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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Dec 28. 2023

입이 뚫려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말.

미안함이 뻔뻔함이 되지 않도록




미안


미안함이 뻔뻔함이 되는 것은 수위의 문제일 때가 많다. 한 번의 미안함을 위해선 이전의 언행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데, 수위를 넘어선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과는 쉽지 않다. 그래서 뻔뻔해진다. 그럼에도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이고. 탁월함은 이럴 때 깨어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패배로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사과가 힘들다. 이기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식이 되는지 알 방법이 없다. 한 가지 가설은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인데, 나만의 가설이라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할 때 느꼈던 승리감을 생각하면 근거가 아예 없지는 않다. 긴 논박 끝에 이끌어 낸 승리는 더욱 통쾌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간혹 상대의 우쭐대는 모습이 보기 싫어 끝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 경험도 작은 단서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입지가 줄어드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잘난 맛으로 사는 나'로서는 살맛나지 않는 순간임이 분명하다.


사람은 인정을 바란다. 잘못을 인정하면 인정이 떠나갈 거라 생각하는지 잘못만큼은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로서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매 순간 의식하고 만다. 사과하는 순간 패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 분명히 내가 봤을 땐..."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잖아. 지금 보면서도 그래?"

"... 분명 내가.. 내가 아까.."

"... 에후... 됐어... 그만해."


잘난 내가 무너진다. 면목이 없다. 부끄럽다. 이렇게 주저앉을 순 없다. 현실을 부정한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하다."와 "그래도"를 연발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잘못한 것이리라. 누구도 봐주지 않는 혼자만의 몸부림에 오롯이 혼자만 섧다.


진즉 눈치 챘겠지만 이는 모두 타인의 시선에 무게를 둠으로써 생겨나는 반응이다. 나 혼자라면 인정 못할 것도 없는 일이 타인으로 인해 용납하지 못할 것이 된다. '아, 그건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 알았네.'하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다른 사람 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뿐이다.


우리 입은 억지의 길은 잘 닦여있는데 사과의 길은 비포장도로인 듯하다. 매끄럽게 달려나오는 "내가 아는데~"라는 말과 다르게 "미안하다"는 말은 쉽사리 나오질 못한다. 나오더라도 지나치게 더디다. 얼마나 더딘지 10년이 흘러서야 상대에게 도달하기도 한다.


"어머니, 그땐 죄송했어요.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죄송해요."

"...괘안타. 마, 다 지난 일 아이가..."


어머니와의 좋지 않았던 감정을 한참 후에야 해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안함은 커졌고 커진 미안함만큼 사과는 더 어려워졌다. 패배감과 미안함. 극한의 감정에서 사람은 입을 떼지 못한다.


어느덧 해당 사건은 언급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생겨 있었다. 묵을 대로 묵은 사과가 겨우 입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 가족을 옭아매고 있던 속박이 사라졌다. 동시에 내 속의 묵직한 무언가도 함께 사라졌다. 10년 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표현을 제대로 체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내가 그때 뭐한다꼬 그래가꼬....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미안타."

"... 어... 저... 어머니?"


정말 괜찮으신 거 맞나요? 상대를 더욱 미안하게 만드는 이런 사과는 좋지 않은 것 같다. (큼큼...)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면 사과가 조금 수월해진다. 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 가? 이것만이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핑계를 없애며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가 아니라 내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면 사과하면 된다.


누구도 아닌 내가 편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지나치거나 애써 못 본 척 연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사과하면 된다.


몇 가지 질문에 고심하다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쿨하게 사과하고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되는 거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자세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상 어려운 오만가지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평소에 적절한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 테다. 언행을 삼가며 큰 사과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제때 작은 사과를 건네는 것. "미안"이란 두 단어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도와 편안함을 얻는 것. 노오력을 경계하는 시대라도 이것만은 노오오력을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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