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지쳐 이 도시를 떠나는 새들은 바다로 날아갔네
멍에
발자국을 밟으며 걸어간다
움푹 패인 삶에는 늘 축축한 것들이 묻어 있다
때로는 개미들이 강을 건너지 못해 우회하는 일이 벌어지고
우리들의 삶도 가끔은 강 가에 서서 이편과 저편에 서서
손을 흔들고만 있지 않은가
두손을 모아 그립다 보고 싶다 외쳐보지만
삶이란 녹록치 않았으므로 결국엔 강 가를 떠나 도회지를 배회하는
수밖에 없다
땅 속을 전전하는 네모난 전철 안에서도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저마다 깊은 슬픔을 끌어안고서 눈을 감고 있는 중이다
맨인 부부가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가자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리고는
일어나 지하철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몸짓이었다
사랑도 저렇게 홀가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상처 투성이의 잡풀들만 무성하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아득한 그리움
이젠 나도 새들처럼 날고 싶다
아득하게
더 멀리.
구름에게 말을 걸다
하늘에 구름이 끼는 날은 왠지 모르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물어볼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디서 살다가 왔는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중에는 어디로 날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구름은 사람이 좋아서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꽃과 바람과 물이 좋아서 그냥 흐르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생을 멈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구름에게
그리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늘 높이 나는 구름은 웃으며 지나갔고
낮게 흐르던 구름은 안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가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그리움이 짙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리움에는 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멀리 떠나온 만큼 그리움이 깊어졌다
그대와 멀어질수록 그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격과 간격의 차이는 늘 우리를 외롭게 한다
하늘과 지상은 얼마나 먼 거리일까
그 사이에 떠 있는 별들 지상과 가까워지려고
몸을 낮춰 보지만 아득은 아득한 거리
멀리 떠난 기차는 돌아오지 않았고
오늘도 역사는 그대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밤새 꽃잎은 지고 피고 소란스러운데도 우리들은 잠만 잤다
아프면서 크는 나무
아픈 만큼 잎들은 무성해지고
아직은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넓은 그늘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배들이 출항할 적마다 섬들이 돌아눕는다
외딴 섬으로 가서 한 사나흘 하늘만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면서
대문에 적힌 번지수를 확인하면서 굳게 닫힌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바람조차 들지 못한 시간들이 창가에서 서성거렸다
그대가 떠난 뒤로 기차소리만 들려오고
섬으로 떠나는 꿈만 직살나게 꾸며
배들이 출항하는 꿈을 꾸고
낯선 골목길을 더듬으며 겨우 내가 살았을 듯한 집을 찾아내었다
캄캄한 방문을 열면
그대 그립다
기다리다가 잠이 든 역사처럼
오늘은 구부린 잠을 자야 한다
꽃들이 밤새도록 피거나 지거나 해도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햇빛 사냥
어둡고 침침한 그늘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바람과의 단절로부터
사람과의 단절로부터
봄꽃으로부터 실연을 당하면서부터
마침내 내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보이는 것들이란 전부 허황된 것이어서 눈을 닫고서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밤 안에 숨어 있을 적에도 별빛이 되어 창문을 두드리거나
안개가 되어 끈질기게 골목을 적시곤 했다
망망한 바다에서 창문을 열지 않은 것처럼
해풍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굳게 눈을 닫아버렸으므로
이번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왔다
번지수는 어떻게 알았을까
누추한 골목을 내려다보며 담장 위에 얹힌 찔레꽃도
이젠 떠나야 할 때
밤고양이들도 정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취객이 들어와 전봇대 앞에 섰을 때
어디선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낮 동안 햇살은 분주히 사랑을 키워왔으나 구름에게
그리움을 맡겨놓고 떠났고
잠깐 사이, 막차가 떠나는 시간에 구름이 모여
그리움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상에 내리는 빗물은 떠난 그리움들이 모여
일으키는 반란이었다
내 그리움에도 반란이 있는가.
치통
그리움을 악물고 살았다는 것은
떠난 그대를 기다리는 일이다
수시로 번지는 꿈의 언저리 같은 것들
수습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흘러 갔고
강가를 떠도는 바람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쌓이기 시작했다
서걱거리는 풀잎들이 지난 겨울 동안 수북하게 쌓이면서
새들이 마른 둥지를 빗기 시작했으며
꿈길마다 그대의 발자국이 어른거렸다
이젠 내 몸 안에 환하게 불을 켜는 시간
잇몸에서부터 치통이 올라 온다
그립다는 말도 못하고
이를 악물며 살았더니 치통이 올라왔다
이젠 그립다는 말도 못하겠다
구름 위를 걷는 동안 출렁거리는 내 슬픔들이
지상을 향해 뿌려졌고
누군가는 오늘도 낯선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곱창처럼 추억을 되씹으리라
언젠가는 나처럼 치통이 와서 그립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서
혼자 빗 속을 걸어가야 할 때가 있으리라
사랑은 혼자 아픈 것
그리고 혼자 걸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