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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ice Jun 11. 2021

겨우 도착한 이곳, 독일

위탁수화물, 기내용 캐리어, 백팩은 물론 여권과 각종 서류가  작은 가방까지 책으로 꾹꾹 채우고 출발했습니다. 처음으로 꺼내든 책은 김민철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입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읽어야 합니다. 읽지 않고 쓴다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읽지 않으면서 쓴다니. 사칙연산 기호만 알고 복합 연산을 하려 드는  보는 느낌입니다. 기호만 알고 순서는 커녕 정확한 개념도 모르면서 덤벼들다간 엉망진창의 결과가 나올  있고  연산은   없잖아요. 그런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골라든 책은 김민철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입니다. 여행지에서 떠올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여행을 잃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글로 구성된 책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안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신청서를 받고 나니 머릿속은 기획 초기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도움이  거라 생각한 책에서 역시나 많은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밑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에 신나게 책을 읽다보니 반절도 넘게 읽어버렸네요. 남은 비행 시간은 9시간, 시간은 많으니 잠깐 멈추고  원고를 써봅니다.


  한 가지 진심을 고백하자면, 저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눈물을 참느라 고생 중입니다. 며칠 전 아빠가 꼼꼼히 짐을 싸주던 모습이 아른거려서요. 마지막으로 제일 큰 캐리어를 닫은 아빠는 저에게 300불이 담긴 봉투를 주셨습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제 캐리어는 늘 아빠가 싸주셨거든요. 면세점에서 립스틱이라도 하나 사라며 늘 비상금을 챙겨주셨고요.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만 25년을 (말 그대로) 뼈 빠지게 일하며 고생해 키운 귀한 딸이 사랑에 눈이 멀어 이 위험한 시국에 한국보다 훨씬 위험한 나라로 여행 가는 걸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봉투에 담긴 비상금을 보고나서야 이 생각을 하다니. 이제야 내가 무엇을, 누구를, 어떤 사랑을 한국에 두고 가는 건지 느끼다니. 봉투를 확인하고는 돈도 없으면서 뭐 이런 걸 다 준비했냐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좌석 스크린에서 한국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슬프고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기분은 공항 주차장에서부터 다시금 시작되었습니다. 늘 붐비던 지하주차장은 텅 비어있었고 출국장과 입국장 모두가 휑했습니다. 언제나 바글거리고 요란하고 산만했던 공간이 이렇게까지 생기를 잃을 수 있다니. 커다란 카트에 기내수화물과 면세점에서 구매한 물건을 얹고 돌아다니던 여행객 무리로 비좁았던 면세구역에도 적막만이 깔려있었습니다. 지금껏 여행을 당연한 자유라고만 생각해왔는데, 그 자유가 사라진 공간이 주는 충격은 생각보다도 컸습니다. 저는 지금 흔들리는 비행기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생각해봅니다. 타국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요.


  이렇게 텅 빈 비행기는 태어나 처음 타봅니다. 하다못해 몇 년 전 베트남에 가려고 탔던 새벽 비행기도 만석이었는데 말이죠. 저를 포함해 승객이 60명이나 될까요. 제일 마지막 줄에 앉은 덕에 의자 세 개를 몽땅 차지하고 누웠습니다. 교환학기를 위해 출발했던 날, 가운데 자리가 비어있어 창문 옆에 앉은 다른 승객과 1.5좌석씩 차지하고 가본 적은 있었지만 좌석 세 개가 모두 내 차지라니. ‘눕코노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더군요. 다리를 펴고 누워서 책을 읽다보니 난기류가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비행기의 움직임이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막 이륙할 때의 불안정한 덜덜거림보다 훨씬 잔잔한 움직임이요. 마치 튜브를 끼고 잔잔한 바다 위에 둥둥 떠 파도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 위를 시속 800km 이상으로 날아가며 좋아하지도, 자주 가지도 않는 바다를 그리워하게 되다니. 우리는 정말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우울해졌습니다.


  비행기가 너무 흔들려서일까요. 아니면 그냥 탑승객과 승무원 모두를 대표해 불안하고 심란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걸까요. 20개월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아기는 몇 시간 째 악을 쓰며 울고 있습니다. 그 아기가 울기 시작하니 형제인 다른 아기도 질세라 울기 시작하고요. 이런 시절에 해외에 나가느라 두 아기도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을 텐데, 그 고역을 치르고 비행기를 탔는데 이렇게나 시끄럽고 덜컹대니 얼마나 힘들까요. 아기들을 안아들고 어르고 달래느라 기내식도 먹지 못하고 진땀 빼고 있는 보호자들은 얼마나 지칠까요. 다른 승객들이 불편할까 아기의 목청이 커질 때마다 귀마개를 들고 다니며 양해를 구하고, 보호자들과 함께 아기를 달래려 애쓰는 승무원들의 노고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저 빨리 독일에 도착해 모두의 불안이 무겁게 깔린 답답한 비행기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여전히 러시아 위를 날고 있습니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면 러시아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습니다. 가도 가도 울란바타르, 선잠에서 깨도 노보시비르스크, 첼랴빈스크, 지겨워죽겠는데도 모스크바니까요. 좌석에 붙은 스크린을 확대해 러시아의 도시 이름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으로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일상에선 들어볼 일도 없는 이름들로 향하는 비행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그리워해본 적 없는 풍경의 품에, 본 적 없는 도시의 소음에 뛰어들던 시간이 마치 전생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이 발 닿는 곳으로 걸어다니고만 싶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읽고 간간히 먹고 마시다보니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책을 세 권이나 읽고 거기에 영어로 쓰인 단편 소설까지 한 편 읽으며 주의를 돌리느라 애썼는데, 비행기가 땅에 닿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결국 이곳에 도착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혹시라도 입국을 거절 당할까 두려워졌습니다. 여전히 만 명 후반대의 일 확진자를 기록 중인 독일은 입국 규정이며 록다운 수칙이며 모든 것이 수시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짜고짜 독일어 할 줄 아냐고 물으며 입국심사를 시작하는 직원을 보고 당황해 응! 이라고 외쳐서 짧은 독일어를 더듬거리느라 잠깐 괴로웠지만 여권엔 쉽게 도장이 찍혔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한 보람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습니다. 도대체 뭐하러 그렇게 자주 입국을 거절 당하고 추방당하는 꿈을 꿨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나가니 제 연인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그의 뒤에 앉아있던 노부부가 ‘오랜만에 만났나봐, 너무 귀엽다.’ 하는 걸 들었습니다. 꽃다발이 귀엽긴 하더군요.


  공항을 벗어나니 푸른 하늘과 독일어 표지판들과 공사 표시가 시야를 꽉 채웠습니다. 죄다 공사판이라니, 독일이군! 하고 외치는 저를 보고 연인이 웃었고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독일에 있다는 사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버텨온 우리가 드디어 만났다는 사실이 조금씩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우토반을 벗어나니 익숙한 시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2년 전 우리가 함께 낮과 밤을 보냈던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실인지 꿈인지 뺨도 몇 번 쳐보고 연인이 준비해둔 선물에 감동하는 저녁이었습니다. 소파에 앉아 여든한 권의 제 책으로 채운 책꽂이와 보니 이 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나왔고요.


  독일은 지금 비가 오고 쌀쌀합니다. 2018년 5월의 독일은 꽤 더웠던 것 같은데 말이죠. 추위에 약한 저에게 있어 이런 제멋대로인 날씨는 독일의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그래도 오니 좋네요. 이곳에 오니, 연인을 보니. 휴대폰 액정이 아닌 그의 진짜 뺨을 만질 수 있으니. 좋습니다. 이 좋음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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