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다 동정심을 갈망한다

by 김진수 밀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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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I. 게이츠 박사는 그의 저서 <교육 심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모두 다 동정심을 갈망한다. 어린이는 자기의 상처를 무척 보여주고 싶어하며, 심지어 동정심을 많이 받고 싶은 나머지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상처를 보여주고 싶어하며 사고나 질병, 특히 외과수술 같은 것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불행에 대한 '자기 연민'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다."

- 데일 카네기 <카네기 인간관계론> 중에서

이틀 전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갔습니다. 한쪽에 서서 책을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경로석에서 고성이 오고 가고 했습니다. 한분은 40대로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분은 60대 할머니로 보이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랬습니다. 40대 아주머니 께서 노약자석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60대 할머니께서 그분을 바라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40대 아주머니께서는 자신이 왜 이자리에 앉아야 했는지 이야기를 큰 소리로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할머니! 그렇게 저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시면 어떡해요? 저도 이 자리에 앉아 있기는 싫지만 앉을 수 밖에 없는 몸뚱아리 상태라고요.
몇달전 신호등을 건너가는데 음주운전 하시던 운전자가 저를 들이받아서 제 왼쪽 다리가 아스러졌습니다. 12주동안 입원하였고, 여기에 철심이 몇개 박았는지 아세요? 다른 곳은 또 어떻고..."
"에고 아주머니! 고생 했구려... 나도 할 말은 많다만... 그래 그 운전사는 어떻게 되었는가..."
"운전사는....... 그리고 제 몸은...... 다른 곳은 ......"
서로 30분 정도 몸 아픈 곳을 이야기 하다가 내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위 문구를 읽고 있던 저였기에 이 두분의 상황과 우리 아이들, 학교 아이들, 그리고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오니들은 서로 자신이 다친 곳을 보여주기에 바쁩니다. 매일 데일밴드를 붙였다 떼었다 반복입니다. 이마에 어디를 박으면 빨개졌다 하면서 저에게 보여줍니다.
"아빠 내 이마 빨갛지?"
"어디 보자. 아니 괜찮은것 같은데."
"아니야, 빨개"
라고 하며 저에게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살짝 어디에 스치기만 해도 밴드 붙여달라기에 바쁜 오니들입니다.
하0이는 팔에 이빨 자국을 남겨 "아빠 아퍼"라며 보여주고, 빨간 싸인펜으로 몸에 색칠하고 피라고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상처를 그리기에 바쁩니다. 가끔 저에게 와서 다쳤다고 하면서 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막 조치하려고 할 때 "선생님 이거 그린 거에요"라며 하는 친구들!
2017년 학부모 재능기부로 페이스페인팅을 했는데 이때 진짜 상처처럼 나타내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한 친구들!
누가 더 진짜 상처같은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겉상처는 보이기에 치료하면 되지만 속상처는 어떤가요? 때로는 이렇게 '나 상처났소'라고 보이면 좋으련만 숨기는 친구들도 있기에 아이들이 더욱 힘겨워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시때때로 와서 작은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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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저역시 상처난 곳을 동정받기 위해 열심히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겉상처는 물론이고 속상처까지 일정한 레퍼토리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아마 속 깊은 곳에서는 불행에 대한 '자기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본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상처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처를 이야기한다고 불행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그 자체를 들어주는 것이 다 입니다. 동정심을 유발한다고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누구다 다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부정도 아닌 그저 그 자체만으로 인정이됩니다.
저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동정하기까지 합니다. 예전에는 타인의 동정을 바랬다면 지금은 타인의 동정 없이도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점이 큰 차이 입니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살아갈 힘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상처라는 친구를 안은채.... 그저 따뜻하게 감싸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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