 되는 순간 벗어날 수 없는 위계질서의 무게 앞에서 무력감, 불편함을 많이 느꼈었다. 특히 매 학년 마다 학년대표를 했었기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아웃사이더'로 대학 4년을 보내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당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학과 모임이나 공지를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주면서 '최소한의 소속감'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비록 참석은 안 하지만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더러 들었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게는 필요없는 불편을 느끼게 만드는 문자였을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게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독서모임에 담아야 하는 마음가짐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 정말 필요로 했던, 우연히 학교 밖 생활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선배'의 존재를 누군가는 여기서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자, 이 만남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이끌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의 생각보다 학과에 '책'에 대한 관심과 '대화다운 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고, 의도치 않게 그들을 위한 판을 깔게 되었으니, 나름의 '책임감'이 요구되었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호기심에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짧지만 묵직했던 대답은 독서모임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고, 크진 않지만 나름 '독서모임 진행자'에서 '독서모임 운영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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