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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Jan 05. 2024

24. 12월 31일의 조각은

육개장사발면

23년과 이별하기 마지막 날 밤에 경고 메세지가 왔다. 종각 인근은 혼잡하니 유의하라는 메세지였다.

서울로 상경한지 10년째이나 아직 12월의 마지막날 보신각 타종행사를 보러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보고자 하면 갈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많은 인파와 귀가하는 길이 신경쓰여 지레 포기하곤 했다.


어렸을때는 31일에 가족들과 피자나 치킨을 시켜먹으며 시상식을 보면서 새해를 맞이하곤 했다. 눈이 감기는 것을 꾹 참으며 방송국에서 나오는 카운트다운 숫자를 보고 연예인들끼리 주고받는 새해인사를 보고 그 해 대상수상자까지 보고 잠이들곤 했었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니 시상식도 이제 재미가 없다.

그렇다면 31일날 무엇을 해야 특별할까. 어떻게 보내야 의미가 있을까. 해돋이를 보러 가야하나 아님 일출을 보러 등산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 결론은 평소처럼 친구와 만나서 만화카페 가서 떡볶이를 먹으며 실컷 만화책을 보다가 햄버거가 먹고 싶어져서 맥도날드를 갔다. 마지막 식사치고도 너무나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11시 59분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1분이 지나면 새해인사를 해야지 하는 작은이벤트를 생각했다. 곧이어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가는데 앞서 걷는 어떤 아주머니의 흰 비닐봉지에 든 육개장사발면이 보였다. 동그란 은박지도 있는걸로 봐선 김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의 늦은 저녁인걸까. 손에 봉지를 쥐고 걷는 뒷모습과 너무나 익숙한 메뉴 조합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 했다. 31일 이라는 것에 잠시나마 의미부여를 했던 내가 무색해졌다. 누군가에겐 어제와 다름 없는 오늘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꼭 가족들과 케이크를 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보내거나 하지않아도 되는 그런 평범한 오늘 말이다.

그저 날이 지면 다시 아침이 오는 여느 날과 다름 없다고 생각하면 또 한없이 무뎌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한 해가 가는 것에, 한 살을 더 먹는 것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후회가 되는 것에..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여니 고양이들이 쪼르르 달려왔다. 이 아이들도 내년엔 벌써 세 살이 되는데 한 살 더 먹는 것보다 당장 츄르를 달라고 야옹야옹 거리기 바쁘다. 지하철에서 다짐한 11시 59분에 친구에게 전화하려했던 것도 잠이 드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씻고 누우니 피곤해 날이 바뀌는 줄도 몰랐고 일어나니 1월1일 아침 8시였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후에 더 나이를 먹으면 또 어떤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날의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또 한해가 가는 마지막날 이라는 것에 의미를 찾고 있을지 아님 집에서 칩거하며 하루종일 넷플릭스를 보며 육개장사발면을 먹고있을지 말이다. 뭐가 됐든 각자 31일을 보내는 방식는 참 다양하다라는걸 알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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