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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우울한 날에.....그립다. 보고 싶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는 새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바람 같은 것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면

내 몸뚱이 만큼의 바람이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뒷모습

슬픔이 슬픔을 밀어내는 그런 오후의 낮달은

바람 빠지는 풍선 같다

삶이 기울어질 때마다 이편에 서서 저편을 바라보고 있거나

혹은, 저편에 서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

빈 주머니를 찰랑거리며 걷는 시내에서의 활보도

결국엔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낯익은 골목길과 담벼락은 늘 구부러져 있고

번지수를 찾듯 더듬거리며 정확히 내 집을 올려다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람으로 채워져 있고

그대와 나 사이에도 바람으로 채워져 있고

골목과 골목은 바람으로 채워져 있다가

사람이 찾아오면 사람의 부피 만큼 골목을 빠져나가는 일이다

그대 속에 들어찬 내 바람의 질량이 빠져나가면

그대는 떠날 궁리를 하게 될 것이고

내 속에 든 당신의 바람이 빠져나가면 나 또한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

바람에 의지해서 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삶이 젖은 구름처럼 기울어졌을 때.











홀로 서기





걸을 때마다 내 안의 물들이 출렁거리기 시작했고

관절과 관절 사이, 늘어난 인대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대문 앞 우체통에서 내 이름으로 날아온 고지서를 꺼내 보며

지상을 떠날 결심을 했다

머리 위로 어지럽게 뻗어나간 통신들들은 전봇대를 타고 

산으로 도망치고 있는 중이다

무수한 말들과 변명과 거짓들이 문자나 말로 변해서

그대의 안방에까지 도착했을 때

이 지상을 떠나고 싶어진다

가슴을 열면 찬 바람이 들어오고

슬픔부터 얼굴을 밀어넣었다

그대의 말도 이젠 곧이 듣기지가 않아

언제까지 슬픔을 물고 살아가겠니

이젠 나를 떠나게 해줘

발끝으로 땅을 후벼파며 탈출구를 찾는 저녁

지하도에서 뿜어져 나온 이들은 서둘러 포장마차로 달려가고

집보다 포근한 더덕구이 냄새와 소주와 자욱한 담배 연기에 취해

돌아갈 집을 잊어버린 이들에겐 하루치의 축복만이

술잔에 고인다

술은 독잔이어서 더 고독하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면 고독이 허무러지고 만다

어차피 홀로 가는 일이란

고독한 길이다.










오래된 기억





너무 오래 되어서 버려야 할 때가 된 물건이 있다

이미 폐부와 심장을 도난당한 껍데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낡은 수신기에서는 지직거리는 소리만 나고

말을 듣지 않는 주파수 다이얼을 돌리다가

콩고 아프리카의 낯선 언어를 듣게 된다

오래된 사랑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골방에 처박혀 있다가

나중엔 분리수거를 해야 된다

떠나는 것들은 모두 기억에서부터 조금씩 사라져갈 뿐이다

낮달처럼 부우옇게 떠 있는 것들도 있다

점점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슬픔인 것들뿐이다

헤어진 날부터 슬픔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뒤로 줄곧 물렁해진 땅을 딛으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청소차를 뒤따라가 버린 수거용 봉지를 찾아내어

마지막으로 네게 묻고 싶은 날이 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니.










별의 꿈




꿈은 하나다

밤길 걷다보면 길이 하나이듯

생도 외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별은 

그리움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찾아와서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리움을 마음껏 퍼주고 가고 싶어했다

사랑을 잃어버린 이에게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같이 울었다

다시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날고 말을 하고 갔다

삶이 누추한 이에게 찾아와서

더터운 이불을 꼬옥 덮고서 자라고 하고선 돌아갔다

창문을 열면

무수한 언어들이 반짝거렸다

그 중에서 내게 필요한 언어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덥썩 별 하나를 움켜 쥐었다

짜디짠 눈물이었다

낮달이 지고 나니 비로소 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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