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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an 04. 2024

이건 비밀인데... 너도 알고 있어.

지켜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건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이야~


고개를 끄덕였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와 카페를 다녀왔다며 누나들에게 자랑했다. "이건 아빠와 나만 아는 비밀인데.."로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비밀임을 강조했다. 나는 5살 아이에게 비밀이 무엇인지부터 가르쳤어야 했다.


비밀의 속성


비밀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너와 나' 혹은 '우리만'의 비밀이 '한동안만' 존재하는 이유다. 서로 다른 '너와 나'가 무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우리만'의 범위가 넓혀지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말에 비밀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순간, 그 말은 이상하게 잘 팔려나간다. 


딱히 나무랄 일은 아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말하고 싶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별 것 아닌 사실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 몸속에서 용트림을 하며 자꾸만 튀어 나가려고 한다. 너만 알고 있으라는 말에 특별해진 것 같아 뭔가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찌뿌둥함을 느끼는 탓이다.


대부분의 비밀은 사람으로부터 생겨난다. 누군가 비밀이라고 하면 그게 무엇이든 한순간 비밀이 된다. 그 비밀을 공유한 자들은 비밀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생겨나고 '나만' 아는 사실이 '너만' 혹은 '우리만' 아는 비밀이 되는 이 순간, 문제의 소지도 생겨난다.


중대한 비밀엔 대부분 당사자나 관여자가 있다. 으레 그 비밀엔 누군가에겐 해가 되는 내용이 포함된다. 박XX의 비밀, 김XX의 비밀 혹은 이XX만이 알고 있는 비밀 등 사람이 관여하지 않고서는 비밀이 성립되기 힘들다. 그런 이유로 비밀이 지켜지지 못하면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바닥 생리가 그렇다.


지킬 비밀도 많은데 생겨나는 비밀도 너무 많다.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비밀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간혹 비밀이란 것을 알게 됐을 때, 그게 무슨 비밀인가 싶은 '당연한 사실'도 있는 이유다. 



다소 음침한 존재가 사람인지라 비밀의 생성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비밀을 지키는 수밖에 없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비밀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지켜야 할 건 비밀이 아니다.


내가 아는 순간, 최전방에서 비밀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힘에 부친다. 이럴 땐 '우리'의 범위를 넓혀 아군을 늘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너만 알고 있어.' 전술을 펼치고 싶어지는 거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많은 것이 비밀에 싸여 있다. 어린 아이를 데려가는 이유라든지, 폭동을 조장한 이유라든지, 조금씩 밝혀지는 비밀에 개운함이 아닌 불편함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밀은 엔진 칸에서 꼬리 칸으로 이어지는 평등하지 않은 환경이 의도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꼬리 칸의 지도자였던 길리엄은 엔진 칸의 지도자 윌포드의 협력자였고, 심지어 꼬리 칸과 엔진 칸을 잇는 둘만을 위한 직통 전화도 있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그들은 1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비밀을 지켰다. 이해할 듯하면서도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졌다. 비밀에 부치는 많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꼬리 칸의 주요 식량이었던 프로틴 바가 열차 내에 번식하던 바퀴벌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안 주인공이, 그것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을 다무는 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함이니까.


대부분의 비밀이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비밀을 잘 간직하는 것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달싹거리던 입이 조금은 진정된다. 


입이 근질거릴 땐,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내가 한 말로 인해 그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켜지지 못할 것임을 생각한다. 그와 나의 관계를 걱정하기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사람과 그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 그리고 관계. 그 모든 것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말미에 내가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비밀을 지키는 일은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숱한 비밀을 입안에 가둔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비밀이냐고 할지도 모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입을 다문다. 비밀의 수문장은 과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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