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말을 하면 다 그리운 것들......
물과 별과 시
낮게 흐린 하늘, 젖은 구름이 다가와 길을 묻는다
그리움이 혼자 사는 집을 물었으며
떠나간 여인이 세들어 사는 별빛이 어느 별이냐고 물었다
각진 투명한 얼음 속 같은 그대 생각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기로 약속한 사랑인 것처럼
그렇게 떠나갔다
수증기로 피어 올라 더러는 별이 되고,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
지상의 위쪽에 떠돌다가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려다보는 일이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남은 자들만 우글거리는 지하철 역 안과 지하철 속과 지상의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차들
은 해가 지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꿈을 꾸기 시작한다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도 있다
별이 되거나 바람이 되거나 구름이 된 사랑은
늘 지상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증오하거나 뼈아픈 고백을 하며
살아 간다
시가 되지 못한 별
시가 되지 못한 바람
떠돌이별이 되어 창가를 서성이다가 돌아가는 새벽은
외롭기도 하지
차마 외롭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어젯밤 벗어놓은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 하루의 시작이
후줄근하다.
봄날
눈물겹도록 그립다는 것은
봄날인 탓일 것이다
꽃잎 위에서 바스라지는 햇살도
기어코 자폭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꽃에게로 가서 자살하는 꿈을 꾼다
길 가에 서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태양을 쫓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아무런 소득이 없이도 길거리를 배회해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 말을 걸지 않아도 말을 건 것처럼
길을 알려주듯 혼자 중얼거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햇살의 환희에 젖은 채 얼마나 걸어갔을까
빈 들녘에 혼자 있게 놔두고는 해가 산을 넘어가려 할 때
갑자기 쓸쓸하기 시작했다
일몰과 함께 스러지는 일상들
사람들은 떠났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나른한 저녁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바람의 유언
도시의 골목까지 접수한 황색 바람이
녹슨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잠에서 깨어나 비를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디에선가 기다리고 있을 사랑이 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대가 내뿜는 숨을 그대로 들이마시며
달콤했던 날도 있었지
가녀린 손가락을 거머쥐며 세상의 사랑들이 다 누렇게 변하드래도
변하지 말자고 다짐했을 법도 했었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꽉 채우고 있던 바람이 떠나고 나면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도 있었지
따뜻한 감정도 바람이 이입으로 인해서 뜨거워진다는 것
우리는 왜 바람을 멀리했을까
내 안의 감정들이 쑥 빠져나가던 날
그대는 가슴 속에 든 바람을 다 빼놓고서 걸어가고 있었지
그대와 나 사이에 남겨진 바람
꽤나 쓸쓸한 표정을 짓고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지
누가 가져갔을까
그 바람 같은 것
그대와 나 사이에 버림을 받은 바람이
홀로 떠났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라는 유언장을
툭, 던져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