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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Dec 14. 2020

월요일에 연차를 썼다.

하루는 사실 혼자 있기에 너무 길었다.

월요병을 없애는 방법 중 하나가

'일요일에 출근하기'라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난적이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월요병을 없애는 방법 중 최고는

<월요일 연차>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늘, 월요일 난 연차를 썼다.


연차를 썼지만 끊임없이 회사 메신저를 보고 대답을 했다.

노예근성은 단 하루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엄청난 책임감으로 업체에서 오는 전화, 공장에서 문의하는 답변도 다 달아주고, 결재를 급히 올리는

월요일 오전을 보냈다.

그래서 어떤 월요일 연차를 보냈는가?


1.AM 10 맥모닝을 먹다.

평일 연차를 쓰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전 10시 30분까지만 판매하는 '맥모닝'을 먹어보는 것이다.

베이컨 에그 맥머핀과 따뜻한 기본 원두커피 그리고 해쉬 포테이토를 주문하니 4,000원

너무 행복한 순간 아니더냐? 평일 낮에 맥모닝이라니.

2층 창가에 앉아 휑한 거리의 횡단보도를 바라보면서 앉았다. 연차에 사람을 구경하는 것은 너무 재미있다.

마치 조물주가 된 것 마냥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을 보고 있는 느낌이란.

따끈한 원두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이건 국밥 국물도 아닌 것이 시렸던 내장들을 뜨끈히 데워준다.

한입 맥머핀을 먹으니 '세상 참 살다 살다. 이 여유를 다 누려보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맥도날드, 맥모닝, 베이컨 에그 맥머핀

코로나 때문에 카페를 못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 다 모인 듯하다. 왼쪽에선 공부를 하고, 오른쪽에선 정장 입은 사람들이 모여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아마 재택 근무령을 받은 회사일 듯 싶다. (나의 미래인가?)


갑자기 오랜만에 캐나다 홈스테이 할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우린 1월까지 그 어디에도 못가. 스위스에 있는 아들네도 못가."

나도 지금 코로나 때문에 힘든 한국 상황을 설명했다. 카페를 못 가니 다들 맥도널드에 온다고 하니

"맥도널드가 유명해지겠군."

이라고 농담을 지셨다. 오랜만에 영어를 타이핑하니 내 영어 실력이 탈로 났다. 영어를 알려줬던 할머닌 나에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 특히 문법. 예전에 너 잘했던 것 알고 있어."


휴.... 맞아. 나 사실 영어를 놓은 지 너무 오래됐어. 갑자기 불타오른다! 아! 오늘은 의자를 버려야 해! 하고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받기 위해 주민센터로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쓴 의자여서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갖고 와 잘 썼지만 큰 내 몸에 잘 안 맞아 허리가 너무 아팠다. 이제 보내줄게.


2.PM 12 비즈니스 영어 공부를 하다.

홈스테이 할머니가 나에게 불을 질렀다. 비즈니스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하자 특별한 지인에게 선물 받은 <비즈니스 영어책> 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 영어 공부 다시 해보자. 음음. 오랜만에 공부하는 것 너무 재미있네? 근데 문제는

영어책들

비지니스 전문 영어 단어가 왜 이리 어려운 것이냐? 컴퓨터로 네이버 어학사전에 검색하니

어느새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 와.... 집중이 이리도 힘든 것이 었구나.

공부는 역시 손으로 쓰면서 공부해야 하지? 하면서 노트를 찾았지만 결국 도구가 없어 예전에 쓰던 노트에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하는 김에 새로운 노트로 하고 싶었지만....) 1시간 앉아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프네?

잠시 요가해야겠다.


3.PM 1:20~1:40 잠시 요가를 하다.

요가 인생 10년, 수리아 나마 스카라는 유튜브 안 보고도 할 수 있지! 20분간 아픈 등을 치료하기 위해 요가 기본 연속 동작인 '수리아나마스카라'를 했다. 역시 요가다. 몸과 마음이 다 개운하다. 근데 두시가 다가온다.

오늘 오후 2시엔 당근 마켓 거래하는 날! 거래하기로 한 사람에게 지금 나간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다. 답이 없어 불안하지만 우선 약속 장소로 향한다.


4.PM 2 경찰서 앞에서 만나기로 한 당근 마켓 거래자.

경찰서 앞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거래자. 그래, 거래하기 좋은 장소 군 하고 만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분은 오후 2시가 되어도 답이 없다. 불안함이 엄습한다. '혹시 잊은 것은 아니겠지?'

급히 채팅에 답변이 온다. "죄송해요... ㅠㅠ"


뭐지? 등골이 오싹하다. 오늘이 지금까지 제일 추운 날이라지만 정말 오싹했다.

"저 지금 그 동네에 없어요 ㅠㅠ 30분 뒤에 제가 집으로 찾아갈게요. 날이 너무 추워요."

에???? 지금 이 동네도 아니고, 우리 집 앞까지 온다고? 호의는 고맙지만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이니, 우리 집 주소를 노출하고 싶진 않았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30분 뒤 다시 보기로 했다. 30분에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도 그래서 주변 문구점에서 영어 공부에 필요한 필기구를 구매하러 갔다. 새삼 너무 오랜만인 냄새가 난다.

석유 난로 냄새와 정리안 되어 쌓인 문구들. 정겹다랄까? 내 공부에 도움이 줄 아이를 뽑아가며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별 접는 종이도 구매하자! 나는 소심하게 주인에게 여쭤봤다.

"삼성... 페이 되나요?"

(문구점이니 안될 거야 ㅠㅠ 어쩌지 난 카드가 없는데)

근데

"네~되죠."

오! 문구점도 시대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문구점을 들러도 아직 10분이 남았다. 너무 추운 걸 ㅜ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건물 뒤로 숨었다.


당근 마켓 거래자분께 메시지가 왔다. "저 도착했어요! 어디신가요?"

난 바로 만남의 장소로 뛰어가 그분에게 거래하기로 한 물건을 전달했다. 그리고 확인차

"입금은 하셨을까요?"

"네!"

그리고 거래자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우린 쿨 거래로 바로 헤어졌다. 나도 이제 당근에서 두 개 판매한 사람이다!


5.PM 3 엄마가 챙겨준 갈비찜을 먹다.

오랜만에 밥을 집에서 해 먹었다. 주말 동안 고향에 다녀와 엄마가 나를 위해 급히 만든 소갈비찜.

그리고 한 달 전 김장하여 엄마가 챙겨주신 깍두기. 그리고 두 달 전 엄마가 챙겨주신 미역국을 데웠다.

엄마는 서울에 안 계시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완성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즌1, 1화를 보면서 먹었다. 근데 집중력이 약해서 유튜브를 유랑하며 늦은 점심을 보냈다.


6. PM 4:30 요가를 하다.

나마스떼

아까 짧게 끝낸 '수리아 나마스카라'를 진행했다. 나도 유튜버처럼 찍어볼까? 하고 싱크대에 핸드폰을 올리고 머그컵으로 핸드폰을 지지하며 찍었다. 찍고 다시 보니 '와 내 등이 정말 굽었구나.'반성을 한다.

요가를 하니 너무 개운하다. 요가도 했는데, 이젠 뭘 하지?


7. PM 5:30 글을 쓰다.

반려동물들이 마을 촌장인 '원숭이'를 찾아가 고민 상담하는 이야기를 수기로 써봤었는데. 이걸 타이핑해야겠다. 하루씩 고민을 5개씩 써서 46개까지 채웠다. (5개씩인데 4개는 빠졌네???) 컴퓨터로 타이핑해야 하는데,

갑자기 words가 안된다. 또 유튜브를 유랑한다. 망했다. 컴퓨터로 하니 집중이 하나도 안된다. 에잇 저녁이나 먹어야지.


8. PM 7:30 김치전과 백화수복

중학교 때 친구가 퇴근 후 집에서 김치전을 먹는다고 하자 전이가 되어 먹고 싶어 졌다. 김치전을 부칠 때 가운데에 원형을 내주면 바삭한 부분이 안 쪽도 생겨서 맛있다고 하는데....

집에 오징어가 없어서 김치만 마구 넣은 김치전 반죽이 완성되었다. 마침 언니가 주말에 '백화수복'을 챙겨줬다. 김치전과 환상의 조합이다. 가운데 원형으로 뚫혀있어 뒤집을려고 하니 찢어질 것 같았다.

원형 접시를 전 위에 덮고 프라이팬을 반대로 쏟으니 덜 익은 반대편이 보였다. 다시 노릇이 구워주자.

드디어 완성 시식 하자! 또 유튜브를 유랑해 본다.

엇??? 갑자기 유튜브가 안된다. 오후 8시 50분쯤에 갑자기 웨 유튜브엔 원숭이가 보이는 것 아닌가?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인가 구글이 테러라도 먹은 것인가? 유튜브를 안 보니 넷플릭스를 유랑한다.

아 우린 왜 어느새 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인간이 되었던가?



9. PM 10 아날로그를 위해 핸드폰을 껐다.

친구와 가족에게 '나 핸드폰 끄고 아날로그를 즐길 거야!' 했지만 다시 1시간 만에 핸드폰을 켰다.

우리가 이렇게 사회적인 동물이에요 참...... 핸드폰을 껐을 때 노트북으로 글 좀 썼지만.... 집중은 잘 안된다.


나에게 주워진 하루를 왜 이리 혼자 보내기 힘든 것인가? 회사 가는 평소엔 '내 시간'이 없다고 툴툴거렸는데,

지금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던 것인가?

오늘 한 것은 너무 많은데 뭘 제대로한게 뭐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시간도 너무 안 갔다.


나는 왜 내 시간을 못 쓰는 것일까? 그리고 그토록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는 것일까?

유튜브가 끊겼을 땐 왜 이리 공허해졌을까?


나의 시간을 잘 쓰는 법을 젊은 시절에 익혀서 노년 시절을 잘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번 주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재택근무도 잘 보내야겠다.

사실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닌 것일 수도 있어.

쉬었지만 새로운 곳에 마구 갈 수 없어서 미칠 지경이다!

남산에 올라가서 소리지르고 싶다.


"서울아 들리니!!!!!

야~~~~~호!!!!!!!!!!!!!!!!!!!!!!!!!!!!!!"


그래, 오늘도 7분 남았고 새벽까지 합치면 아직 내 연차는 남았다.

영화 한편이나 보다 자야겠다. 출근이 기다려지는 밤이구나. (허허허....정말?)


P.S 이 글을 쓰니  갑자기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먹고 싶어졌습니다. 새벽 12시에 편의점에 갔습니다. 마스크를 잠시 빼고 하늘 냄새를 맡고 맑은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며 오렌지 주스를 마시니

그래도 오늘 연차는 잘 쓴 것 같습니다.

역시 쉬는게 더 좋긴하네요 허허

입안엔 향긋한 오렌지 향이 번졌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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