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쿤자랍을 넘다
많은 사람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당신은 위험이 지천으로 깔린 히말라야로 향하는지. 나는 그때마다 잠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려 눈의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그곳은 지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곳이며 물리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가 혼재하는, 인간의 발걸음을 잡는, 마치 풀리지 않는 매듭과 같은 ‘미지의 땅’이라고 말한다. 4000만 년 전 충돌한 대륙들의 봉합선을 따라 형성된 2400km의 히말라야는 이상향의 세계인 샹그릴라의 전설을 품고 있다. 히말라야의 깊은 곳에 위치한 낙원으로 묘사된 장소로 싸움도 시기도 질투도 없고 시간이 멈춘 이상향의 세계다.
<동아일보, '샹그릴라를 찾아서, 히말라야 횡단 1'에서 박정헌 대장 씀>
히스파-비아포 빙하를 걷고, 원정대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라마 레이크를 시작으로 데오사이(Deosai) 공원, 스카르도(Skardu) 훈자(Karimabad)까지 파키스탄 북부를 자전거 두 바퀴로 누볐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야생화의 고원, 데오사이 공원(해발 4300m)은 희박한 공기로 페달링이 힘들었지만,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와 들판의 연녹색 식물은 사트파라 호수(Satpara Lake)에 비친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모여 고매한 풍경은 그 고통을 치료해 주었다. 더구나 화석연료의 오염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대자연을 마주한다는 것은 차가운 공기와 광활한 이 데오사이 대지와 완전한 결합이었다.
스카르두(스카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등반이나 트레킹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가 높은 곳의 시원한 날씨에 적응해 있다가 더워진 날씨에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전거를 타며 눈과 가슴으로 빨려 들어오는 히말라야 산들과 인더스강의 모습은 고결했다.
세계 4대문명을 잉태한 인더스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어쩌면 이 강은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신이 준 선물이지 않을까?
‘신도 버린 땅’이란 카라코람 산맥의 계곡에 위치해 사람들이 천천히 늙고, 오래 산다는 파키스탄 장수마을 훈자 마을. 이곳은 '여행자들의 무덤',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저렴한 생활물가와 일상의 행복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원정대도 훈자에서 며칠 쉬며 다음 일정을 준비했는데, 이슬람 국가답지 않게 '훈자 워터', '훈자 와인'으로 불리는 멀버리(뽕) 와인을 마시며 삶을 즐긴다. 검게 익지 않고 하얗게 익는 뽕으로 만든 밀주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남들에게 자랑이기 위한 인생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 대단한 풍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곳 훈자에는 그런 특별함이 없어 특별하다. 배불뚝이 아저씨도, 학교 가던 꼬마 아이도, 마주친 여행자에게 반갑게 인사해주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지혜를 간직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평화로운 훈자에서 파키스탄을 누비며 빠진 체력을 보충한다.
훈자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복만형이 만들어준 한국요리에 힘을 얻었으니, 이제 열심히 일해야 한다.
호텔 창고에 넣어둔 장비들을 꺼내어 점검한다. 텐트며, 식기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비는 자전거다. 햇살이 내리쬐는 호텔 앞마당을 점거하고 자전거를 엎어서, 닦고, 조이고, 기름 쳤다. 파키스탄을 달리며 자전거와 원정대원은 물아일체(物我日體)가 되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넘어지면 나도 자전거도 다친다. 허리가 뻐근하고 허벅지가 아프듯이 자전거도 수시로 아프다. 자전거를 살피며 나의 정신에도, 지쳤던 근육에도 기름을 치고 닦고 조인다.
원정대가 가지고 온 짐은 1톤이 훨씬 넘었다. '무동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인간 스스로의 힘만을 쓰는 자전거와 스키, 카약,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해 대지를 달리고 물길을 가르며 바람을 타야 한다. 이 모든 활동들을 하기 위해서는 장비들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다. 샹그릴라로 향한 고행 길에 어쩌면 강한 의지력 못지않게 소중한 동료는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들이다.
세 대의 자전거와 촬영팀이 타고 갈 작은 픽업트럭에 맞게 짐을 꾸리고, 필요 없는 식량과 장비들은 네팔로 보냈다.
가지고 온 장비들은 많지만, 라이딩에 있어서 항상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 다른 아웃도어 활동처럼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자전거를 운행해야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수리공구, 드라이버 세트, 공기펌프, 고무풀 등 가지고 다녀야 할 물건들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이 장비들의 무게는 몸의 힘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장애물이 된다.
등산 중 만나는 같은 고민이다. 배낭이 무거워야만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만 쉬이 나아갈 수 있고, 충분한 물이 있어야 목마르지 않지만, 어떤 장비보다 무거운 물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장비가 있어야만 만일에 대비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가벼워야만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장비의 무게를 직면한 몸의 솔직한 고민이자 두려움이다. 출발 전 필수적인 것만 남기고, 장비를 들어내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곧 '씩'웃음이 새어 나온다. 가뿐함의 기쁨이다. 비움의 기쁨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속에 줄타기는 이어지지만,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싣고 훈자를 떠나 쿤자랍패스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레이디핑거가 '안녕'하며 작별을 고한다.
쿤자랍패스는 파키스탄 북부(Gilgit-Baltistan)과 신장(Xinjiang Autonmous Region of China)에 위치한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으로 도로포장된 세계 최고 높이(4,693m)의 국경선으로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대장님은 예전 기억과 비교하여 도로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훈자 지방은 파키스탄의 최 북쪽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경계를 두고 있는 길기트(Gilgit) 지역에 속한다. 길기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750㎞의 거리에 있다. 이 도로는 1966년에 시작하여 1978년에 개통된 도로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의 카쉬가르(카스)까지 총 연장 1284㎞의 카라코람 하이웨이이다. ‘카라코람’은 ‘가루가 되는 바위’라는 뜻으로 돌산을 부수어 도로를 만들었다. 이름만큼이나 험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도 알려져 있다. 훈자는 길키트에서 또 2시간 반 정도 더 가야 한다. 훈자 지방은 고도가 2500m에 달하며 마을 앞에는 라카포시, 디란, 뒤에는 울타르, 훈자 등 7000m 이상의 높은 설산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길이 열린지 수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거대한 산과 계곡을 낀 길은 쉽게 인간 문명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두 나라 간의 정치적, 군사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주도로 많은 부분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비포장도로와 공사 구간의 각종 장비들을 볼 수 있었다.
길이 좋아지는 만큼 중국이 파키스탄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빨라질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패스를 넘어간다면 쿤자랍 국립공원을 통과하게 되는데 운이 좋다면 몇몇 야생동물을 볼지도 모른다. 아름드리나무 사이에 동그란 눈으로 자동차가 익숙한 사슴들이 낯선 자전거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도로가에는 몇 년 전에 잡힌 야생 눈표범(Snow leopard)이 작은 우리에 갇혀 있었다. 설산을 뛰어다녀야 할 이 희귀한 동물은 관광객들의 시선에 매일 추행 당하며, 맹수의 용맹함 대신 신비함을 팔며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수 년이 지났지만 적응되지 않은 듯, 움츠린 몸과 눈빛은 히말라야로의 복귀를 절규하고 있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아타바 호수(Attabad lake)를 만난다. 건조한 흙빛의 산과 회색빛 풍경에 나타난 옥빛 호수가 아름답다. 이 호수는 산사태(2001년 1월)로 마을을 통째로 삼키고 계곡을 막으며 만들어졌다.
원정대가 이곳을 찾았을 당시에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 굴밋(굴미트)에서 배를 통해야만, 중국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터널이 개통되어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새롭게 그곳을 찾아 직접 보고 싶은 욕심과 과거의 추억이 함께 작용한 때문일까? 여행자에게 현재의 문명의 이기(利器)보다 과거의 불편은 낭만의 이름에 더 가깝다는 핑계를 슬쩍 던지며 욕심을 쫓는다.
호수의 속살 위에 살포시 뜬 배에 자전거를 옮겨 싣는다. '웅~웅~' 고막을 울리는 모터 소리가 자전거를 실은 배의 출발을 알린다. 에메랄드 빛 아름다운 풍경이 흐르고 엔진소리에 머리카락이 너울대며 춤춘다. 시간의 작용과 공간의 작용이 만나 만들어내는 풍경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를 방황하는 지속과 변화의 어느 한 지점이다. 수천 명의 삶을 삼키고도 무심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이 호수를 보며 자연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생각한다. 모터 소리가 약해지고 선박장이 보인다. 자연의 무심함과 인간의 유심함을 생각한다.
옅은 청록 빛깔의 호수에 개똥철학을 던져 버리고 자전거를 울러맨다.
파수(Pasu)에서는 사고가 있었다. 대장님이 자전거에서 넘어진 것이다.
코너를 돌아 내리막 도로를 내려오다 보니 'Welcome to Pasu'라는 글씨가 보였고, 대장님이 그것에 관한 예전 이야기를 하며 한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다 중심을 잃고 자전거와 함께 구른 것이다. 그 짧은 찰나, 바로 뒤에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전거와 대장님은 앞으로 한 바퀴를 크게 돌며 도로 옆 수로에 떨어졌다. 다행히 머리가 수로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어깨와 몸으로 먼저 떨어졌다.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내리막을 내려오는 속도와 몸무게의 충격이 머리에 바로 가해졌다면 큰일이 날 뻔 한 순간이었다. 이 원정의 핵심인 대장님의 부재는 모든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지대한 일이었다.
다행히 가슴, 팔, 허벅지 등 온몸이 도로와 바윗돌에 긁혀 살갗이 벗겨지는 상처를 입었지만, 골절상이나 다른 큰 문제는 피해 갔다. '훅 갈 뻔 했네!'라고 말하면서 싱글싱글 웃으며 인터뷰에 임하는 대장님을 보며 대원들과 촬영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파키스탄의 마지막 국경 사무소는 떠나가는 이들에겐 큰 관심이 없는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자전거를 타는 우리를 수월하게 보내주었다.
국경을 표시하는 건축물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점프샷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선에서 파키스탄과의 작별을 고한다. 원정 첫 번째 나라로서 찌는 듯한 더위로 맞이하고, 원정 물품을 찾지 못해 며칠을 고생하고, 폴리오(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고, 극지제외 최장 빙하 히스파-비아포를 걷고, 스노우레이크에서 산악스키를 타며 구르기도 한 곳이다.
가난한 여행자인 내가 언제 이곳, 파키스탄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아름다운 추억을 고이 접어 보물상자에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