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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17. 2023

달리기의 풍경들

달리기 2개월 차

달리기를 마치면 바로 달리기 앱에 기록해 둔다. 달리며 보았던 것, 달리며 느꼈던 것들.

달리기 일기장의 일부를 옮겨보았다.


5월 21일 (Day 35)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저녁 달리기를 했다. 러닝메이트가 생겨 즐겁다. 우리 집에서부터 시작해 1킬로 거리인 그녀 집까지 함께 달리고 돌아왔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몇백 미터는 걸어왔다. 그동안 늘 혼자서 달리니 몰랐는데, 달리면서 말을 하면 숨이 차서 거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러닝메이트가 생기면 여유롭게 대화하며 즐겁게 달리는 상상을 했었는데, 역시 현실은 다르다. 달리기가 능숙해지면 가능하려나? 홀로 돌아오는 해 질 녘의 하늘이 예뻤고 선선한 저녁공기가 좋았다.



5월 22일 (Day 36)


나중으로 미룰까 하다가 아침 공기가 적당히 기분 좋게 시원해서 나오기로 했다. 달리면서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 올까 생각하니 더 기분 좋게 나갈 수 있었다.


오늘은 호흡을 바꿔보았다. 보통 습습후후 이렇게 두 번씩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코로 호흡을 하는데 짧은 걸음으로 달려서인지 그 두 번의 호흡으로 충분히 들이마시고 내뱉지 못해 답답하고 더 숨이 찬 느낌이어서 네 번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네 번을 깊이 내뱉으며 해보았다. 이게 더 긴 호흡이 돼서 편한 것 같았는데, 앞으로도 실험해 보며 내 호흡을 찾아야겠다.



5월 25일 (Day 39)


아파서 달리기는 못하고, 아이들 자전거 탈 때 함께 기찻길 옆을 걷다가 들어갔다. 그냥 푹 쉴걸. 이때부터 감기가 더 심해진 것 같다.



6월 2일 (Day 47)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던 중 시간이 조금 남았다. 잠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생각하던 중, '아 맞다 공원이 있었지!' 유치원 옆에 커다란 공원이 있다. 걷기 좋고 달리기 좋은 아름다운 공원인데, 늘 아이들과 함께 가면 구석의 놀이터에서만 놀다 돌아오곤 했었던 곳이다. 이 넓고 탁 트인 공원.  이곳에서 달리기는 처음이다.


흙길을 뛰다가 잔디밭도 뛰었는데 짧게 깎인 잔디가 푹신푹신했다. 제초작업을 한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풀내음이 짙게 나서 더욱 좋았다. 힐링이 되는 향기. 돌아오는 길은 시냇물이 흐르는 물가로 달렸다. 물소리에 새소리.. 초록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푹신한 잔디를 밟고 풀내음을 맡으며, 이런 날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게,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6월 5일 (Day 50)


오늘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자전거로 숲 속 깊은 곳까지 한 바퀴 돌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달릴 때도 좋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두 다리로 호수를 두 바퀴 달렸다. 조금 오랜만인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나왔는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모여, 간식을 먹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화창한 날씨를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두 바퀴를 돌 때쯤 되니 목이 많이 건조해서, 이제 달리기를 하러 나올 때는 물을 꼭 가지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들도 나와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한 어르신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벤치에서 이북 리더기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뭔가 이북 리더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에 반가웠다. 자전거가 생겨서 너무 좋다. 여기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길도 기대가 된다. 월요일 아침, 자전거 타고 영어 수업도 가고, 자전거로 이 호수에 와서 달리기도 했다. 뿌듯한 월요일이다 맛있게 점심을 먹어야지.


새로산 자전거, 길가의 양귀비, 호수의 오리가족



6월 6일 (Day 51)


이른 아침부터 침대 위 창문으로 톡톡 빗소리가 들렸고, 아이들 스쿨버스를 태워주려고 나왔을 때는 촉촉하게 땅이 젖어있었다. 공기 중에 보슬비를 머금고 있는 시원한 향기가 좋았다. 이런 공기를 맡으면 설렌다. 잠을 설쳐 머리가 조금 아팠는데도 아이들을 보내고 바로 옷과 신발을 갈아 신고 바로 나와서 달렸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좁은 오솔길을 달렸다. 지난주 제초 작업으로 양귀비가 갑자기 다 사라져 있었는데, 그 짧은 잔디 사이로 또 몇몇 양귀비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초록 잔디에 샛주황빛은 너무도 예쁘다. 그 얇은 꽃잎이 빗물을 머금어 무거웠는지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와 빛깔. 며칠 사이 제법 자란 것도 있었고, 이제 막 봉오리를 맺은 것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며 달리다 걷다를 반복. 이제 몇 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리기, 몇 킬로 이상 달리기 등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기분 좋게 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갑자기 걷고 싶으면 걸어가며 꽃과 나뭇잎을, 날씨를 만끽해도 좋은 걸로.

그렇게 달려서 빵집을 향해 갔고, 아침에 먹을 빵과, 오후에 아이들 줄 도넛과 초코파운드까지 양손 가득 샀다. 작은 것이라도 짐이 있을 때는 뛰기가 매우 성가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걸어서, 양손에 빵을 흔들며 즐겁게 집으로 갔다.



6월 11일 (Day 56)


늘 가던 자메크 토파즈 공원에서 미지의 드넓은 대지발견. 숲을 지나 사람들이 절 다니지 않는 곳까지 가보니 몇 만평의 대지가 펼쳐져있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수를 한 바퀴 달렸다. 즐겁게 자전거를 타더라도, 두 발을 땅에 붙이고 내 발로 달리는 시간도 꼭 갖고 싶다. 6킬로 넘게 탔으니 이제 자전거로 시내까지도 도전할 수 있겠다. 이제 유럽사람들처럼 자전거로 길 건너고 방향을 바꿀 때 수신호도 척척 넣을 수 있게 되었다.



6월 14일 (Day 59)


"오랜만에 뛰는 거 환영해"라고 나뭇잎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면서, 나뭇잎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달렸다:)



6월 19일 (Day 64)


매일 꾸준히 달리지 않으니 달리기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 자메크 토파즈의 호수 한 바퀴 돌기도 조금 힘이 든다.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뛸 때 덜 쾌적하고 금방 지친다. 가급적 아침에 달리자. 노부부가 공원에 한가롭게 앉아 대화 나누는 모습에 좋아 보였다.


달리기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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