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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Apr 04. 2019

배는 3번 타고 커피는 3천 잔 정도 탔어요.

내가 너를 너무 넘겨 봤네..



배는 3번 타고 커피는 한 3천 잔 탄 것 같아요.


    배 많이 타봤겠다는 얘기에 해군을 나온 친한 동생의 대답이다.

    가히 군 생활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센스 있는 녀석 같으니라고.


| 해군이지만 수영은 못해요.


    해군에서 군 복무했다는 것만으로 막연하게 배를 떠올리고 수영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동생은 배보다 커피를 더 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콜라병이었다. 사지가 길어 뇌의 명령이 손발에 닿는데 시간차가 있다는 불평을 하며 이제야 수영을 배우고 있다


    누군가는 해군 정도 나왔으면 수영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모르고서 하는 얘기다. 바로 속 사정이다. 우리는 그런 속사정을 너무 모른다. 그런데도 막연하게 예측하고 판단한다.

    우스갯소리로 군대에서 간이 족구장을 만들 때, 수학과 출신이 길이를 가늠하고, 미술전공이 선을 긋고, 네트는 건축공학도가 세운다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소름 돋았다. 뭔가 믿음이 가면서도, 참 합리적인 듯한 데, 또 이게 뭔가 싶었다. 한 때 축구 선수였다는 신병이 실수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축구했다면서 왜 못하냐고. 분명 족구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컴퓨터 전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병에서 전상병이 된 나만 봐도 그렇다. 도리까이(타이어 돌려 끼기)를 위해 웃통을 벗다 말고 컴퓨터 앞에 앉혀졌고 컴퓨터 전공이 손이 느리다고 타박받으며 누구나 시키면 할 수 있는 전산작업으로 군 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지루하고 편한 보직이었다. :)


| 컴퓨터공학도도 블루스크린이 두렵습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다들 컴퓨터를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모른다. 컴퓨터 조립 방법이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내가 어찌 아나. 나도 블루스크린이 뜨면 당황하고 공포스럽긴 마찬가지다. 그저 자주 다루다 보니 그런 상황을 조금 더 겪었을 뿐이다. 그래도 자주 겪으니 노하우가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하는 거라곤, 그저 몇만 원 더 들여 조립된 PC를 주문하고 메모리를 빼서 지우개로 닦거나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이 다다. 그것도 대부분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내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겨짚는다. 그거 했다고? 그러면 그거 했겠네? 그거 했으면서 왜 몰라? 윽! 가슴이 아프다. 그런 질문이 반복될수록 '정말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마저 든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소진하고 스트레스를 축적한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가 보다'를 가늠하며 불필요한 시간을 들인다. 좋게 보면 공부지만 결국 나를 위해선 무쓸모다.


해봤잖아!


    워워. 우리 모두 살아 봤지만 다들 잘 살고 있진 않은 것 같은데..

    한 번 해본 것에 대한 기대가 지나칠 때가 있다. 한 번 본건 기억해야 하고, 한 번 해본 건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 그래서 많은 말다툼 속엔 "내가 알기로는"과 "내가 해봤는데"와 "내 기억엔" 같은 나로 한정되는 불확실한 말이 꼭 들어가는 걸 테다.

 

    "해봤잖아" 보통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도움을 청할 때가 많다. 궁금증 혹은 곤란한 일을 상대에게서 해소하고 싶은 욕심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아니면 또 무슨 목적이 있을까. 경험상 저 말에는 그것도 모르냐, 알면서 왜 그러냐, 그래도 나 보단 낫지 않겠냐 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진짜 속 사정은 모르고 하는 말이 많다. 커피를 3천 잔 탄 콜라병 야매 바리스타에게, 해군 출신이니 물에 빠진 사람 도와주라고 말하는 것처럼.


| 몰라요. 모른다고요! 모를 수도 있죠!


    지레짐작해놓고선 따지고 들거나 실망한다. 속 사정을 얘기해서 들어주면 좋으련만 직장 같은 곳에선 잘 통하지도 않는다. 한 때는 이런 상황에서 마치 내가 잘못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해봤는데 내가 모르는 군', '미안하군', '반성해야겠군' 하는 자격지심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미안함에 시간을 빼앗기며 도움을 주었다. 조금 덜 부끄럽고 미안하려고. 그런데 이게 매번 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한 번은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해봤는데 모른다는 부끄러움 보단 내 일을 마쳐 살아남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근데 이게 뭔가? 편하다. 뭔가 툭! 계속 쥐고 있던 무거운 걸 바닥에 내려놓는 느낌. 뭐라도 답하려 가루만 남은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 추측하고, 본의 아니게 거짓을 고하기도 할 때보다 더 뿌듯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불확실한 정보나 거짓을 흘리진 않았구나 하고.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니, 인정해버리자 청량감마저 들었다. 그래. 모를 수도 있는 거지. 속 사정이란 게 있다고.

    상대의 반응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못 미쳐 참으로 송구스럽다. 그런데 참 편해졌다. 기대감이 없어져서일 수도, 솔직함의 커밍아웃 덕분일 수도 있겠다. 20대 때나 할 수 있었던 백 텀블링을 지금은 단호히 하지 않겠다 거절하는 느낌이랄까. 이유도 분명하고 태도도 당당해졌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물어본다. "예전에 이거 해보셨죠?" 정말 해본 것, 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 좋았을 텐데 해봤지만 잘 모르는 얘기를 한다. "해봤는데 잘 모르는 내용이네요"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게 나다. 해봤지만 잘 못할 수도 있고 잘했지만 지금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냥 그대로 답하는 게 서로에게 낫다. 앞서 얘기한 '척'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상황에선 아는 '척'보단 솔직한 '척'이 필요해지는 거다. 특히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맘이 큰 나로선. 


| 우리, 인생 다 살고 있지만 잘 모르잖아요.


    해군에서 배를 많이 탔는지 커피를 많이 탔는지를 묻진 못해도, 왜 수영을 못하느냐고 따져 묻거나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욘 없을 거다. 우리, 인생 다 살고 있지만 잘 모르지 않나.  "어떻게 살아야 돼요?" 살고 있으면서도 몰라서 묻는다. "이렇게 살아야 돼요!" 정답도 모르면서 조심스레 답도 한다. 그런 우리들이 살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것도 없는. 그러니 누가 정해준 적도 없는 그런 틀 같은 것들은 내다 버리자. 틀에 갇히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피곤해지더라. 우리, 다 던져버리자!


    이렇게 적고 강조하고 강요까지 했으니 내가 잘할 거라고 본보기 일거라고, 그런 생각도 하지 말자. 그것도 틀이다. 틀. 그... 그것도 가볍게 버려 버리자. (시선회피. 오른쪽 아래로)


"그럼, 커피는 잘 타겠네?"

아. 내가 한 또 다른 넘겨짚음에 틀에 꽉 끼어 있는 나를 보고야 말았다. 나를 같이 버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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