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이다. 근데 그 고민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해질 때 중간중간에
관리직으로서의 고민과 인간관계 등 고민이 있다.
대학교 때를 돌아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고민 아닌가?
대학을 졸업한지는 벌써 7년이 된 것이다. 세월 참 빠르다.
나와 같이 힘들었을 임용고시 5수를 한 룸메이트와 이번 봄 여행으로 대전 대학 캠퍼스로 가기로 했다.
큰맘 먹고 연차를 써 1박 2일로!
친구들이 물어본다.
친구: 대학 캠퍼스로 여행 가면 뭐할 거야?
나: 예전에 자주 갔던 학식에서 밥을 먹고, 후식으로 자주 공부했던 기숙사 카페, 그리고
밤이면 맥주 안주를 샀던 떡볶이 집에서 염통 꼬치를 사서 먹을 거야.
친구: 그 거 하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간다고?
그곳에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정일 수 있겠지만 과거의 나의 흔적을 다시 밟으면서
잠시 잃었던 용기와 내가 잊었던 꿈을 찾고 싶었다. 물론 다시 찾기엔 1박 2일이 너무 짧은 시간이겠지만.
자 이제 룸메이트를 만나러 대전으로 가보자.
To do list
ㅁ대학교 정문 앞에서 사진 찍기
ㅁ학식 먹기
ㅁ기숙사 카페에서 바닐라 라테 먹기 (생크림 잔뜩)
ㅁ디자인 전공실 가기
ㅁ대학교 동산에 앉아 있기
ㅁ도서관 가서 어린 친구들의 열정의 기운 받아오기
ㅁ대학로에서 자주 가던 스파게티 집 가기
ㅁ자주 먹던 염통 꼬치 사고 호텔 가기
ㅁ대학교 정문 앞에서 사진 찍기
대학교 정문에서 사진을 룸메이트와 찍고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예전엔 스스럼없이 찍어달라고 했을 텐데, 뭔가 계속 눈치를 보면서 착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신호등 3번이 지나고서야 멀리서 군인 오빠 아니 동생이 오고 있어서 재빠르게 찍어달라고
핸드폰과 필름 카메라를 쥐어주면서 "저희가 대전에 너무 오랜만에 와서 대학교 앞에서 사진 찍고 싶어서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구구절절 설명하니, 군인 오빠 아니 군인 동생분도 "저도 오랜만이긴 해요 ㅎㅎ"라고 대답했다. 오늘 휴가를 나왔나 보다. 그렇게 대학교 정문에서 사진 찍기를 완수했다. 꽤 땀이 나는 미션이었다.
ㅁ학식 먹기
나름 지름길이라고 기억해낸 길로 학식을 찾아 정문에서 올라갔다.
과거에 우리가 자주 먹던 자장면과 닭살 마요 먹겠다며 도착한 학생식당은 코로나로 책상들 사이사이 투명 아크릴이 껴져 있고, 우리가 즐겨 먹던 메뉴도 사라졌다. 심지어 놓친 게 있다.
여긴 식당이 아니고, 학생 식당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 학생 식당은 점심은 2시까지라며.....
결국 우리는 좌절했다. 이미 만났을 때부터 배가 고팠는걸...? 우린 아침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그리고 보령에서 왔는걸...? 벌써 지쳐... 우리가 30대라서가 아니야.
=> Plan B: 학생 때 자주 갔던 기숙사 밑 피자 집을 갔다.
거긴 2020년도에 대구에 회사 동료 결혼식 후 대전이 생각나 혼자 방문한 적이 있다.
대학 땐 사장님 케릭 커처를 그려서 선물한 적이 있다. 사장님은 나를 기억하셨지만 또 세월이 지났으니...
피자 주문하자마자 "저를.... 기억하시나요?"라고 아련하게 물어보면 부담을 느끼고 뭔가 더 주실까 말을 안 했다. 내가 룸메이트에게 뭐 먹을래? 물어보니 토핑이 두둑한 스테이크 피자를 요청했지만 나는 답정너였다.
"아니야. 여긴 콤비네이션이 맛있어 이것 먹자." 미안. 난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네
역시 달콤하면서 치즈가 쫀쫀하게 늘어나는 이 대학 피자. 체인점 피자와 다른 뭔가가 있다.
10분 후 그 피자집도 브레이크 타임이라 내 룸메와 한 테이블만 있었다. 아마 우리 대화가 들릴 것 같았다.
우리의 주제는 결혼과 일 이야기였다. 아휴 시간이 지났구나 이렇게. 이 피자 집에서
'교수님 과제'이야기 '꿈 이야기'였는데. 어쩔 수 없구나.
나갈 때 사장님께 "저 기억나세요?"라고 말하니 사장님도 긴가민가 했다며 반겨주셨다.
"어~! 나 그려준 학생이잖아!" 역시 그때 그림 선물하길 잘했다. 몇 년을 우려먹는구나~
사장님도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사장님의 밝은 미소는 정말 그대로였다.
나도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다.
ㅁ기숙사 카페에서 바닐라 라테 먹기 (생크림 잔뜩)
이 기숙사 카페에선 사실 전 남자 친구와의 추억이 많다. 그 친구도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데이트는 거의 카페에서 스터디 데이트였다. 나는 영어 공부를 했고, 그는 임용고시 준비를 했다. 둘 다 기숙사 생이었고,
데이트 겸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사랑과 공부 둘 다 잃지 않았던 그 모습은 그 장소에 가면 항상 놓여 있다. 나는 그곳에 가면 공부가 하고 싶어 진다. 장소와 추억의 힘인가 보다.
봄이지만 아직 쌀쌀해 나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가 아닌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먹었다.
따뜻한 것은 생크림이 없다고 한다. 차가운 우유를 먹음 설사를 하기에 오늘은 몸 좀 사렸다.
20대는 무조건 차가운 거 먹었음 이젠 따뜻한 것을 많이 찾게 됐다.
ㅁ디자인 전공실 가기
전 룸메이트에게 디자인관 (전공관)을 가고 싶다고 했고, 추억이 없는 그녀는 밖에서 벤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그때의 공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쾌쾌하고 곰팡이 냄새나는 작업실 냄새와 동기에 햇빛 냄새. 강의실들은 굳건히 닫혀 있지만 창문을 통해서 학생들이 보였다.
밝게 웃으며 장난치고 있는 모습, 물론 다들 어떤 고민을 할진 짐작이 가긴 한다. 교수님들이 내주는 끝없는 과제와 전공에 대한 미 확신.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거겠지.
내가 재학 때도 졸업생들이 나와 동기들이 하하호호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띠고 조심히 나갔을 것을 짐작해 본다.
ㅁ대학교 동산에 앉아 있기
디자인관을 내려가면 '막동'이라는 캠퍼스 동산이 있다. 왜 '막동'이냐면 그 잔디를 밟으면 애들이 마신 막걸리가 올라온다고 하여 우리끼리 '막걸리 동산 (막동)'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학기 초가 되면 삼삼 오오 모여서
학생들이 돗자리를 피고 위에서 술과 파닭을 많이 먹는다. 물론 나는 재학 때 딱 두 번만 해본 것 같다.
그땐 과제와 대외활동으로 바쁘단 핑계로 그런 여유를 누리진 못했다. 오히려 졸업 후 여유롭게 친구와 돗자리를 깔고 술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전 룸메이트와 벤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막동에 모여있는 대학생들을 봤다. 그들은 아직 새 학기라 서로를 알아가려는 어색하지만 밝은 분위기를 띄고 있다.
아마 이런 말을 했겠지 '안녕? 난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넌 어디서 왔니?' 또는 '나 00 미술학원 나왔는데 넌 어디여? 대박 나도 거긴데!!!' 하면서 서로 유대감을 뿜고 있으리라.
대학 시절 교수님이 한번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적이 있다.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과사람들 끼리 돗자리에 앉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교수님 옆자리라 엄청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 지금 너희들도 어색하긴 하겠지?
4월 1일 만우절이라 그런지 정장, 군복,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술에 취해 막동 가운데서 춤추는 남학생도 있고.
좋을 때다~ 그때가 아름다운 줄 알고만 있더라면
이 말을 계속하니 전 룸메이트는 나보고 할미라고 부른다. 그래 난 할미야.
이 할미는 서울 직장인들이 많은 회색 건물 회색 도시에서 왔어. 너네 웃는 모습만 봐도 정화되는 것 같네.
뭐가 그리도 즐거울까
ㅁ도서관 가서 어린 친구들의 열정의 기운 받아오기
화장실을 갈 겸, 그리고 추억을 느끼고자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왜 가냐 하면
난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학생이었다. 물론 거기서 데이트도 많이 했다. 공부 데이트...
방학 땐 영어 공부한다고 도서관 가고 학기 땐 책 빌리 고자 자주 갔다. 빌린 책들은 나의 고민,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 위주였다. 그때 당시엔 대학 캠퍼스를 거닐면 뭔가 허무하고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가는 막막함이
휩싸여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땐 미래의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뭐를 위해 그리도 공부를 했던 것인지. 화장실을 다녀와 자유실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봤다. 그 넓은 도서관에서 책 넘기는 소리만 났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외우고자 하는 토플 단어를 보거나, 전공 공부, 영어 공부, 자격증 공부를 하는 듯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잊혔던 공부의 열기를 이곳에서 채워간다. 젊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이리도 열심히 공부하는가. 나 또한 그랬었는데 그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아까 동산에선 젊음의 자유를 느꼈다면,
이 도서관에선 배움의 열정을 배우고 간다.
ㅁ대학로에서 자주 가던 스파게티 집 가기
점심을 거의 3시쯤에 먹고 배불러 못 갔다. 너무 아쉽긴 하다.
=> Plan B: 스티커 사진 찍기
그래, 오늘이 내가 남아있을 인생 중 제일 젊은 날이지.
인생 네 컷의 프레임은 '잔망 루피'가자! 벚꽃을 콧잔등에 묻힌 잔망 루피 프레임은 꽤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